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의사 부족 진료대란…“문 열기 1시간 전인데, 대기 20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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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우리아이들병원 2층에 환자와 보호자 약 150명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 우리아이들병원]

“오늘은 한 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그나마 월요일이 아니라 이만한 거죠.”

10일 오전 10시20분.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문을 열기 10분 전부터 대기하던 이모(33·경기도 고양시)씨가 두 살배기 딸의 진료를 마치고 나온 시간이다. 이씨가 병원에 도착한 오전 8시50분 무렵에는 이미 1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이씨는 “온라인 예약 앱이 열리는 오전 9시에 들어가면 대기 인원이 30명을 넘어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병원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대기하는 소위 ‘오픈런(Open-Run)’은 이제 부모들 사이에선 익숙한 풍경이 됐다. 두 딸을 둔 성모(33·서울 강서구)씨는 “요령이 늘어 아내와 분업한다”고 말했다. 성씨가 먼저 병원에 가 대기 등록을 마치면 아내가 진료시간이 될 때쯤 아이를 데리고 오는 식이다. 성씨는 “지난 주말 아이가 고열과 설사 증상을 보여 병원 문을 열기 한 시간 전부터 대기했는데 20명 정도가 줄을 서 있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소아과에 환자가 몰리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의료시스템 붕괴에서 비롯된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저출산 상황에서 수십 년간 진료 수가 인상 없이 간신히 버티고 있던 소아과가 코로나19 팬데믹을 맞닥뜨리면서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다른 과와 달리 소아과는 비급여 항목이 없어 거의 진찰료만으로 운영된다. 한국의 소아청소년 1인당 진료비는 미국의 20분의 1 수준이고 캄보디아, 중국보다 낮다. 그렇다 보니 환자를 하루에 80명 정도는 봐야 그나마 병원 유지를 할 수 있는데 저출산 기조에다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직격탄를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출생아 수가 대폭 줄어든 데다 최근 3년간 코로나19 사태로 방역이 강화되고 마스크 착용, 손 씻기가 일상화되면서 호흡기 질환을 앓는 소아청소년 환자가 뚝 떨어졌다. 문을 닫는 소아과가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최근 5년간 요양기관 개·폐업 현황을 보면 소아과의 경우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8년(개업 122곳, 폐업 121곳)과 2019년(개업 114곳, 폐업 98곳)에는 개업한 곳이 더 많았다. 하지만 2020년에는 개업 103곳, 폐업 154곳으로 문을 닫는 소아과가 대폭 늘었다. 2021년에도 개업은 93곳인 데 반해 폐업한 곳은 120곳으로 나타났다.

임 회장은 “지난 5년간 소아과 662곳이 폐업했다. 동네 개원의가 문을 닫자 취직해야 하는 페이닥터들이 갈 곳을 잃었고, 이를 지켜보던 예비 전공의들도 소아과를 ‘기피과’로 인식해 타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이탈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올해 전반기 64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를 모집한 결과 소청과를 희망한 전공의는 33명에 그쳤다. 정원 207명에 15.9%만 찼다.

전공의가 줄어들면서 소아응급진료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전국 대학병원 중 소아청소년 응급 진료가 가능한 곳은 36%에 그친다. 인천 가천대 길병원은 올해 2월까지 소아청소년 입원 진료를 중단했다.

국내 유일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인 우리아이들병원에서 근무하는 정성관 이사장은 “대학병원 응급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다 보니 일선 병원에 중등도 환자들이 늘었다. 기존 인원으로 응급 상황에 대처할 일이 늘어 의료진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아이들병원은 평일 오후 7시부터 세 시간 동안 야간 진료를 하는데 오후 7시30분이면 진료 접수가 마감된다.

복지부는 소청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올해부터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보상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도 의대 정원을 350명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임 회장은 “의대 정원을 3500명으로 늘린다 해도 미래가 없는 곳에 누가 지원하겠냐”며 “지금 당장의 소청과 붕괴를 막기 위해선 대통령 직속 논의기구를 만들어 중장기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은 “2, 3차 수련병원의 적자를 해소하고 전문인력 감소와 병상 축소 운영을 방지하려면 소아청소년 입원·진료 수가의 100%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