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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법에 갇힌 정치

중앙일보

입력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경찰청 특수수사본부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등 상급기관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놀랍지 않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때도 고위 공무원은 처벌받지 않았다. 유일하게 처벌된 공무원은 가장 먼저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 구조정장이었다. 사유는 업무상 과실. 해경청장 등 지휘부 10명이 기소됐지만 1심부터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현장 상황 판단이 어려웠다는 이유다. 9차례나 수사와 조사가 이뤄졌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300명 넘게 희생된 대형 참사에서 국가 차원의 형사 책임은 작은 구조정에 탔던 경위 한 명이 떠맡은 꼴이 됐다.

상급기관 책임 못 물은 참사 수사
고위급엔 성글기만 한 법의 한계
그 빈틈 메우는 것이 정치의 역할
법리의 형식성·폐쇄성 극복해야

법이란 이런 거다. 실무자의 잘못을 잡아내긴 쉬워도 고위급을 징벌하기는 쉽지 않다. 반드시 법이 강자 편이라서가 아니다. 현장 실무자들의 실수·게으름·부주의는 촘촘한 법 조항이나 규정집을 들이대면 어렵지 않게 짚을 수 있다. 그러나 '컨트롤타워'의 잘못을 법의 잣대로 심판하는 건 한계가 있다. 지휘 소홀과 참사 사이의 인과 관계가 명확지 않기 때문이다. 상급자는 '포괄적 책임'을 지지만, '포괄'이란 말은 빠져나갈 구멍도 많다는 뜻이다. 노자는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져나가기 힘들다"고 했지만, 그야말로 도가(道家)적 희망일 뿐이다. 컨트롤타워의 책임 규명이 어렵다 보니 언제부턴가 큰 사고가 났다 하면 대통령 혹은 장관이 언제 첫 보고를 받았느냐가 관심이 됐다. 잘잘못을 따지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기현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 대통령답게 증거주의 법정신에 충실한 발언이다. 윤 대통령이 표방한 '법치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 자체로 시비 걸기 힘들다. 적어도 검찰·법원이 있는 서초동이라면. 그러나 용산과 여의도라면 다르다. 고위층에게는 성근 법의 그물을 메워주는 역할을 정치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딱딱 책임론'은 정치적 책임을 모면하는 편리한 논리가 될 위험이 있다.

그 한 단면을 얼마 전 국정조사장에서 목격했다. "주말 저녁이면 저도 음주할 수 있다. 그런 것까지 밝혀드려야 하나." 전국 치안의 총책임자 윤희근 경찰청장의 항의다. 맞다. '멸사봉공'은 고리짝 냄새나는 단어다. 아무리 고위 공직자라도 사생활은 있다. 그러나 159명의 비극 앞에 굳이 그렇게 말해야 했는가는 다른 문제다. 윤 청장과 같은 연령의 50대 중반 월급쟁이가 회사 일로 상사한테서 비슷한 추궁을 받았다면 일단 머리부터 숙였을 것이다. 지천명의 나이쯤 되면 이건 비굴이 아니라 예의에 속한다는 걸 안다. '법적 책임론'이라는 보호막이 없었다면 이런 당혹스러울 정도의 당당함이 가능했을까.

윤희근뿐만인가. 구속된 이임재 전 용산서장이나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법적 책임을 부인한다. 이 전 서장은 기동대 요청 사실을 놓고 서울경찰청장과 다투고 있고, 박 구청장은 측근을 통해 "국민정서법 때문에 구속이 됐다고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의혹을 받는다. '법적 책임' 논리에 따라 상급기관은 빠져나가면서 1차 책임기관장인 자신들만 당하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잘못이 드러나면 누구든 책임을 묻겠다"던 대통령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포함한 개각을 사실상 없던 일로 했다.

집권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는 '법과 원칙'이었다. 낙하하던 지지율도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한 정면 대응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뭐든지 과잉은 위험하다. 주변을 법 논리로 무장한 법률가로 채우면 정치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정확하게는 협상과 조정, 타협을 원칙의 훼손으로 보는 탈(脫)정치적 시각이 문제다.

끼리끼리 뭉쳐서는 세상을 제대로 보기 힘들다. 7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전, 과학철학자 장대익 교수(가천대)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대국 결과를 예측하게 하고 동시에 다섯 명의 '절친' 이름을 적어내게 했다. 그리고 이들 다섯명이 서로 친한지 살펴봤다. 이른바 '에고 네트워크 밀도' 조사다. 에고 네트워크란 나를 중심으로 한 주변인들 간의 연결 정도를 말한다. 다섯명이 서로 친하다면 에고 네트워크 밀도가 높고, 다섯 명끼리 잘 모른다면 밀도가 낮다고 할 수 있다. 실험 결과, 밀도가 낮을수록 알파고의 승리를 예견한 비율이 높았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야 세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장대익 『공감의 반경』)

문재인 정권의 폐쇄성과 대결해 승리한 윤석열 정부다. 그러나 윤 정부 또한 법률가와 법 논리로 짜인 에고 네트워크의 밀도를 자꾸 높여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고밀도의 에고 네트워크는 신념의 강화를 되먹임한다. 유튜브의 알고리듬이 그런 것처럼. 딱딱 책임만 물어서야 정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지만, 정치가 법의 최소한일 수는 없지 않은가.

글=이현상 논설실장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