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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어 바닷물로 김장 담근다"…가뭄지옥 통영 우도의 비명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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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방에 1년 가까이 가뭄이 지속한 가운데 섬마을 주민들은 ‘식수난’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광주·전남은 물론 경남 섬 지역으로 가뭄 피해가 확산하는 양상이다.

바닥 드러낸 깊이 15m 우물

경남 통영 욕지면에 있는 주민 40여명이 사는 작은 섬 '우도'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이 말라 15m 아래 바닥이 드러났다. 안대훈 기자

경남 통영 욕지면에 있는 주민 40여명이 사는 작은 섬 '우도'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이 말라 15m 아래 바닥이 드러났다. 안대훈 기자

“제한급수? 아낄 물이 있어야 아끼지”
지난 9일 오전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26가구 42명이 사는 이 섬마을 이장 김영래(56)씨가 한 말이다. 지난해 9월 초 태풍 힌남노가 몰아친 뒤부터 우도에는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후 섬마을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이 말랐다. 벌써 4개월째다. 김씨가 휴대용 손전등으로 비추자, 15m 깊이 우물은 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김씨는 “우물 안에 물기 하나 없다. 바짝 말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집이 적게는 2개 많게는 5개 이상 설치된 5t짜리 물탱크도 비어 있었다. 두드리면 “텅텅” 소리가 났다. 주민들은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받은 1.8L짜리 생수 3~4개로 일주일을 버티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1차례 통영시가 배에 급수차를 실어와 18t의 물을 급수하고 있지만, 종전 하루 평균 100t씩 공급 가능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김씨는 “오죽 물이 없으면 김장도 바닷물로 했겠냐”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당장 밥 짓거나 마실 물도 부족해 씻거나 빨래할 엄두도 못 낸다”며 “바닷가는 염분이 많아 자주 씻어줘야 하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1달에 1~2번 씻어…변기 쓸 물도 없어 요강 쓴다”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섬마을 주민들이 가뭄 여파로 '물 부족' 불편을 겪는 가운데 한 주민이 목욕을 하지 못해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다. 안대훈 기자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섬마을 주민들이 가뭄 여파로 '물 부족' 불편을 겪는 가운데 한 주민이 목욕을 하지 못해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다. 안대훈 기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도 주민들은 매주 1차례 배 타고 뭍으로 가 빨래·목욕을 한다고 한다. 문모(80대) 할머니는 “한 달에 한두 번 부산에 사는 아들·딸 집에 갈 때 씻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날 머리를 감지 못했는지, 밤새 베개에 눌렸는지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두피가 그대로 보였다. 머리숱이 적지 않은 편인데도 그랬다.

문 할머니는 화장실 변기 내릴 물도 없어 요강을 쓴다. 두꺼운 겉옷 등 부피가 큰 빨랫감은 모아뒀다 자녀들 집에 가져가 세탁한다고 했다. 33㎡(10평)가 채 안 되는 방 한 칸을 민박집으로 운영하는 문 할머니는 “물 없으니 어떻게 손님을 받냐”며 “며칠 전에도 서울서 8명이 낚시하러 온다고 예약 전화가 왔는데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가뭄으로 '물 부족' 불편을 겪고 있는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섬마을 주민이 사각형 고무 통에 받아 놓은 빗물. 안대훈 기자

가뭄으로 '물 부족' 불편을 겪고 있는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섬마을 주민이 사각형 고무 통에 받아 놓은 빗물. 안대훈 기자

연화도-우도-욕지도행 여객선을 운항하는 선장 김모(60대)씨는 “섬 찾는 사람들이 화장실을 많이 쓰는데, 물이 없어 못 쓰다 보니 불편을 많이 호소한다”며 “이런 섬 사정을 모르고 왔다가 쫓기듯 나오는 분도 있다”고 했다.

십시일반 돈 모아, 20t 물탱크 직접 설치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방파제 인근에 섬마을 주민들이 직접 500만원을 들여 설치한 10t짜리 물탱크 2개. 안대훈 기자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 방파제 인근에 섬마을 주민들이 직접 500만원을 들여 설치한 10t짜리 물탱크 2개. 안대훈 기자

통영시가 급수선을 우도에 보내긴 하지만 물 공급 과정이 원활하지 않다. 우물이 섬 중심부에 있어, 급수선에서 곧바로 물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급수차에 실어 물을 옮겨야 하는데, 우도 내 마을 길은 3m가 채 안 되는 좁은 곳도 있어 대형 급수차는 지나갈 수 없다. 18t의 물을 공급할 때 3t짜리 급수차가 6번 왔다 갔다 한다.

결국 주민들이 직접 모은 돈 500만원을 모아 급수선이 정박할 수 있도록 우도 방파제 인근에 10t짜리 물탱크를 2개 설치했다. 또 마을 우물까지 500m 길이 배관도 깔았다.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이틀 동안 주민들이 직접 설치했다. 김 이장은 “작년 초부터 요구해왔던 건데, 통영시는 이제 예산이 배정돼 3월에나 설치한다고 하더라”며 “당장 급한 상황인데…거리가 멀고, 인구가 적은 곳은 항상 행정의 손길이 늦는다”고 했다.

통영 9개 섬 2300여명 ‘물 부족’…1년 새 생수 5300여개 공급

가뭄으로 '물 부족' 불편을 겪고 있는 경남 통영 섬지역 주민들에게 공급할 1.8L짜리 생수 5400병이 지난 5일 통영시 관리하는 '통영아라호'를 통해 옮겨지고 있다. 사진 통영시

가뭄으로 '물 부족' 불편을 겪고 있는 경남 통영 섬지역 주민들에게 공급할 1.8L짜리 생수 5400병이 지난 5일 통영시 관리하는 '통영아라호'를 통해 옮겨지고 있다. 사진 통영시

우도를 포함해 물 부족을 겪는 통영 지역 섬 주민은 2300명에 달한다. 욕지도·연화도·노대도·오곡도·수우도·우도·추도·매물도·사량도 주민이 해당한다. 통영시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번 달 5일까지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받은 1.8L짜리 병 생수 1만8900여개를 공급했다. 최초 가뭄이 시작된 지난해 1월부터 공급한 400mL, 1.8mL짜리 병 생수 3만4300여개까지 합하면 5만3200개가 넘는다. 특히 물 부족 상황이 심각한 우도·연화도·노대도에는 통영시가 급수선을 통해 최근 3개월 동안 매주 한 차례 18~36t의 물을 공급했다.

통영시 관계자는 “욕지댐 저수 용량을 확장해 하루 급수량을 800t에서 1800t으로 증량, 부속 섬인 노대도·우도·연화도로 배관을 연결해 공급하는 ‘식수원 확장 사업’을 진행 중"이라며 "올해 10월이 준공하면 물 부족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통영시 직원들이 지난 5일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에 1.8L짜리 생수 810병을 공급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통영시 직원들이 지난 5일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에 1.8L짜리 생수 810병을 공급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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