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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통계 착시에 가린 역대급 고용 한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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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10월 서울 광진구청에서 열린 일자리박람회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서울 광진구청에서 열린 일자리박람회 모습. 연합뉴스

주 15시간 미만 초단기 일자리 역대 최대

투자·규제완화로 고용 보릿고개 넘어야

지난해 연간 취업자가 81만 명 넘게 늘었다는 통계청 발표에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발표대로라면 고용시장은 2000년 이래 22년 만의 최대 일자리 호황이었던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일상 회복의 결과라는 것이 통계청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취업준비생, 실직한 가장·자녀가 있는 많은 국민으로선 좀체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였다. 내막을 들여다보니 체감 현실과 통계의 괴리는 단기·초단기 일자리 증가가 큰 이유였다.

우선 주당 근로시간이 1~14시간인 초단시간 취업자가 지난해 약 158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5.6%를 차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초단기 아르바이트로 여겨지는 주 15시간 미만 취업자는 주휴수당이나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없고,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대상도 아니다. 고용주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한 명이 할 일을 여러 명에게 맡기는 ‘쪼개기’가 통계상 일자리 증가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심각한 것은 초단시간 취업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109만5000명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지 4년 만에 44%나 늘었다.

취업시간 범위를 넓혀 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간제 근무에 해당하는 ‘주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작년에 132만여 명(19.7%) 늘어났다. 반면에 전일제 근무로 간주하는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약 50만 명 줄었다. 이러니 일반 국민이 일자리 풍년이라고 느낄 수 있겠는가. 역대급 일자리 증가라는 통계는 고용시장의 냉기를 가리는 ‘착시’였던 셈이다.

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작년 고용시장 형편이 올해와 비교하면 아주 괜찮았다는 사실이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취업자 수 증가가 작년의 8분의 1에 불과한 10만 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 시간제 근무, 초단기 아르바이트 등을 합쳐도 그럴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민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기준으로 따지면 일자리 가뭄은 더 극심할 것이고, 고용시장 한파는 더욱 매서울 것이다.

산업 현장에선 경기가 정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는 신호가 속속 감지되고 있다. 단적으로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연속 줄었던 수출이 1월 초순(1~10일)에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은행(WB)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1.7%로 전망했을 정도로 수출 환경은 좋지 않다. 기업들은 이미 지난해 후반부터 신규 채용을 꺼리고 있다. 15~29세 청년층 취업자 수가 지난해 11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정부의 일자리 대책도 뾰족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전 정권처럼 국민 세금으로 공공근로라도 만들어 일자리 수치를 늘리라고 요구할 일도 아니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정부는 기업이 마음껏 투자하고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등 여건 조성에 더욱 힘써 주기 바란다. 기업도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