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제 실시 이후 가장 과열된 양상이다.” 16일 치러지는 대한변호사협회 52대 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 간 경쟁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비방·고소·고발 등 법정 안팎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변협 선거를 치러본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어느 선거도 이렇게까지 네거티브는 아니었다”며 이번 선거를 ‘역대급 과열’이라고 했다. 13일엔 사전투표가 실시된다.
세 명의 후보 중 1번과 2번 후보의 다툼이 특히 치열하다. 기호1번 김영훈(59·사법연수원 27기) 후보는 지난 9일 명함관리 애플리케이션 ‘리멤버’를 업무방해죄로 고발했다. 리멤버가 기호 2번 안병희(61·군법무관 7회)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설문조사를 해 “불법 여론조작과 선거 개입을 시도했다”는 이유다.
안병희 후보는 지난달 선거운동 공보물에 대해 변협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삭제 요구를 받자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김영훈 후보가 변협 부협회장 출신인만큼 선관위가 김 후보와 사실상 한 팀이라는 게 안 후보의 생각이다.
“현재의 변협이 비정상적으로 협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안 후보가 밝힌 출마 이유기도 한 만큼, 현 집행부 노선으로 분류되는 김 후보와 서로 대립을 빚는 건 당연한 흐름이기도 하다. 다만 대립이 심해지며 과거 행적 논란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김 후보를 지지하는 한 변호사는 2000여명의 변호사들이 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2년 전 안 후보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했는데, 이에 안 후보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폭행·무고죄 등 맞고소로 대응했다.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외에 스스로를 내세우기 위한 ‘포지티브’ 선거운동도 물론 한다. 김 후보는 다양한 변호사들의 사진과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릴레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안 후보는 별도 캠프 페이지를 운영하며 성차별 상담센터 신설, 싱글 변호사 회원을 위한 매칭 사업 지원, 혜택 많은 변호사용 신용카드 출시 지원 등 공약을 홍보하고 있다.
회원 변호사들은 ‘피곤하다’는 반응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실효성 없거나 현재 변호사들한테 필요한 게 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공약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고, 쓸데없는 말꼬리잡기를 하며 서로를 헐뜯는 모습을 보면 피곤하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선거가 과열되니 너무 흥분한 나머지 각 캠프에서 자살골을 넣고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변협회장 선거는 2019년만 해도 단독 후보로 당선되는 등 지금처럼 치열하지는 않았다. 대의원이 선출하던 협회장을 회원들이 직접 뽑기로 한 게 2013년부터인데, 이번 선거만큼 ‘진흙탕 싸움’이었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변호사 수가 점점 늘어(유권자 기준 2013년 1만2000여명→2021년 2만4000여명) 단체 몸집이 커지면서 이권다툼이 조직화·정치화됐다. 특히 젊은 변호사들의 등장이 판을 크게 바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청년 변호사들이 기득권 변호사들을 엎는 과정에서 전문직 단체 선거가 아니라 정치판 선거처럼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서울변회 선거 때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의 변호사가 네거티브 선거 프레임을 짰다”고 했다. 직선제 전환 시기부터 선거를 지켜봐 왔다는 또 다른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모임인 한국법조인협회(한법협)이 단체를 장악한 뒤 수당을 먹고사는 수단으로 변질시킨 측면도 있다"고 했다.
특히 이번 변협회장 임기(2023~2024년) 내에 대법원장·공수처장 등 새로 뽑아야 하는 주요 보직이 유독 많아 추천권을 가진 회장 자리에 대한 주목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올해 대법관 3명과 헌법재판관 3명을 바꿔야 하고, 내년엔 대법관 6명과 헌법재판관 4명의 임기가 끝난다.
다만 세 후보 간 정치 성향 차이는 크지 않다. 안병희 후보를 비방하는 쪽에선 안 후보를 ‘친민주당·친공수처’라고 하지만 “군 출신인데 진보면 얼마나 진보겠느냐”는 해석도 있다. 결국 “셋 다 보수 성향의 후보고, 누가 당선되든 현 정부와 같이 가려는 발맞춤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