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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 건넨 200만 달러…'이재명 경기도'-김성태 커넥션 수사 속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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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외로 도주한 쌍방울그룹 김성태 전 회장 등이 지난 10일 태국 현지에서 체포됐다. 쌍방울그룹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이들이 송환되면 수사에 진척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뉴시스

해외로 도주한 쌍방울그룹 김성태 전 회장 등이 지난 10일 태국 현지에서 체포됐다. 쌍방울그룹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이들이 송환되면 수사에 진척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뉴시스

 8개월간의 해외 도피 행각을 벌여온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양선길 현 회장이 지난 10일 태국에서 체포되면서 한동안 답보상태에 놓였던 수원지검의 수사에 탄력이 붙게 됐다. 김 전 회장이 도피한 동안 검찰은 처음 쌍방울그룹과 김 전 회장을 주목받게 했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외에도 ▶전환사채 관련 허위공시 등 자본시장법 위반 ▶수천억원대 배임·횡령 등 김 전 회장에게 물을 다양한 혐의를 곳간에 쌓아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건 ‘이재명 경기도’와 쌍방울그룹 간 대북 사업 협력의 시작과 전개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의혹들이다. 수원지검은 최근까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구속 기소)의 개인 비리 수사에서 촉발된 이 부분에 대한 사실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해 왔다.

쌍방울과 경기도의 협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건 남북정상회담 무드를 타고 2018년 11월 경기도 고양시와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두 차례의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였다. 경기도와 안부수 회장(구속기소)이 이끌던 민간단체인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의 공동주최 형식을 취한 이 행사엔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조선아태위) 부위원장과 송명철 정책부실장 등 북한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지역 정가에선 “정부 차원의 사업에 버금가는 규모여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상당히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 나왔다.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환영사를 이화영 평화부지사가 대독했던 두 번째 대회에는 김 전 회장과 양 회장 등 쌍방울그룹 주요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고 한다. 검찰은 쌍방울그룹이 이 두 차례 행사 개최에 드는 비용 수억원을 아태협을 통해 지원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실이 경기도로부터 제출받은 2018~2020년 경기도의 대북협력사업 현황자료에 따르면 경기도는 10개의 대북협력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중 절반인 5개 사업을 아태협과 공동 추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기도 관계자는 “당시 도의원들도 ‘아태협이 뭐하는 단체냐’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 전 부지사의 강력 추천이라고만 알려졌다”고 말했다.

검찰은 사실상 이 사업들이 경기도와 쌍방울의 공동사업으로 보고 있다. 경기도 측의 책임자였던 이 전 부지사는 취임 전까지 쌍방울맨이었다. 2011년 10월~2017년 3월까지 고문으로 1억8050만원, 사외이사(2017년 3월~2018년 6월)로 3800여만원을 받았다. 아태협의 안 회장은 경기도와 아태협이 대북사업을 추진하던 2019년 1월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현 SBW생명과학) 사내이사로 영입돼 사실상 아태협은 쌍방울의 산하 기관처럼 운영됐다. 아태협 사무실도 쌍방울 본사 안에 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두 행사를 전후한 기간 쌍방울그룹과 김 전 회장은 실제로 북측과 접촉하며 대북사업 성사를 위해 많은 비용을 치렀다. 안 회장은 2018년 12월 평양에서 김영철 전 북한 통일전선부장에게 7만 달러(당시 한화 9300만원)를 건네고, 2019년 1월 중국 선양에서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 등에게 43만 달러(당시 한화 5억7000만원)를 전달했는데 검찰은 이 돈의 출처도 쌍방울그룹으로 보고 있다. 이 돈을 포함해 검찰이 파악한 쌍방울이 대북 로비에 지출한 돈은 200만 달러 이상이다.

‘투자’의 성과 실현이 목전에 있는 듯 보였던 때도 있었다. 이 전 부지사의 공소장에 따르면, 이같은 는 김 전 회장과 안 회장은 이 전 부지사 등과 함께 2019년 1월 16~19일 중국에 머물면서 쌍방울그룹은 북한 조선아태위와 경제협력 관련 합의서를 작성(2019년 1월 17일)했다. 이들은 2019년 5월 10일~16일 다시 중국에서 체류하면서 5월 12일 북한의 민족경제협력연합회(이하 민경련)와 경협 합의서를 작성했다. 나노스 등을 통해 북한의 지하자원개발 협력사업과 관광지·도시개발사업, 물류유통사업, 자연에네르기 조성사업, 철도건설관련사업, 농축수산 협력사업 등 6개 분야에 우선적 사업권을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경기도도 같은 달 ▶밀가루·묘목 지원 ▶평화를 위한 아시아 국제배구대회 참가▶‘2019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필리핀 공동개최▶평양공동선언 1주년 기념행사 DMZ 평화페스티벌 개최▶개성 수학여행 등을 공식 남북평화협력사업으로 발표했다.

북한과 경협 합의로 나노스는 희토류를 포함한 북한 광물에 대한 사업권 등을 약정받았고 이후 주가가 급등했다. 2017년 2월 나노스의 전환사채(CB) 200억원을 인수한 쌍방울은 2019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3차례에 걸쳐 전환사채 180억원에 대한 전환 청구권을 순차적으로 행사해 1558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검찰은 최근 김 전 회장의 지인 등으로부터 “김 전 회장이 2019년 1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줄 선물용으로 에르메스 말 안장을 북측에 건넸고 롤렉스 시계 10점을 구입해 북측 인사들이게 전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 경기도의 국민의힘 측 인사는 “협약 성사에 대한 감사 인사 성격의 뇌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쌍방울과 경기도 대북사업의 중심엔 이화영·안부수

2018년에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석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맨 왼쪽)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맨 오른쪽). [사진공동취재단]

2018년에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석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맨 왼쪽)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맨 오른쪽). [사진공동취재단]

세간의 관심은 조폭 출신 기업가 김성태 전 회장이 북 고위층을 상대로 한 대규모 대북사업에 뛰어든 이유와 이를 가능하게 한 인적 배경에 쏠리고 있다. 김 전 회장의 한 지인은 “김 전 회장은 재벌이 되고 싶어했다”며 “코스닥 상장사를 사들이는 기업사냥으로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던 차에 대북 사업의 호기를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영 전 부지사와 안부수 아태협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손과 발이었다.

김 전 회장의 또 다른 지인은 이 전 부지사와 김 전 회장을 처음 연결해 준 사람으로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의 측근으로 알려진 최우향(구속 기소) 전 쌍방울그룹 부회장을 지목했다. 전 쌍방울그룹 관계자는 “최 전 부회장은 학력은 별 볼 일 없지만, 감옥에서 독학으로 글과 언변을 익혔다”며 “조폭 같지 않은 매너로 정·관계 인사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어왔다”고 말했다.

안부수 회장을 김 전 회장에 소개한 것은 이 전 부지사라고 한다. 그러나 이 전 부지사와 안 회장의 인연이 언제 어떤 계기로 맺어졌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검찰은 안 회장의 공소장에 “쌍방울 및 경기도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과 연결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속칭 ‘대북사업 브로커’”라며 “안 회장이 2018년 열린 제1회 국제대회 당시엔 방한한 송명철 북한 조선아태위 부실장 등 북한 관계자들에게 김 전 회장 등을 소개했다”고 적었다. 안 회장은 2018년 12월 말에도 김 전 회장과 이 전 부지사를 중국 단둥에서 김성혜 북한 통일전선부 책략실장 등에게 소개하고 대북사업을 함께 논의했다.

김성태(오른쪽)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태국 현지의 한 골프장에서 검거됐다. 왼쪽은 함께 검거된 양선길 쌍방울그룹 회장. 독자제공

김성태(오른쪽)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태국 현지의 한 골프장에서 검거됐다. 왼쪽은 함께 검거된 양선길 쌍방울그룹 회장. 독자제공

2020년으로 접어들면서 북미 관계가 냉각돼 쌍방울과 경기도의 대북사업도 주저앉았다. 그러나 이같이 스케일이 남달랐던 김 전 회장과 이 전 부지사의 대북 사업 개척 시도가 당시 이재명 도지사의 적극적 의지 없이 또는 정부 차원의 지원 없이 이뤄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깊어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태국에서 체포한 김 전 회장 등이 신속하게 송환될 수 있도록 태국 측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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