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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브라질 정치폭동이 섬뜩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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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선거부정을 주장하는 브라질 우파 폭도들이 8일(현지시간) 브라질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부정을 주장하는 브라질 우파 폭도들이 8일(현지시간) 브라질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1. 브라질에서 8일(현지시간) 의사당ㆍ대법원ㆍ정부청사까지 점거하는 폭력시위가 터졌습니다.
꼭 2년전인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에서 벌어진 의사당 점거시위와 너무 닮아 주목됩니다. 사실은 더 악성입니다.

2. ‘대선불복’이 직접 원인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같습니다.
폭도들은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패배한 우파후보 보우소나루(67ㆍ자유당) 지지자들입니다. 좌파후보 룰라(78ㆍ노동당)의 당선을 ‘선거부정’이라 주장합니다. 표차는 1.8%로 역대급 접전이었습니다. 보우소나루는 ‘전자투표기 조작’을 주장하며 불복ㆍ검증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습니다.

3. 근본원인은 정치적 극한대립이라는 점도 같습니다.
보우소나루는 ‘남미의 트럼프’라 불려온 강경우파입니다. 반면 룰라는 빈민 출신 실용좌파입니다. 브라질은 빈부격차가 극심합니다. 우파들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룰라를 ‘공산주의자’라 생각합니다.

4. 미국 트럼프가 배후작용했기에 닮았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미국 극우 유튜버 배넌이 일찌감치 브라질 우파를 선동했답니다. 배넌은 트럼프 백악관의 ‘수석전략가’출신으로 트럼프에게 대선불복을 가르친 인물입니다. 배넌은 브라질 대선 직후부터 ‘냄새가 난다’며 부정선거를 주장했습니다. 대선 직후 보우소나루 아들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와 배넌을 만났습니다.

5. 미국보다 악성인 건 사법불신까지 겹쳤다는 점입니다.
폭도들은 대법원까지 점거했습니다. 룰라의 부정부패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이유입니다. 룰라는 퇴임직후 뇌물과 돈세탁 등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고 복역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2021년 3월 ‘형 무효’결정을 내렸습니다. 덕분에 룰라는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습니다.

6. 그런데 대법원의 결정이 애매합니다.
‘무죄’가 아니라 ‘재판 절차상 오류’에 따른 ‘유죄선고 무효’입니다. 1심 재판장이 룰라를 잡아넣기위해 검사와 몰래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2019년 온라인언론에 폭로됐습니다. 그 재판장은 보우소나루 정부의 법무장관에 발탁됐습니다. 좌파 지지자들은 룰라 재판을 ‘정치적 음모’라 생각합니다.

7. 우파들은 룰라의 유죄를 확신합니다.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것이 아니기에 룰라의‘유죄’는 바뀌지 않았다고 봅니다. 룰라를 대통령 자격이 없는 부패사범으로 간주하기에 보수 군부를 향해 ‘개입(쿠데타)’을 호소합니다. 보우소나루는 군출신입니다.

8. 브라질의 사법불신은 한국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이재명 민주당대표는 부정부패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은 불과 0.73% 표차로 역대급 초접전이었습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재명의 유무죄에 대한 판단이 갈립니다. 10일 이재명의 출두를 앞두고 선동적 발언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법절차가 정치갈등을 증폭시킬까 우려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