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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온난화·북한 '교류 키워드' 선명한데…한·미는 0개였다 [新애치슨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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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50년 1월 미국은 소련과 중국의 확장을 막기 위한 ‘애치슨 라인’을 발표했다. 그리고 5개월 뒤 애치슨 라인 밖에 위치하게 된 한반도에선 전쟁이 발발했다. 73년이 지난 2023년 한국은 다시 미ㆍ중의 공급망 전쟁으로 그려질 ‘신(新)애치슨 라인’의 최전선에 서 있다.
중앙일보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소장 박수진 교수)와 함께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 한국 외교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아르스프락시아’는 아시아연구소의 의뢰로 2020년 1월~2022년 9월 30일까지 한ㆍ미ㆍ일ㆍ중 4개국 824개 언론사의 기사 550만여건을 빅데이터 분석했고, ‘한국리서치’는 지난달 6~9일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심층 웹설문 조사를 진행했다.(95% 신뢰수준ㆍ표집오차 ±3.1%ㆍ비례할당 후 무작위 추출)

1950년 '애치슨 라인'에서 배제됐던 한국은 3년 뒤인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뉴스1

1950년 '애치슨 라인'에서 배제됐던 한국은 3년 뒤인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뉴스1

외연은 확장됐지만, 내실에선 부족하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한ㆍ미동맹에 대한 빅데이터 성적표다.

중앙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 최근 3년간(2020년 1월~2022년 9월) 한ㆍ미ㆍ일ㆍ중 824개 언론 매체가 보도한 550만여 건의 기사를 빅데이터 분석한 결과 한ㆍ미 양국만이 공유하는 독자적 핵심 공동 이익, 즉 ‘상호 연계 키워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53년 한ㆍ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시작된 양국의 동맹 관계가 이젠 안보ㆍ경제 모두에서 성숙한 단계에 올랐다는 평가와는 다른 결과다.

한ㆍ미ㆍ일은 '망(Chain)'의 확보를 공동 관심사로 놓고 외교안보 전략을 구사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미사일과 국제물가가,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미사일, 군사정보, 기후변화가 공동 관심사였다. 다만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3개국 공통 관심사인 '망' 외에 독자적 미래가치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ㆍ미ㆍ일은 '망(Chain)'의 확보를 공동 관심사로 놓고 외교안보 전략을 구사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미사일과 국제물가가,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미사일, 군사정보, 기후변화가 공동 관심사였다. 다만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3개국 공통 관심사인 '망' 외에 독자적 미래가치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물론 한ㆍ미는 북핵 문제와 공급망 재편 등 각종 역내·글로벌 이슈에 공동 대응하며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린치핀(linchpinㆍ핵심축)’으로 지칭했다. 물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추출된 양국의 관심 키워드엔 코로나19, 공급망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공동 관심사가 통계학적인 '상호 연계성'을 갖추지 못한 것은 해당 이슈에 대한 협력 범위와 밀도가 유의미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어있는 한·미 교집합…미·일은 공동 이익 확대  

문재인 정부는 5년간의 임기 동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대표되는 남북 관계 개선 중심의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때론 무력 도발에 나선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보다 관계 개선을 우선시했고, 이는 북한 비핵화를 최우선 목표로 둔 미국의 대북 원칙론과 엇박자를 내곤 했다. 사진은 2018년 4월 27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는 모습.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5년간의 임기 동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대표되는 남북 관계 개선 중심의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때론 무력 도발에 나선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보다 관계 개선을 우선시했고, 이는 북한 비핵화를 최우선 목표로 둔 미국의 대북 원칙론과 엇박자를 내곤 했다. 사진은 2018년 4월 27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는 모습.연합뉴스

한국은 전임 문재인 정부 당시 미ㆍ중 경쟁 속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미국 주도의 대중(對中) 포위망에 일부 거리를 뒀다.

특히 북한과 관련해선 안보리 결의 위반인 탄도 미사일조차 ‘불상의 발사체’로 발표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고, 임기 말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등 미국이 추구하는 대북 전략과 결이 다른 행보를 이어갔다. 미ㆍ중 경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중국 압박에 거리를 두고 남북 관계 등 한반도 문제에만 몰입했던 외교·안보 전략이 결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ㆍ미 양국의 불협화음을 야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미일 관계는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신밀월'로 평가되는 협력 관계보다 한층 진화된 '신밀월 2.0'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인사를 나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최근 미일 관계는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신밀월'로 평가되는 협력 관계보다 한층 진화된 '신밀월 2.0'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인사를 나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반면 인태 지역의 ‘코너스톤(cornerstoneㆍ주춧돌)’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우 미국과의 상호 연계 키워드가 선명하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미ㆍ일 간에는 ▶기후변화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무력 도발 ▶군사 정보 교류 등 3가지 핵심 이슈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군사 정보가 양국의 상호 연계 키워드로 나타난 것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보다 일본의 대미 북핵 공조가 더 끈끈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오는 13일 미 백악관에서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한 비핵화 협력'을 담은 공동 문서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ㆍ일 양국 공조를 강화하며 ‘신 밀월’이란 평가를 받았는데, 바이든 행정부에선 양국의 공조 범위와 강도가 한층 확대된 ‘신 밀월 2.0’으로 진화한 셈이다.

미·일 밀월로 일 주도권은 곤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담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담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북핵 대응을 위해선 한ㆍ미ㆍ일 협력이 필수적인 만큼 미ㆍ일 협력이 강화되는 현 상황이 한국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미·일 밀월은 위안부·강제징용 등을 놓고 일본에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미국의 압박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등 일본이 한·일 관계의 주도권을 갖게 할 소지가 있다. 또 '완벽 밀착'에 가까운 일본의 대미(對美) 협력 기조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기대치를 과도하게 높이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빅데이터 분석에 참여한 이명무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국과 미국 모두 공급망과 코로나19, 북한 미사일 등의 키워드가 관심사로 나타났는데, 그럼에도 해당 이슈가 양국의 공통 키워드로 도출되지 않은 것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연계성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반면 미ㆍ일의 경우 공통 이익과 안보 관심사가 공고한 구조임이 확인됐는데, 한ㆍ미ㆍ일ㆍ중 간의 이해 관계 속에서 한국은 불안정하고 양가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ㆍ미ㆍ일ㆍ중 4개국은 '망(Chain)'의 확보를 공통 관심사로 놓고 외교안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은 '망' 이외에 중국과는 코로나와 국제물가라는 핵심가치를, 일본과는 국제물가와 미사일 대응을 공동 관심사로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과는 4개국의 공통 관심사인 '망' 외에 독자적 미래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ㆍ미ㆍ일 공조의 또다른 구성원인 미국과 일본이 미사일, 군사정보, 기후변화 등 포괄적 안보의 핵심 가치들을 공유하며 급격히 밀착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ㆍ미ㆍ일ㆍ중 4개국은 '망(Chain)'의 확보를 공통 관심사로 놓고 외교안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은 '망' 이외에 중국과는 코로나와 국제물가라는 핵심가치를, 일본과는 국제물가와 미사일 대응을 공동 관심사로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과는 4개국의 공통 관심사인 '망' 외에 독자적 미래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ㆍ미ㆍ일 공조의 또다른 구성원인 미국과 일본이 미사일, 군사정보, 기후변화 등 포괄적 안보의 핵심 가치들을 공유하며 급격히 밀착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럼에도 이번 빅데이터 분석에서 한ㆍ미ㆍ일ㆍ중 4개국 모두 공급망 문제에 집중하고 있음이 확인된 건 한국에겐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한국은 공급망 경쟁의 핵심축인 배터리ㆍ반도체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국가로 평가되고 있어서다. 미ㆍ일의 경우 공급망(supply chain, value chain)을 핵심 이익으로 다루고 있었고, 중국 역시 공급망 경쟁의 연장선에서 다뤄지는 무역 이슈가 핵심 이익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공급망 경쟁의 핵심 분야인 ‘배터리’가 핵심 이익이었다.

과거 동북아에서 미국이 한국을 완전히 배제했던 극단적인 경우가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소련과 중국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발표했던 ‘애치슨 라인’이다. 태평양 방위선에서 일본은 포함됐는데 한국은 빠졌다. 5개월 후 6ㆍ25 전쟁이 시작됐다. 73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일본과 함께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애치슨 라인’에 포함됐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제 과제는 한·미·일·중이 ‘공급망 전쟁’을 벌이며 새롭게 그어질 ‘신(新) 애치슨 라인’에 대비해 한국의 외교 지평을 확장하는 일이 됐다. 먼저 한ㆍ미동맹을 대외 전략의 핵심 기반으로 둔 한국으로선 미국과의 협력 내실화가 필수적이다. 동시에 공급망 전쟁에서 중국과 전면적 대립을 불사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신 애치슨 라인에 서서 미국과 공급망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을 향해선 한·미동맹을 레버리지로 삼아 현안마다 정교하게 핀셋 대응하며 균형점을 찾는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상 일본에 비해 미국과의 싱크로율이 부족할 수 있다”며 “단 국익 최대화를 목표로 한·미동맹의 심화가 필요하고, 동시에 다른 한편에선 한ㆍ미동맹 속에서도 냉정하게 국익을 판단해 미ㆍ중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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