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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범 150명 잡은 '자경단 유튜버', 정작 경찰은 뜻밖의 반응

중앙일보

입력

지난 9일 오후 9시, 서울 도봉구 녹천역 앞에서 마약으로 의심되는 물질을 소지하고 있던 3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4시간 뒤 50대 남성도 잇따라 붙잡혔다. 이날 검거 현장에는 한 유튜버가 동행했다. 낮에는 족발 가게를 운영하고 새벽에는 유튜버로 활동하는 ‘동네지킴이’ 홍석(28)씨다.

성착취범 잡았더니 마약으로 줄줄이 

유튜브 '동네지킴이' 채널은 마약사범·성매수범·아동성착취물 소지자 등을 신고하고 이 과정을 채널에 업로드한다. 사진 유튜브 채널 ‘동네지킴이’ 영상 캡처

유튜브 '동네지킴이' 채널은 마약사범·성매수범·아동성착취물 소지자 등을 신고하고 이 과정을 채널에 업로드한다. 사진 유튜브 채널 ‘동네지킴이’ 영상 캡처

홍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동네지킴이’는 서울 북부 일대의 마약 거래나 아동 성착취물 거래 현장을 덮쳐 112에 신고를 한 뒤, 경찰이 피의자를 검거하는 모습을 실시간 송출한다. 구독자는 1만 3000여명이다. 추적 과정을 담은 영상을 올려 후원도 받는다. 홍씨는 “지금까지 잡은 용의자만 15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한 10대 여성이 자신에게 성매매를 제안하는 메시지를 보낸 20대 남성을 제보한 게 첫 사건이었다. 홍씨는 “과거 ‘n번방’ 사건을 보고 너무 화났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동 성착취물 소지범이나 성매매범을 주로 잡았다”며 “그런데 성착취범들이 ‘마약이 있으니까 같이 하자’고 말을 꺼내는 경우가 많아 마약까지 가게 됐다”고 말했다.

유튜버 ‘동네지킴이’가 마약사범을 신고해 경찰에 넘긴 모습. 사진 유튜브 채널 ‘동네지킴이’ 영상 캡처

유튜버 ‘동네지킴이’가 마약사범을 신고해 경찰에 넘긴 모습. 사진 유튜브 채널 ‘동네지킴이’ 영상 캡처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유튜브를 하게 된 계기를 말하며 홍씨는 자신의 전과를 언급했다. 홍씨는 “군복무 당시 후임의 엉덩이와 성기를 치고 귀를 물어 군인 등 강제 추행과 폭행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내가 사고를 쳤으니까 좀 더 제대로 살고 싶었다”며 “주변 지인들, 군대 대대장님, 회사 대표님 등 주변에서 써준 탄원서가 300장이 넘었는데 그때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3살배기 아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더 깨끗해졌으면 하는 바람과 추격 끝에 잡은 용의자를 신고할 때 느끼는 재미가 활동의 동기라고 한다.

범인 검거에 기여? 경찰 “새로운 걱정거리”

“하루에 한 명씩, 1년 안에 365명을 잡는 게 목표”라는 홍씨의 ‘자경단’ 활동은 사법 당국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고마운 측면도 있지만 고민스러운 면이 더 크다”는 게 경찰 내부의 목소리다. 신고에 그치지 않고 피의자를 검거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채널 운영 방식 때문이다.

 유튜브 '동네지킴이' 채널은 마약사범·성매수범·아동성착취물 소지자 등을 신고하고 이 과정을 채널에 업로드한다. 사진 유튜브 채널 ‘동네지킴이’ 영상 캡처

유튜브 '동네지킴이' 채널은 마약사범·성매수범·아동성착취물 소지자 등을 신고하고 이 과정을 채널에 업로드한다. 사진 유튜브 채널 ‘동네지킴이’ 영상 캡처

서울 일선 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검거 과정을 일반 국민들에게 다 공개해버리는 게 수사에 방해되는 요인”이라며 “마약수사 잠복 차량이며 직원들의 얼굴이 방송을 통해 노출될 우려도 있고, 나쁜 마음 먹고 보복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경찰에게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일선서에서는 혹시나 돌발 상황이 발생할까 봐 홍씨의 라이브 방송을 틀어놓고 상황을 예의주시한다고 한다.

신고와 검거 과정 전체를 촬영해 올리는 방식 때문에 채널의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일선 경찰서의 형사과 직원은 “순수한 정의 구현이 목표라면 신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유튜브로 찍어서 올리는 건 결국 유튜브 수익과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경찰을 이용하는 것으로 느껴진다”며 “우연히 발견된 범죄를 신고하는 거라면 몰라도, 여성들을 시켜서 범죄를 유도하는 방식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라이브 과정에서 용의자들의 신변이 노출되는 게 법적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다른 경찰 관계자는 “신고를 해서 마약사범을 검거하는 자체는 의미가 있고 고마운 일”이라면서도 “그 과정을 온라인에 게재하는 건 나중에 초상권이나 피의사실 공표 문제로 불거질 여지도 있고, 현장에서의 자극적인 모습들이 방송되는 게 공무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부담 아닌 부담”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검거 과정을 생중계하는 이유에 대해 “라이브 방송은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켜는 게 제일 크다. 어떻게 당할지 모르지 않냐”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상을 끄라고 하면 끄고 있다.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마약 범죄가 지금처럼 심각한 상황에서 지역사회 경찰 활동의 일환으로서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며 “개인정보 노출을 유의할 필요는 있지만, 사이버상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거래를 100건이나 신고한 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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