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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대리운전 지옥 만든 만취청년 '아침 콜'…쥔 돈은 1만6천원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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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코로나19 여파로 위기 몰린 대리운전 업계〉
직접 대리운전 해보니 위기 실감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지난 3일 오후 10시 15분쯤, 서울 마포에서 구로구까지 가는 대리운전 콜이 앱에 떴다. 요금 1만 5000원. 휴대폰을 재빠르게 터치해 콜을 잡는 데 성공했다. 고객 위치 등 상세 정보가 뜬다. 배운 대로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대리기사입니다. 구로 가시죠?”
“예 맞아요.”

대리운전을 배우고 첫 손님을 모시게 됐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중소 대리운전 업체들이 카카오모빌리티에 이은 티맵모빌리티의 대리운전 사업 진출로 긴장하는 상황. 대리기사들 역시 불황까지 겹쳐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이들의 얘기를 실감하기 위해 한 업체에 요청해 기사로 등록하고 직접 대리운전에 나섰다. 대리기사용 앱을 깔고 보험에 가입한 뒤 길로 나갔다. 몇번이나 손님을 놓친 끝에 겨우 콜을 하나 잡은 것이다. 호출 장소인 뒷골목 술집 앞에 가니 한 남성이 손을 흔든다. “구로 가는 손님이신가요?” “예.”
운전을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던 고객이 “기사님 계좌번호 불러주세요”라고 한다.
잠시 당황했다. 대리비를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한단다.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강주안 기사님?”
“예 맞습니다.”
“만 오천원 송금했습니다.”
대리기사의 개인정보는 노출된다. 대리기사 앱에 고객 전화번호는 가상으로 뜬다. 그러나 기사는 실명과 번호가 노출되는 것은 물론 계좌번호도 알려줘야 한다.

첫 운행을 무사히 마치고 시내로 나오는 콜을 기다리는데 올라오지 않는다. 버스정류장에 막차라는 글씨가 뜬다. 결국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해 돌아왔다. 두 시간 정도 휴대전화를 쳐다보고 운전해 손에 쥔 돈이 1만 5000원. 수수료 20%(3000원)를 대리운전 회사에서 가져갔다. 거기에 보험료로 1224원이 나갔다. 대중교통비까지 제하면 1만원도 못 벌었다. 오전 2시 넘도록 손님을 기다렸지만, 경기도 먼 지역 외엔 콜을 잡을 수가 없다. 포기하고 잤다.

 지난 5일 오전 1시 30분쯤 대리기사들을 서울 서초구 등지로 태워주는 무료 셔틀이 합정역 부근에서 대기 중이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이창수 이사장 등이 운행한다. 강주안 기자

지난 5일 오전 1시 30분쯤 대리기사들을 서울 서초구 등지로 태워주는 무료 셔틀이 합정역 부근에서 대기 중이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이창수 이사장 등이 운행한다. 강주안 기자

아침에 일어나 다시 앱을 켰다. 오전 8시 30분쯤 콜이 떴다. 서울 홍익대 부근에서 은평구로 가는 손님이다. 2만 5000원. 재빨리 터치하고 전화를 걸었다. 술에 많이 취한 목소리다. "만취했다면 콜 잡은 걸 취소해도 된다"는 대리기사의 조언이 떠올랐지만, 날도 밝은데 별일 있으랴 싶어 고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홍대 앞 유흥가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가 보인다.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손을 흔든다.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차엔 담배 연기가 가득하다. 더 황당한 건 뒷자리에 한 청년이 누워 코를 골며 잔다. 운행을 취소하고 싶지만, 절차가 부담되고 500m를 달려온 고생이 아깝다. 목적지를 내비에 입력하고 출발했는데 “도중에 ○○앞에 한 번 내려주세요”라고 한다. 당황스럽다. 경유지에 차를 세우는데 대리를 부른 청년이 안전벨트를 푼다.

“선생님이 내리시나요?”
“예.”
“그러면 저분은 어떻게 해요.”
“대리 부를 때 찍은 주소로 가면 깰 거예요.”
“저렇게 정신이 없는데 깬다고요? 그리고 대리비는 누가 내시나요.”
“깰 거예요. 대리비는 저 친구가 줄 겁니다.”
그러곤 차에서 내린다. 차를 큰 길가에 세워두고 따라갈 수도 없다. 인사불성인 젊은이를 태우고 앱에 찍힌 주소를 향해 운전했다. 아파트 앞에 도착했으나 목적지엔 동 호수도 안 적혀 있다. 차를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

“고객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좀 더 세게 흔들면서 목소리를 높여 “몇동 몇호에 사시나요”라고 물었다.
“아파트, 아파트”라고만 말하며 눈도 안 뜬다.
대리운전 회사에서 해준 조언은 “만취해서 집을 못 찾고 대리비를 안 주면 파출소를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경찰 얘기를 꺼내면 대개 해결된다는 조언이다. 실천해봤다.
“고객님, 이러시면 파출소 갈까요? 경찰서 갈까요?”
그래도 계속 잔다. 경찰의 위력을 이용해 깨우려는 작전은 실패했다. 계속 시간을 보낼 수 없어 차를 몰고 아파트 출입구에 들어섰다. 차단봉이 올라간다. 아파트 주민이라는 얘기다.

차를 세워두고 관리사무소로 갔다. 차량번호를 알려주면서 사정을 얘기했다. 직원이 주민 명단을 뒤지더니 전화를 한다.
“○○○○ 차주시죠? 대리기사분이 가족을 태워왔는데 안 일어난다고 합니다. 대리비 2만 5000원도 준비해 주세요.”
너무 고마웠다. 차로 돌아가 “곧 부모님이 나오신다”고 말하자 바로 정신을 차린다. 키가 훤칠하고 연예인처럼 잘 생겼다. 이런 청년이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한 중년 남성이 차로 다가왔다. 화난 얼굴로 묻는다.
“얼마라고요?”
“2만 5000원입니다.”
1만 원짜리 두 장과 1000원짜리 다섯 장을 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파트를 나섰다. 콜이 없어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2시간 넘게 일하고 번 돈은 2만원이 안 된다. 5000원을 수수료로 제한다. 보험료에 버스비를 빼니 1만 6000원 남짓이다. 대리기사는 손님을 잘못 만나면 극한직업이 된다.

◇막막한 중소 대리운전 업계=대리운전 회사는 카카오와 티맵이 잇따라 대리운전에 진출하면서 타격이 심하다고 말한다.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 장유진 협회장은 "영세 업체들이 서로 도와가며 개발한 서비스를 대기업이 빼앗는다"고 주장한다. 카카오나 티맵 측은 대리운전은 아직도 유선 콜이 훨씬 많아 대기업 피해가 작다고 주장한다. 현장 얘기는 다르다. 한 콜센터 직원은 "카카오 대리운전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지난번 카카오 장애 때 콜이 엄청 늘더라"고 말했다.

거기에 유선 업체들이 쓰는 앱 회사를 두 회사가 인수했다. 카카오가 2위인 콜마너를 확보한 이후 티맵이 1위 로지를 인수하면서 중소업체 사이에 우려가 커진다. 중재에 나선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5월 대리운전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대기업의 신규 진입과 확장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중소업체들은 "대기업이 계속 현금 프로모션을 남발한다"고 항의한다. 카카오측은 "우리는 권고를 준수하며 중소업체들은 티맵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티맵측은 "프로모션은 권고안에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했다"고 해명했다.

중소 업체들 "대기업이 다 뺏어"  

카카오ㆍ티맵 진출에 위기감 고조

소상공인연합회 차남수 정책홍보본부장은 "신규 하이테크 기업과 기존 아날로그 업체가 공존과 공생이라는 키워드로 상생 발전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소규모 대리운전사업자의 수익구조 개선이나 보험문제 해결, 사업자들에 대한 프로그램 제공 등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티맵모빌리티 측은 "중소업체들이 요청한 공용콜센터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리기사에 온정, 그러나…=지난 5일 오전 2시쯤 서울 서초구에 있는 대리기사 쉼터를 들어가니 10여명이 안마의자에 눕거나 휴대전화를 보며 쉰다. 마스크도 나눠 준다. 쉼터와 무료 이동 서비스가 는다.

지난 5일 오전 2시쯤 이창수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이사장이 합정역에서 출발한 대리기사용 무료 셔틀을 운전하고 서울 서초구 대리기사 쉼터 앞에 도착했다. 쉼터 안에는 10여명의 대리 기사가 안마의자 등에서 쉬고 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5일 오전 2시쯤 이창수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이사장이 합정역에서 출발한 대리기사용 무료 셔틀을 운전하고 서울 서초구 대리기사 쉼터 앞에 도착했다. 쉼터 안에는 10여명의 대리 기사가 안마의자 등에서 쉬고 있다. 강주안 기자

그러나 대리기사들에게 절실한 건 수입이다. 이날 무료 셔틀에서 만난 12년 경력의 대리기사는 코로나19 여파에 계절적 요인까지 겹쳐 힘들다고 했다. 매년 1~3월이 보릿고개라고 한다. "올해는 술을 줄이겠다"는 새해 결심이 잠시 실천되면서 손님이 주는 데다, 새 학기 자녀들에게 여러 가지 비용이 들면서 모임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앱ㆍ보험료 중복" 대리기사 불만

실제로 일해보니 기사의 고충이 실감 난다. 대리기사는 넘쳐나고 콜을 잡긴 어렵다. 20% 수수료가 나가고 보험료를 뗀다. 지난 1일엔 앱 사용료 1만 5000원이 빠져나갔다. 전업 대리기사는 각종 명목으로 훨씬 많은 지출을 한다. 같은 회사의 앱도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 각각 수수료를 받는다. 콜을 하나라도 더 잡으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앱을 여러 개 깔아야 한다. 그는 "한 회사가 앱을 여러 개 깔게 해놓곤 각각 돈을 받는다"며 "보험 역시 여기저기 중복으로 내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라고 말한다. 그는 "정부가 제발 보험만이라도 통합해서 하나만 낼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를 다루는 게 우리 업무지만 대리기사를 위한 정책도 고민한다"며 "여러 개 앱에 수수료를 내는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