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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돌봄교사 일상을 찍었다, 갈수록 자세가 낮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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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를 공동 연출한 황다은(왼쪽)·박홍열 감독을 지난 4일 만났다. 부부인 두 사람은 “세상에 보이지 않던 돌봄 노동자를 호명하는 도구로 다큐를 만들었다” 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를 공동 연출한 황다은(왼쪽)·박홍열 감독을 지난 4일 만났다. 부부인 두 사람은 “세상에 보이지 않던 돌봄 노동자를 호명하는 도구로 다큐를 만들었다” 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선생님과 아이들은 모두 평어(平語·예의를 갖춘 반말)를 쓴다. 이름 대신 오솔길, 논두렁, 자두 등 서로 별명으로 부른다. 교사 4~5명이 아이 60여명을 돌보는데도, 명령이나 호통은 들리지 않는다. 함께 뒤섞여 놀고, 먹고, 교감할 뿐이다. 교과목 학습 대신, 놀이·휴식이 중심인 이곳을 아이들과 부모는 ‘터전’이라 부른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 자리 잡은 ‘도토리 마을 방과후’의 이야기다. 이곳의 일상, 더 정확히는 이곳 교사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가 11일 개봉한다.

영화를 만든 건 자녀를 이곳 마을 방과후에 맡겨온 박홍열·황다은 부부다. 각각 영화 촬영감독, 시나리오 작가인 두 사람은 이번 다큐를 공동 연출했고, 배급·홍보까지 도맡아 한다. 지난 4일 ‘터전’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난생 처음 하는 영화 배급·홍보 일에 “죽을 것 같다”고 웃으면서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던 돌봄 노동자들이 다큐를 통해 사회적으로 호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토리 마을 방과후’는 2017년부터 운영된 공동육아협동조합 형태의 돌봄 기관이다. 교사 5명이 초등학생 60여명을 돌본다. 저학년 아이들이 하교하는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방과후 일상을 책임진다. 그런데 교사들은 이곳에서 10년을 일해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정부 지원 없이 조합비로 운영되는 ‘미인가’ 기관인 탓이다.

‘도토리 마을 방과후’의 선생님과 아이들. [사진 스튜디오 그레인풀]

‘도토리 마을 방과후’의 선생님과 아이들. [사진 스튜디오 그레인풀]

공동육아가 활성화된 성미산마을에 2015년 정착한 박 감독과 황 작가는 5년여간 두 아이를 방과후에 보내면서도 이런 교사들 현실에 무감했다고 털어놨다.

“집에서 어머니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잘 모르듯이, 선생님이 하는 돌봄 노동도 ‘이 일이 원래 좋은가 보지’ 하고 5년을 지냈어요. 그런데 새로 온 선생님이 1년도 못 채우고 나가는 게 반복되고, 오래 근무한 선생님도 ‘미래가 불안하다’고 하는 걸 듣고서야 깨달았죠. 부모들에게 부담 줄까 봐 월급도 잘 안 올리세요. 저임금이 계속되니 미래가 더욱 보이지 않는 구조가 이어졌더라고요.”(박 감독)

교사들의 어려움을 깨달은 뒤 이들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시작한 다큐 촬영은, 2020년 초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예기치 못하게 극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방과후는 방역을 이유로 문 닫은 학교와 학원을 대신해 아이들을 더 오래 돌봤고, 밀집도를 줄이려고 집에 남은 고학년 아이들에게는 간식 꾸러미까지 챙겨 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방과후 교사들은 백신 우선 접종 대상자에 포함되지 못하는 등 배제됐다. 박 감독은 “병원·보건소 어디에 전화해도 ‘미인가 기관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이번 다큐로 뭔가 크게 변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분들 존재가 알려진다면 국가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희망할 뿐”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현실을 알리는 게 목적이라면, 극적인 화면 연출이나 인터뷰를 활용할 법도 하다. 하지만 어떤 컷에서도 직접적인 호소는 보여주지 않는다. 더 나은 돌봄을 위해 토론하는 모습을 묵묵히 비춘다. 황 작가는 이런 연출이 “‘아바타2’처럼 관객의 체험을 유도한 것”이라며 웃었다. 관객이 방과후의 일원이 된 기분으로 함께 해달라는 의미다.

“선생님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드러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처음 찍을 때는 카메라를 위에서 높게 들고 찍었는데, 그건 나도 모르게 돌봄을 낮게 바라봤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에 갈수록 카메라를 바닥으로 내려서 낮은 자세로 찍었어요.”(박 감독)

인터뷰 대신, 내레이션으로 교사들 속마음을 전달한다. 녹음은 황 작가가 대표로 했고, 문장은 모두 교사들 말과 글에서 발췌했다. 교사들이 쓴 글을 모은 『아이들 나라의 어른들 세계』라는 책도 영화 개봉 다음날(12일) 출간된다. 방과후 교사들을 세상에 알리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부부는 “함께 한 사람들 마음이 관객에게 닿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과후 조합원 열여섯 분 정도가 영화 홍보에 필요한 배너 제작 같은 일을 도와주시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이 다큐를 공동 육아에서 시작된 ‘공동 출연·제작·배급’ 영화라고 생각해요. 영화의 진정성이 닿아서 아주 조금씩, 작은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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