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참여 기업 중 60% 이상이 스타트업
비전 펼칠 마당 마련하고, 규제 풀어줘야
한국 스타트업들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일부터 4일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3’이 그 주 무대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자락인 올해 CES는 3년 만에 최대 규모로 열렸다. 174개국에서 3800여 개 기업이 참가했다. 한국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55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역대 CES에 한국 기업 참여가 많긴 했지만 참가국 기준으로 둘째로 많이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이 중에는 삼성전자와 SK·LG전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도 있지만 60% 이상(350여 개)이 한국 스타트업들이었다. 이들은 100여 개의 혁신상을 휩쓸었고, 최고 혁신상도 4개나 받았다.
올 한 해 전 세계 경제가 다 어렵다지만 한국은 더욱 그렇다. 미국의 계속된 기준금리 인상을 따라가느라 급작스럽게 올려버린 국내 금리, 미·중 기술패권 경쟁 탓에 공급망이 바뀌면서 시장을 잃어버린 상황 등이 우리 경제에 한파를 불러오고 있다. 한국 경제의 80% 이상을 지탱해 온 대기업들이 언제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때 중국 시장을 호령하던 스마트폰과 화장품은 이미 대륙의 터전을 잃은 지 오래다. 한국 산업의 대표 주자인 반도체 역시 대만·미국 등과의 경쟁이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다. 대기업뿐이 아니다. 경기 침체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스타트업들이 ‘투자절벽’을 맞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스타트업 투자 액수는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급감했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에 등장한 K스타트업들에선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다시 보였다. KAIST는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등 교수와 학생·동문 창업 스타트업 12개사를 파견해 혁신 기술을 소개했다. 서울대 화학과 교수가 창업한 그래핀스퀘어는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어느덧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정상급 연구개발(R&D)을 기반으로 창업한 기업이기에 더욱 믿음직했다. 한계에 도달한 한국 대기업들도 이들과의 협업 등을 통해 재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뿐이 아니다. 국내 지자체·대학 등 곳곳에서 대규모 참관단이 CES를 다녀갔다. 포항공대의 경우 휴학생을 제외한 20학번 학부생 전원을 CES에 보냈다. 이들은 4일 동안 전시장 곳곳을 누비며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체험했다.
CES를 빛낸 K스타트업에 한국 사회가 할 일이 있다. 비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마당을 만들어주고, 규제를 풀어주는 일이다. 국내에 이용할 수 있는 발사장이 없어 브라질까지 갔다가 결국 돌아와야 했던 우주로켓 스타트업, 혁신기술을 갖고도 원격의료 규제로 사업을 맘껏 펼칠 수 없는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더 이상 좌절하게 해서는 안 된다. 퍼스트무버 국가로의 변신은 단지 말과 칭찬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