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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중국이 가장 무서워하는 북한 행동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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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4일 북한 원산항에 도착한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훈련함대 대원들이 북한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2011년 8월 4일 북한 원산항에 도착한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훈련함대 대원들이 북한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북한의 행동은 무엇일까? 이제까지 6차례의 핵실험 과정을 보면 중국은 처음에 놀랐지만 6차 때쯤 되니 무덤덤해졌다.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뿐이지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일까? 중국이 오래전부터 ‘설마 그것은 아니겠지’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군의 북한 강원도 원산항 기항(寄航)이다. 기항은 배가 항해 중에 목적지가 아닌 항구에 잠시 들르는 것을 말한다.

김일성은 중국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 카드를 꺼내곤 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1986년 10월 일이다. 캐스퍼 와인버거 미 국방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에서는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양더즈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양상쿤이 나와 그를 만났다.

그들은 미군의 대전차전투·야포와 야포 방어·대공 방어·대잠수함 전투 등 방어적 측면의 4개 분야에 한정해 중국에 무기를 판매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또한 미 7함대의 중국 항구 내 기항 문제도 다루었다. 와인버거의 방중은 미·중 관계가 절정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 11월에 미 7함대가 칭다오에 기항했다. 지금처럼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보면 언제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미 함대의 중국 기항 문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는 상하이·칭다오·다롄 등 세 항구를 기항지로 거론했다. 하지만 상하이와 다롄은 제외됐다. 다롄은 위도상 평양과 직선 상에 있어 북한을 자극한다는 우려가 있어 빠졌다. 반면 칭다오는 위도상으로 한국의 군산을 마주 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이 칭다오에 대해 항의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달랐다. 미 함대가 서해안으로 진입한다는 그 자체가 그에게 공포였다. 김일성은 “그렇다면 북한도 미 7함대에 기항지를 제공하겠다”며 반발했다. 중국의 결정에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김일성이 말한 기항지는 바로 원산항이다.

중국은 당황했다. 원산항은 중국이 생각하는 일종의 남방한계선이다. 이곳에 미군이 들어온다는 것은 중국에 ‘제2의 한국전쟁’을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국 해군을 원산항에 입항시키려고 북한을 설득했다. 그 결과 중국 해군은 1996년,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원산항에 입항했다. 중국 해군의 동해 진출은 당연히 한·미·일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도 중국과 마찬가지다. 여러 차례 북한에 원산항을 기항지로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북한이 받아줄 것으로 기대한 것은 아니다. 북한도 그에 상응하는 요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협상용이라고 추정된다. 그것이 성사되면야 정찰위성으로 부족한 중국·러시아의 동북 지역 군사시설을 훤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원산~베이징 거리를 생각하면 중국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더 위협적인 것은 북·미 관계가 중국이 원하는 현상 유지(status quo)가 아니라 현상 변경이다. 중국에 더 골칫거리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김일성이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 그렇다고 당시 중국은 가까워지는 미·중 관계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김일성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북한에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북한 화물의 소련 수송에 필요한 신의주-선양을 통한 시베리아 철도 이용 한도를 늘려 주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동해 진출을 꿈꿔왔다. 개혁개방 이후 군사·경제적으로 동해는 중국에 전략적 요충지가 돼 가고 있었다. 동해에서 군사적으로 미·일의 진출을 저지해야 했고, 경제적으로 동북 3성의 출구를 찾아야 했다. 서해는 다롄이 있지만, 달랑 1곳밖에 없었다. 따라서 화물이 폭주하기 때문에 대체 항구가 필요했다. 거리를 따지더라도 다롄은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에서 멀다. 그래서 중국은 동해로 출해(出海)하려고 애썼다.

그러다 창지투(창춘-지린-투먼) 선도구가 2009년 지방정부 주도에서 국가급 개발 프로젝트가 됐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필요조건이 동해로 출해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항출해(借港出海, 타국의 항구를 빌려 바다로 진출) 전략을 선택했다. 그래서 북한의 나진, 청진, 원산에 접근했다.

중국이 가장 관심을 둔 곳은 청진이다. 나진항은 러시아와 나눠 사용하고 있다. 사실 나진항은 1973년 러시아가 개발한 항구다. 러시아는 1974년부터 나진항을 통해 베트남으로 전략물자를 수송했고, 대동남아 중계무역항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러시아가 2~3부두, 중국이 4~6부두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청진항에 비해 작은 편이다.

그래서 함경북도 최대의 항구인 청진을 노리고 있다. 청진은 후야오방 총서기가 1984년 답사까지 다녀올 정도로 오래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북한의 청진‧원산 등 동해안 항구를 방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중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방증이다.

후야오방은 김일성에게 “청진항의 독점적인 이용을 보장하는 전용권(專用權)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일(對日) 수출입 화물수송에서 이것이 성사되면 수송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북·중 철도인 창춘-투먼-남양-청진 선을 이용할 경우, 종래 다롄항을 통한 수송로보다 약 1000㎞ 이상 거리를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야오방은 중국의 대일 화물량이 늘어나게 되면 북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설명까지 했다. 김일성에게 손해를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진항 개발에 소련이 자금을 지원했던 것처럼 중국이 청진항의 시설 확충과 수송체계를 현대화하는 조건으로 전용권을 주었다.

그 이후 후야오방의 퇴진, 한·중 수교 등 정치적 문제로 청진항 개발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2018년 5월 다롄에서 열린 시진핑-김정은 정상회담에서 청진항 개발이 다시 논의됐다. 한 달 뒤에 열릴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당근’을 준 것이다. 동해를 미국에 내주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청진항 개발을 위한 사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우선 중국 훈춘과 건너편인 북한 원정리를 연결하는 신두만강대교가 2016년 개통했다. 이에 앞서 북한 원정리~나진항(53.5㎞) 간 북한 내 도로 보수 공사가 2012년 마무리했다. 이제 나진항~청진항 도로 보수 공사가 남아 있다. 이것마저 끝나면 청진항~원산항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북한이 원산을 놓고 중국과 거론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원산은 북한에 각별한 장소다. 김일성이 1945년 9월 19일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군함을 타고 원산으로 입국했다. 그래서 원산은 김일성에게 특별한 곳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원산에서 자랐다. 태어난 곳이 정확하지 않지만, 원산이 유력하다. 워싱턴포스터 베이징 지국장인 애나 파이필드는 『김정은 평전, 마지막 계승자』에서 원산을 8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소개했다. 그는 책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모두 원산을 좋아했다고 적었다.

원산은 북한에서 성지와 같은 장소이자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그레이트 게임에서 보면 원산은 미‧중의 관심이 높고 북한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곳이다. 코로나19 이전에 김정은은 그런 원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했다.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등이 그 프로젝트다. 김정은은 원산의 백사장인 “명사십리를 인파십리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원산은 그레이트 게임의 각축장이 아니라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이 훨씬 낫다. 김정은이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것보다 원산을 관광지로 더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더차이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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