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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분원·APEC 양보못해" 한국의 두 해양도시, 맞붙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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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박형준 부산시장(왼쪽)은 지난해 1월 19일 로랑 르본 퐁피두센터 관장을 만나 해외분원과 파트너십 모델을 제안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오른쪽)은 지난해 11월 14일 로랑 르본 관장을 만나 인천에 퐁피두 미술관 분원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진 부산시, 인천시

박형준 부산시장(왼쪽)은 지난해 1월 19일 로랑 르본 퐁피두센터 관장을 만나 해외분원과 파트너십 모델을 제안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오른쪽)은 지난해 11월 14일 로랑 르본 관장을 만나 인천에 퐁피두 미술관 분원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진 부산시, 인천시

“세계적인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고, 부산 분원을 설립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지난해 1월 19일 박형준 부산시장)
“세계적인 공항과 항만이 있는 인천에 오면 퐁피두센터는 아시아에 명성을 떨치게 될 것” (지난해 11월 14일 유정복 인천시장)
한국의 대표적 해양도시인 인천시와 부산시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국내외 인프라와 외교 행사를 유치하기 위한 두 도시 간 경쟁이 가속하면서다. 인천과 부산이 나란히 프랑스 퐁피두 센터 분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해사(海事)전문법원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2019년 한·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와 2020년 국제관광도시 유치전에서 시작된 대립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다.

퐁피두 센터는 근·현대미술관과 공공도서관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프랑스 메스, 스페인 말라가, 벨기에 브뤼셀, 중국 상하이에 분원을 두고 있다. 리모델링을 위해 2023년 말부터 문을 닫는다.사진 인천시

퐁피두 센터는 근·현대미술관과 공공도서관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프랑스 메스, 스페인 말라가, 벨기에 브뤼셀, 중국 상하이에 분원을 두고 있다. 리모델링을 위해 2023년 말부터 문을 닫는다.사진 인천시

 가장 치열한 건 프랑스 퐁피두 센터 분원 유치전이다. 퐁피두 센터는 근·현대미술관과 공공도서관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프랑스 메스, 스페인 말라가, 벨기에 브뤼셀, 중국 상하이에 분원을 두고 있다. 지난해 1월 19일 박형준 부산시장은 프랑스 파리에서 로랑 르본 퐁피두 센터 관장을 만나 부산에 해외분원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부산 북항 일원을 예정지로 제시하면서 미술관 구상까지 설명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2030 월드 엑스포 개최를 노리는 만큼 부산시의 위상과 시민의 요구에 걸맞은 세계적 미술관을 유치한다’는 구상이었다. 박 시장이 지난해 6월 퐁피두 센터를 다시 방문한 뒤 부산시는 ‘세계적 미술관 유치 기본구상 연구용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지 사정으로 퐁피두 센터 실무진의 방한이 미뤄지는 사이 인천시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1월 14일 유정복 인천시장이 퐁피두센터에서 로랑 르본 관장을 만나 “인천에 분원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퐁피두 센터 측은 “인천시와 협력을 논의하게 돼 기쁘다”고 답했다고 한다. 후발주자인 인천시는 “국제공항을 갖춘 만큼 인천에 분원이 생기면 세계적인 문화 경유지가 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공항과 가까운 인천 경제자유구역을 예정지로 검토하고 있다. 조속히 실무 협상을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일 오전 인천시청 앞 인천애뜰 광장에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기원 조형물이 공개되고 있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은 세계 최대의 지역 협력체로 현재 한국을 포함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총 21개국이 가입해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일 오전 인천시청 앞 인천애뜰 광장에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기원 조형물이 공개되고 있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은 세계 최대의 지역 협력체로 현재 한국을 포함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총 21개국이 가입해 있다. 연합뉴스

 2025년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두고도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해 3월 동덕여대 산학협력단에 ‘APEC 정상회의 유치전략 발굴 용역’을 맡기면서 시동을 걸었다. 유 시장은 지난해 9월 싱가포르에서 파티마 스타 마리아 APEC 사무총장을 만나 “국제공항과 국제기구가 다수 있는 인천은 APEC 정상회의를 위한 최적의 도시다”라고 강조했다. 부산시도 지난해 5월 부산연구원에 ‘2025 APEC 부산 유치 전략 기본 계획’용역을 맡기면서 유치전에 가세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은 2005년 APEC,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노하우가 풍부하다”라고 말했다.

부산 동백섬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는 2005년 APEC 정상회의와 2019년 한·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가 열렸다. 사진 부산시

부산 동백섬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는 2005년 APEC 정상회의와 2019년 한·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가 열렸다. 사진 부산시

해사법원 유치를 둘러싼 일전도 예고돼 있다. 해사법원은 선박 충돌 사고나 해상보험 및 선원 관련 사건 등을 전담 처리하는데 국내엔 해사법원이 없어 분쟁이 발생하면 영국·싱가포르 등의 재판이나 중재에 의존해 왔다. 2020년 법원행정처는 해사법원 설치 추진 방침을 정했고 해사법원 설치를 위한 법 개정안(각급 법원의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은 이미 국회에 계류 중이다. 부산시는 “전국을 관할하는 지방법원 급 1개소를 부산에 우선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인천시는 “선사․해운회사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아태지역 사무소와 해경청이 송도에 있으니 인천이 적합하다”고 맞서고 있다. 해사법원 유치는 서울시도 희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두 도시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각자 어느 분야에 집중할지를 두고 내부에서 조율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도시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인프라를 확장하고 싶은 지자체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돼 있다”며 “코로나19 확산세가 완화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맺으면 유치전은 치열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무분별한 유치 경쟁을 막기 위해선 국가가 각 도시에 성격에 맞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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