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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원필의 미래를 묻다

한국은 고립된 에너지 섬, 원전 비중 50%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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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래 에너지 기술과 한국의 선택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장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장

지난 12월 초 미국의 레이저 핵융합 연구시설인 국립점화시설(NIF)에서 사상 최초로 핵융합 ‘점화’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5MJ(메가줄)의 에너지를 투입해서 3.15MJ의 핵융합 에너지를 얻은 것이다. 핵융합발전을 향한 긴 여정의 중요한 이정표일지도 모르는 이번 성과를 계기로 주요 에너지 기술의 미래와 우리나라의 대응 전략을 논의하려 한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세계 각국은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 확보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석유 자원의 확보가 가장 중요했고, 풍부하고 경제적인 석탄의 이용도 증가했으며, 오염물질 배출이 덜한 천연가스의 비중이 커졌다. 수력발전 개발도 지속했고, 선진국 중심으로 원자력 발전이 확대됐다. 1990년대 이후에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중요해지면서 석탄과 석유의 비중은 줄어들고, 풍력·태양광 발전과 바이오 연료 이용이 본격화했다. 저탄소 전력의 약 절반을 공급하던 원자력은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 논의에서 대체로 무시됐는데, 주요 환경그룹과 그에 동조하던 정치세력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미국서 첫 점화에 성공한 핵융합
기대 크지만 상용화까진 긴 시간

지구촌 에너지 정책 큰 변화 없어
태양광 20% 넘으면 전력망 부담

에너지 믹스, 나라마다 조건 달라
소형모듈원자로 개발 속도 내야

2050년 탄소중립을 향한 여정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에 설치된 레이저 핵융합 연구시설에서 연구원들이 관련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에 설치된 레이저 핵융합 연구시설에서 연구원들이 관련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1년도 세계의 1차 에너지 소비는 화석연료 77%, 수력 6%, 기타 재생 6%(풍력 2.8%, 태양광 1.5%, 바이오 0.6% 등), 원자력 4% 등으로 이뤄졌다. 에너지 소비의 형태는 전력 20%, 액체연료 39%, 고체연료 21%, 기체연료 17%, 열 3% 등이다. 전력 생산 점유율은 화석연료 62%, 수력 15%, 기타 재생 13%(풍력 6.6%, 태양광 3.5%, 바이오 2.6% 등), 원자력 10%로 나타났다.

1차 에너지 소비에서 저탄소에너지 점유율이 절반을 넘는 선진국은 빙하나 만년설 등 수력자원이 풍부하거나(노르웨이), 원자력 비중이 특별히 높거나(프랑스), 수력·원자력·신재생을 잘 조합한(스웨덴·핀란드·스위스 등) 소수의 국가뿐이다. 에너지 전환의 모범국으로 알려진 독일조차 화석연료 비중이 80%에 가깝다.

인류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면서 전기와 수소 및 바이오 연료의 비중을 크게 높이고, 전기와 수소는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생산해야 한다. 실현 가능성은 현재 사용되거나 개발 중인 저탄소 에너지원들의 기술 발전과 상업화 수준에 달려 있다.

먼저 핵융합발전 기술부터 살펴보자. 지구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려면 중수소와 삼중수소 이온들(플라스마)을 수억도 이상에서 충분한 시간 동안 높은 밀도로 가두어야 한다. 원자폭탄을 이용하는 수소폭탄과 달리 핵융합발전에서는 안정적이고 제어 가능한 핵융합 반응이 필요하다.

핵용합 상용화 향후 50년 걸릴 듯

수억도 이상의 온도를 견디는 재료는 없으므로 창의적으로 플라스마를 가두는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자기장을 이용하는 대형 토카막 장치가 대표적으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국제기구는 2025년까지 장치를 구축하여 2035년 중수소-삼중수소 핵융합 실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비용이 계획보다 상승하고 일정이 지연되더라도 ITER의 성능 목표는 결국 달성되리라 기대한다.

다만, 본격적인 상용화로 이어질 시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레이저빔을 이용하는 관성 핵융합의 경우 NIF에서 점화조건을 달성했다고는 하나, 400MJ의 에너지로 생성된 레이저빔이 2.05MJ의 에너지 펄스를 투입하여 극히 짧은 시간의 핵융합 반응을 일으켰을 뿐이다. 연속적이고 제어 가능하고 발전 가능한 핵융합발전과의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대형 토카막 장치나 레이저 핵융합 장치를 이용한 핵융합발전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려면 5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스타트업 중심으로 개발되는 소형 장치들에서 의외의 성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나, 핵융합을 에너지믹스 차원에서 논의하기보다는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기술개발 추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력발전도 꾸준히 증가할 것

그렇다면 금세기의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는 재생에너지·원자력,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낮춘 화력발전 및 에너지 저장기술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수력발전은 19세기 말 도입되어 현재 30여 개국에서 전력 생산 점유율이 50% 이상일 정도로 기술이 성숙하고 출력 조절도 쉬운 최상의 저탄소 발전원이며, 느리더라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변동성 재생에너지인 풍력과 태양광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다만, 간헐성과 변동성이 매우 커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낮에만 간헐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광은 발전량 점유율이 15~20% 수준을 넘어서면 전력망에 큰 부담을 준다. 이밖에 바이오에너지는 수송 분야를 중심으로 중요한 역할이 기대되며, 지열·태양열·조력발전도 국지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원자력도 중요한 저탄소 발전원이다. 현재 주로 이용되는 대용량 원전은 물론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개발 중인 소형모듈원자로(SMR)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SMR은 여러 기를 모듈식으로 조합하여 다양한 규모의 전력과 열 수요에 대응하고, 유연한 출력 조절 기능으로 태양광과 풍력의 간헐성·변동성을 보완할 수 있다.

또한, 안전성이 높아서 제철소·화학공단·반도체공장·데이터센터 등 에너지 수요지 가까이에서 전력과 열·수소를 공급할 수 있다. 연료 교환 없이 장기간 운전도 가능해 해상과 우주·오지 등의 에너지원으로서 고유한 장점을 지닌다. 그 가능성을 인식한 국내 대기업들도 외국의 SMR 개발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배터리·양수발전 역할도 중요해져

배터리(BESS)와 양수발전(PHES)은 태양광과 풍력의 간헐성과 변동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에너지 저장방법이다. 수소나 암모니아 등으로 변환하여 저장하는 방법도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다. 배터리가 가장 보편적이고 전기 수요 변화에 가장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저장방법이지만, 비용·입지·안전성 등의 문제로 대량 설치에 어려움이 있다. 양수발전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수소와 암모니아는 에너지를 저장하여 수소차나 수소·암모니아 발전, 수소환원제철 등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공기 압축 등 다른 에너지 저장 방법들도 모색되고 있는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변동성은 원자력 등 다른 저탄소 발전원들과도 종합적으로 연계해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국의 에너지믹스는 고유한 에너지·자연·인구·산업 및 정치적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립된 에너지 섬이자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인구와 산업이 특정 지역에 편중된 우리나라의 경우 주변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려면 원자력발전 비중 50%가 적합하다고 본다. 대형 원전에 의한 안정적·경제적인 기저전원 공급이 30%를, 출력조절이 가능한 대형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가 나머지를 담당하면 될 것이다.

원자력은 기술자립에 의한 준(準) 국산에너지일 뿐만 아니라, 경제성, 국토이용 효율성, 공급 안정성 관점에서 재생에너지보다 유리하다. 2021년 연료 수입금액은 0.5%였던 우라늄이 총 에너지의 11%를 공급한 바 있다. 나머지는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와 수소에너지 및 에너지저장장치를 최적으로 구성하여 감당해야 한다.

에너지도 수출산업으로 키워야

물론 각 에너지원의 실제 점유율은 각 기술의 발전과 국내외 에너지 및 산업 환경 변화, 국민 수용성 등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에너지 산업이 국내 에너지 공급만이 아닌 세계시장을 목표로 하는 수출산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노력에도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유지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태풍 강도 증가나 이상 한파 등 기후변화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 자체가 에너지 설비의 작동 환경을 크게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노력과 함께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실질적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최종 목표를 숫자로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상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과학과 사실에 기반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시나리오 분석을 먼저 수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와 후손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국가 에너지정책이 실사구시적으로 추진되도록 국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원필=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부를 마치고, KAIST 원자력공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엔지니어와 KAIST 연구교수를 거쳐 2001년부터 원자력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 부원장 및 원장 직무대행을 역임했고, 지난해 9월 원자력학회장에 취임했다.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