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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열정페이와 퇴준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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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퇴준생들(퇴사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페이스북 그룹이 있다.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와 유사하지만, 회사 인증을 하지 않아 보다 다양한 직군이 모인다.

여기엔 월급쟁이가 알아두면 좋을 정보가 많다. 친하지 않은 상사의 결혼 축의금 적정선에서부터 1인 가구가 자취하기 좋은 동네, 연말정산 ‘꿀팁’ 등이 그중 일부다. 때로는 ‘도대체 이런 건 왜 고민할까’ 싶은 질문이 올라오곤 한다. ‘그만둔 회사에 옛 동료들 만나러 가도 되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 전 직장을 방문했다 옛 상사한테 “놀이터냐”라고 혼났다는 사연에서 나온 설문이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정과 사람이 있다.

이 그룹의 백미는 ‘퇴사의 변’이다. 성장을 기대하며 최저임금 받으면서 몇 년 버텼는데, ‘번아웃’이 와 더 못하겠다는 정도의 얘기는 흔하다. 월 180만원을 받고 일해온 3년 차 디자이너가 신입의 연봉이 500만원 정도 많은(연 2700만원) 걸 발견, 분노해 사표를 쓴다. 해고됐는데 “회사에 피해가 가니 자진 퇴사로 하자”고 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고민, 상사가 눈앞에서 자신의 사직서를 찢었다는 하소연 등을 볼 수 있다. 밀린 급여, 폭언, 성희롱은 단골 퇴사 사유다. (물론 한쪽의 주장이라는 한계는 있다.)

가수 강민경이 자신의 쇼핑몰 상담 직원 채용 과정에서 대졸 정규직에 연봉 2500만원을 제시했다가 맹비난을 받고 있다. 본인은 화려하게 살면서 직원에게 ‘열정페이’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강민경은 바로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이제 화살은 그가 과거에 산 고급 가스레인지와 매입한 건물, 착용한 의류의 가격, 유튜브 수익 기부 등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채용공고가 진짜 단순 실수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크게 중요하지도 않다.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일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는 사람들이다.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서 오래 일하고 적게 버는 게 그토록 시급한 문제라면, 강민경 쇼핑몰이나 그의 소비 성향을 때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이미 많은 퇴준생이 그 증거다.

그럼에도 해프닝에 가까운 이 사건이 이토록 화제가 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사장님들이 채용 전 한번 더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퇴준생이 아닌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 게 목표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