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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고래 싸움에 새우등 제대로 터진 ‘아프리카’

중앙일보

입력

 친강(秦剛) 중국 신임 중국 외교부장. [사진 VCG]

친강(秦剛) 중국 신임 중국 외교부장. [사진 VCG]

2023년 중국의 첫 해외 순방지는 어김없이 아프리카였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9일 외교부 수장으로의 첫 데뷔 무대인 아프리카로 떠났다. 1991년부터 중국은 아프리카와의 우호를 강화하겠다는 이유로 외교부장의 새해 첫 해외 방문지로 아프리카를 찾았다. 앞서 전임 외교부장인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또한 지난해 1월 첫 외국 방문을 에리트레아, 케냐, 코모로 등 아프리카 3개국 순방으로 시작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에 따르면 친강 부장은 일주일 일정으로 에티오피아, 가봉, 앙골라, 베냉, 이집트를 방문한다. 친 부장은 순방 기간 중 에티오피아에 있는 아프리카 연합 본부를 방문하고 이집트에서 아랍연맹 사무총장을 만날 예정이다. 이번 친강 외교부장의 아프리카 방문은 전통적 우호 관계 발전을 중시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미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아프리카를 ‘강대국 경쟁의 장’으로 삼는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중국은 그동안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지원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친중(親中) 성향으로 만드는 데 주력해왔다. 2021년 기준 중국과 수교한 53개 아프리카 국가 중 52개국 및 아프리카동맹위원회는 이미 중국과 일대일로 공동건설 협력 문서를 체결했다.

지난해 12월 중국 국가개발은행이 관리하는 지분 투자 펀드인 중국-아프리카 개발 펀드(CAD Fund)는 아프리카 국가에 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인프라, 농업, 민생, 역량 협력, 산업단지 등 분야를 포괄해 아프리카의 지역 경제, 고용 및 세수에 영향을 끼친다. 지금까지 CAD 펀드는 아프리카 39개국의 프로젝트에 66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으며 중국 기업으로부터 310억 달러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건설 분야에도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중국은 아프리카에 대통령궁 또는 국제기구 청사 건설 공세를 펴고 있다. 철도 건설 및 운영은 물론 면화 및 가죽 가공,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중국이 파고들고 있다.

2018년 7월 아프리카 세네갈 다카르를 방문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는 모습. [AP=연합뉴스]

2018년 7월 아프리카 세네갈 다카르를 방문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문제는 부채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벌이면서 개발도상국의 재무 상태는 덮어놓은 채 퍼주기식 대출을 해줬다. 런던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가 분석한 〈아프리카의 부채 고통에 대한 대응과 중국의 역할〉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전체 외채 규모는 2020년 현재 6960억 달러(약 892조 원)에 이른다. 이는 20년 전보다 무려 다섯 배나 급증한 결과로, 이 가운데 대중국 채무액은 12%인 835억 달러에 달한다.

이에 중국 정부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채무 상환을 면제 또는 연장해 주겠다고 밝혔지만, 계약서상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중국이 상대국 주요 자산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쏟아지는 차이나 머니도 잠시, 상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는 ‘빚더미 함정’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그뿐만 아니다. 중국은 ‘군사적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아프리카 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국방 안보 확대를 꾀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무기 시장 점유율을 잠식할 기세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중국 보안업체 매니저 가오젠보(왼쪽)가 현지 직원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CFP]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중국 보안업체 매니저 가오젠보(왼쪽)가 현지 직원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CFP]

미국의 대표 군사 싱크탱크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에 따르면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 17개 국가에 무기를 수출했다. 중국 역시 서방 못지않은 아프리카의 큰 무기 공급국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은 고품질 방산 장비를 생산하는 대신 중국은 드론 등 특정 무기 시스템으로 아프리카 시장에서 자체 파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보스턴 대학교 글로벌 개발 정책 센터에 따르면, 2000~2020년 중국은 아프리카 8개 국가에 35억 달러 규모의 국방 시스템을 제공했다. 대부분의 자금은 항공기, 전투기 훈련기, 군사 장비 구매, 군대 및 경찰 주거용 주택 건설을 위해 잠비아로 전달됐다.

무기 수출 외에도 일대일로 프로젝트인 광산, 항만 및 철도 보호를 위해 민간군사경비회사 ‘PMSC(Private military & security companies)’ 용역을 제공하고 있다. PMSC는 현대전에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아웃소싱 군사조직 개념이다. 중국 PMSC는 15개 아프리카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아프리카 31개국에서 PMSC 계약을 따낸 러시아에 비해선 뒤처진 수준이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며 드러난 러시아 무기의 성능 부족, 예비 부품의 가용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개발 도상국가의 중국 무기 수입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랜드 연구소 선임 국제 및 국방 연구원 존 파라치니(John Parachini)는 “무기 수출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이라면서 “그러한 거래에는 종종 고위급 협상이 수반된다”고 말했다. SCMP는 랜드 연구소의 한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 PMSC는 주로 중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확보하기 위해 배치된다”며 “아프리카에 배치된 PMSC는 중국 공안국을 통해 중앙 정부의 긴밀한 통제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이 2022년 12월 14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미국·아프리카 정상 회의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이 2022년 12월 14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미국·아프리카 정상 회의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편 미국은 아프리카의 전략적 중요성을 위해 ‘아프리카 환심 사기’에 나섰다. 약 8년만에 이뤄진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 외교정책의 전환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고위급 정상회담에서 “아프리카의 미래에 올인할 것”을 약속하고 미국을 아프리카 국가들이 선택한 ‘파트너’로 제시했다. 바이든은 향후 3년간 아프리카에 약 55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며, 민간 무역 및 투자 파트너십에도 약 1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재정적 약속뿐만 아니라 유엔과 G-20에서 아프리카의 외교적 이익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이 이처럼 과도한 ‘아프리카 챙기기’에 나선 것은 사실상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이 반도체, 배터리 등 미·중 경쟁이 첨예한 핵심 산업 주도권을 쥐려면 아프리카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과다. 실제로 중국의 대아프리카 무역 규모는 2021년 기준 2540억 달러로 미국(640억 달러)보다 네 배가량 많다. 중국의 대아프리카 FDI 규모 역시 미국 자금의 약 두 배에 달한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미·중 사이에 낀 괴로운 새우 신세가 됐다. 미국의 대아프리카 행보가 단순 원조가 아닌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아프리카는 양국 선택 압박이 가중되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모크위치 마시시 보츠와나 대통령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세계 초강대국들의 의도를 경계하고 있으며, (과거)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화가 이제는 일정한 정복의 형태가 되었다”면서 “그들이 우리 위에 군림하거나 우리를 통해 뭔가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쪽으로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아프리카 대륙이 미·중 갈등의 새로운 세력 다툼의 전장으로 격화될 날이 머지않았다. 향후 미·중관계가 아프리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차이나랩 김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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