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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지갑 더 털어간 에너지값 상승…소득 최하위 연료비 12%↑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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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시내의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서울 시내의 전기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강원도 춘천에 사는 45살 이모씨는 요즘 치솟은 난방비 때문에 걱정이 크다. 기초생활 수급 가정이라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6살 딸과 구순 어머니가 집에 있다 보니 등유 보일러를 끌 수 없어서다. 그는 "작년 겨울은 180만원 어치 기름 넣고 버텼는데, 올해는 최소 300만원은 넘을 거 같다"면서 "산 옆에 집이 있어 추운 편인데 난방을 덜 할 수밖에 없다. 가족들에게도 내복을 더 입히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이 씻기고 식사 준비하는 데 쓰는 LPG도 가격이 뛰었다. 그는 "20㎏ 가스통 하나에 4만5000원씩 한다. 1년 전까진 3만2000~3만3000원이었는데 은근 비용이 많이 나간다"면서 "전기요금도 인상되고 에너지 비용이 오른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했다.

저소득층의 전기·가스·등유 등 연료비 부담이 다른 가구들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가격 상승 속에 서민 지갑부터 더 가벼워진 셈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9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2년 1~3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가 연료비로 지출한 돈은 월평균 6만6950원이었다. 2021년 1~3분기(5만9588원)와 비교하면 12.4%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소득 상위 20%(5분위)의 연료비 증가율은 6.8%였다. 전체 가구 기준으로는 6.7% 늘면서 1분위 대비 증가 폭이 절반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가 닥쳤다. 국내서도 전기·가스요금과 지역 난방비 등이 줄줄이 인상되는 가운데 '서민 연료'로 불리는 등유나 LPG 가격도 크게 뛰어올랐다. 이 때문에 1년 새 모든 분위를 통틀어 소득 최하위층의 연료비 지출 증가가 두드러진 것으로 풀이된다. 난방비는 줄일 수 없는 필수 생계비 지출이다 보니, 이들의 실질적인 부담은 더 크다.

등유, LPG 등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농어촌이나 주택가에 많이 쓰인다. 지난해 1~3분기 등유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57.9%, 취사용 LPG는 23% 급등했다. 같은 기간 전기료는 10.9% 인상됐고, 도시가스 요금은 8.9% 올랐다.

크리스마스였던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구석에 실외기에서 나온 물이 얼어 있다. 연합뉴스

크리스마스였던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구석에 실외기에서 나온 물이 얼어 있다. 연합뉴스

올해도 전기·가스요금 추가 인상과 여전히 높은 유가 등으로 서민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미 올 1분기 전기요금은 9.5%(㎾h당 13.1원) 오르면서 2차 오일쇼크 당시인 1981년 이후 최고 폭을 기록했다. 가스요금은 1분기엔 동결됐지만, 2분기부터 상당한 폭의 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평균 등유 판매가는 8일 기준 L당 1507.06원으로 1080원대였던 1년 전보다 고공행진 중이다. 상대적으로 가계에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이 에너지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전기요금 할인, 에너지바우처 단가 인상 등으로 에너지값 상승에 따른 취약계층 연료비 부담을 던다는 계획이다. 다만 복지 현장에선 더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근홍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강원지역본부 사회복지사는 "에너지바우처만 해도 신청 안 하는 분도 꽤 있고, 구체적인 지원 내용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값 상승에 민감한 저소득 가정을 위해 정부 지원 규모가 지금보다 더 확대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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