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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감산하는데 삼성은 “NO”…치킨게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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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반도체 전망 

줄일 것이냐, 버틸 것이냐. 소비 위축에 부진한 실적을 받아든 반도체 업체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보복 소비’가 주춤해지며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호황을 누리던 반도체 업계에 혹한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해 국내 30대 주요 상장사 재고자산(3분기 기준)은 18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다. 그만큼 반도체 재고도 쌓였다. 감산이나 투자 축소로 위험을 줄일 건가, 과감한 ‘코너링 추월 전략’(곡선의 안쪽을 파고들어 역전)으로 시장을 선점할 건가 고민이다.

수익성도 가파르게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간 매출(잠정 실적)은 301조7000억원으로 전년보다 7.9% 상승했지만, 영업이익(43조3000억원)은 16% 감소했다. 첫 매출 300조원 돌파지만, 남는 장사를 못 했다는 의미다. 한때 ‘10만 전자’를 꿈꿨던 삼성전자 주가(9일 기준)는 6만700원에 거래 중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재고가 쌓이고 팔아도 남는 게 없다 보니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는 일제히 감산에 나섰다. 미국 마이크론은 올해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20% 줄이고 설비투자는 30% 이상 축소한다. 인력도 10% 이상 줄일 예정이다. SK하이닉스도 올해 설비투자를 50% 줄이고 수익성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감산할 계획이다. 미국 인텔·퀄컴 등도 설비투자는 물론 생산 축소, 정리해고에 나선다.

모두가 감산에 들어갈 때 ‘No 감산’ ‘마이웨이’를 외치는 곳이 있다. 삼성전자다. 지난해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테크데이 2022’에서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현재로선 (감산) 논의는 없다.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조”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마이웨이가 ‘1등의 자신감’이라는 시각도 있다. 메모리 반도체 전체 주문량은 줄었어도 삼성전자를 원하는 발주처는 많다는 것이다. 주문량이 여전히 많거나 재고가 좀 쌓여도 금세 소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발주 주기도 변수다. 메모리 반도체 주문은 대개 6개월~1년 단위로 이뤄진다. 지난해 하반기 반도체 업체의 감산 효과는 올해 하반기에나 나타난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의 감산 효과가 나타나는 하반기에는 반도체 공급이 확 줄어든다. 이때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던 삼성전자가 대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민복 대신증권 연구원은 “실제 계획과 상관없이 증산 기조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경쟁사 투자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시장 점유율 확대 및 업황 개선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봤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업계에선 ‘치킨 게임’(경쟁 심화) 우려도 나온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가 생산량을 줄이는 대신 가격을 낮추면 다른 업체도 줄줄이 이익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다가 적자의 늪으로 몰릴 수 있어서다. 2000년대 많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경쟁했던 시기도 그랬다. 치킨 게임이 벌어지며 2007년 당시 시장 3위인 독일 키몬다, 2010년 2위인 일본 엘피다가 파산했다. 이후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입지를 다졌다.

삼성전자가 홀로 버티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저조한 만큼 결국 감산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4조3000억원)은 분기 기준으로 2014년 3분기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5조원을 밑돌았다. 올해 1분기 예상 실적도 좋지 않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도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1336억 달러(약 168조원)로 지난해 1593억 달러(약 200조원)보다 16% 역성장할 것”이라고 본다.

수요가 줄면 결국 공급량을 조절해야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투자 여력이 있는 삼성전자도 반도체 부문은 대규모 적자여서 2023년 투자 축소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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