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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불필요한 자료만 삭제" 주장에도…산업부 공무원들 집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에 따라 월성원전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 대한 1심 선고가 9일 오전 대전지법 316호 법정에서 열렸다. 신진호 기자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 대한 1심 선고가 9일 오전 대전지법 316호 법정에서 열렸다. 신진호 기자

대전지법 제11형사부(박헌행 부장판사)는 9일 공용전자기록 손상 및 감사원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산업부 국장급 공무원 A씨(56)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과장급 B씨(53)와 서기관급 C씨(48)에게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C씨에게 적용된 방실침입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들에 대한 1심 선고가 이뤄진 건 2020년 12월 24일 기소된 지 2년 1개월여 만이다.

A씨와 B씨는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2019년 11월 말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자료 530건에 대해 삭제를 지시하거나 묵인·방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C씨는 같은 해 12월 2일(월요일) 감사원과 면담 일정이 잡히자 하루 전인 1일(일요일) 오후 11시쯤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두 시간 동안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자료 530건을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등 산업부 공무원 3명은 문재인 정부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포함한 탈원전 정책 수립과 추진을 담당한 실무자였다. 당시 각종 보고서를 작성, 이를 청와대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에게 보고했다.

재판부 "감사원 방해·공용전자기록 손상 인정"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산업부 공무원으로 감사원이 요구한 자료 가운데 일부만 제출하거나 삭제,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고 공용전자기록을 손상한 혐의가 인정된다”며 “(피고인들의) 범죄로 공직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돼 그에 상응하는 상당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20년 11월 5일 검찰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뉴스1

2020년 11월 5일 검찰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뉴스1

이어 “(범행 당시) 피고인 A씨는 원전산업정책과 실무자로 사실상 가장 고위직으로 감사원 감사를 알고 부하직원에게 자료 삭제할 지시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피고인들이 자료를 삭제한 사실을 인정하고 국가의 감사 기능을 방해한 점을 후회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 수립·구체화했던 게 산업부"

재판부는 “문재인 정부는 전체 에너지 중 원자력을 낮추는 방향을 정책을 추진했으며 산업부는 이를 구체적으로 수립하는 곳(기관)”며 “산업부는 월성 원전 1호기와 관련해 청와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과 협의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했고 국회가 이를 고발해 감사가 진행됐다”고 했다.

2020년 11월 6일 검찰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에서 이틀째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뉴스1

2020년 11월 6일 검찰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에서 이틀째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어 “피고인들 범행으로 감사원은 한국수력원자력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과 관련한 산업부 개입 의혹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이 때문에 감사 기간이 예상했던 기간보다 7개월가량 지연되는 등 감사를 방해했다”고 판시했다.

피고인들 "관행에 따라 자료 삭제"…재판부 "인정 못 해"

산업부 공무원 3명은 재판 과정에서 “인사이동 과정에서 관행에 따라 자료를 삭제했을 뿐 감사 방해에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인들이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청을 알고 있던 데다 다른 자료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데 유독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이유에서다.

2020년 11월 5일 검찰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를 압수 수색하고 있다. 뉴스1

2020년 11월 5일 검찰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를 압수 수색하고 있다. 뉴스1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에 대해서도 피고인과 변호인들은 “자료가 개인이 작성한 중간 보고서 형태로 산업부 내 다른 PC에도 자료가 남아있는 만큼 공용전자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당시 탈원전 정책에 대한 보고가 이뤄진 시점임을 고려하면 자료를 삭제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객관화된 자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020년 10월 감사원 발표…검찰 수사 시작

월성 원전 자료 삭제 사건은 2020년 10월 ‘2018년 6월 월성 원전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경제성이 지나치게 낮게 평가됐다'’는 감사원 발표에서 시작됐다. 검찰은 2020년 11월 5~6일 산업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압수 수색하면서 수사를 공식화했다. 이어 A씨 등 산업부 공무원 2명 구속한 뒤 월성 원전 운영·폐쇄에 직접 연관된 한수원 임직원도 불러 조사했다. 원전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 이른바 ‘윗선’ 지시와 관여가 있었는지가 핵심 조사내용이었다. 검찰은 지난 10월 24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B씨와 C씨에게 각각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등 혐의로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지난해 6월 7일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신진호 기자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등 혐의로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지난해 6월 7일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신진호 기자

월성 원전 자료 삭제에 가담한 산업부 공무원 3명에게 유죄가 선고되면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 비서관, 정재훈 전 한수원 사장 등의 재판에도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백 전 장관과 채희봉 전 비서관은 직권 남용 등 혐의로 기소돼 대전지법 제11형사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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