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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기타의 신’ 하늘나라 공연 떠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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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제프 벡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영국의 자택 근처 병원에서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벡은 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실험 정신의 소유자였다. [AP=연합뉴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제프 벡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영국의 자택 근처 병원에서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벡은 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실험 정신의 소유자였다. [AP=연합뉴스]

록 역사상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제프 벡이 세상을 떠났다. 78세.

12일(현지시간) 벡의 에이전트는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벡이 세균성 수막염으로 전날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며 “가족을 대신해 비통한 소식을 전한다”고 알렸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벡이 갑작스럽게 지병을 얻었고, 영국 자택 근처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화려한 경력의 기타리스트였다. 미국 그래미 어워드에서 8차례 수상했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1992년 밴드 ‘야드버즈’로, 2009년 솔로로 두 차례 헌액됐다. 2015년 미 대중문화지 롤링 스톤즈 선정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명’에서 5위에 올랐다.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턴 등과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로 꼽혔다.

벡은 실력뿐 아니라, 새로운 연주 기법과 장르를 개척하는 등 실험 정신의 소유자였다. 재즈, 펑키 블루스, 하드 록, 심지어 오페라까지 넘나들었다. 가디언은 그를 “재즈 록을 개척하고, 사이코 록이나 헤비메탈 같은 하위 장르의 길을 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BBC에 따르면, 1944년 영국 웰링턴에서 태어난 벡은 10대에 라디오에서 접한 록에 푹 빠졌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기타리스트였던 스코티 무어와 빌 헤일리를 특히 좋아했다. 음악을 본격 시작한 건 1965년 ‘야드버즈’에 합류하면서다. 지미 페이지가 영입을 제안했다. ‘하트 풀 오브 소울’ ‘쉐이프스 오브 띵즈’ 등을 유행시켰지만, 1년 만에 탈퇴했다. 이후 로드 스튜어트(보컬), 로니 우드(베이시스트) 등과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해 ‘트루스’(1968년), ‘벡 올라’(1969년)를 연이어 흥행시켰다.

1975년 낸 솔로 앨범 ‘블로 바이 블로’는 벡의 최고 히트작이다. 비틀스의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과 함께 작업했고, 영국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인 존 맥러플린의 스타일을 녹여냈다. 음반은 미 빌보드 200에서 4위에 올랐고, 미 음반산업협회(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1980년대 이명 증세로 어려움도 겪었지만, 회복 뒤 1990년대부터 테크노·일렉트로닉 등 새 장르 개척에 몰두했다.

벡은 2010·2014·2017년 세 차례 한국을 찾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 공연에선 노란색 리본을 달고 추모곡으로 ‘피플 겟 레디’를 연주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한국 팬들은 대단히 열정적”이라며 “공연하는 나를 설레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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