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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막오른 칩4 경쟁…미·일·대만 투자 속도전, 삼성은 어닝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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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23년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변곡점에 직면하는 해다. 반도체 헤게모니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다. 그동안 반도체 시장의 주력이었던 메모리 칩의 독주가 멈추고 시스템 반도체가 중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처럼 메모리 칩에 집중해 온 종합반도체회사(IDM)의 주도권이 위탁생산을 잘하는 파운드리 기업으로 분산되고 있다.

6~8일(현지시간) 미국 소비자가전쇼(CES)에서 확인된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속도를 내는 것도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을 촉진한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차에 소요되는 AI반도체·이미지 센서도 새로운 기능의 반도체 수요를 일으키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미국·한국·일본·대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칩스법(반도체·과학법)으로 총 28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일본과 대만은 반도체 공장 신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이 칩4를 통해 중국의 추격에 제동을 걸면서 한국으로선 반도체 기술만큼은 시간을 벌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칩4 내부 경쟁은 도전이자 위기가 되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 기술까지 탐낸 것을 계기로 미국·일본 등 잠자던 ‘반도체 사자’들이 깨어나면서다. 대만은 파운드리를 앞세워 반도체 영토를 넓히고 있다. 문제는 이들 3개국이 사활을 걸고 반도체 투자에 나서면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남부는 반도체 벨트로 변신

미국은 반도체 생산 거점을 미국 내부로 빨아들이고 있다. 각각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강대국인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생산시설은 블랙홀처럼 미국에 빨려들고 있다. 8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집계한 ‘반도체 기업의 향후 10년간 미국 투자 계획’에 따르면 미국은 칩스법의 골자가 알려진 2020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1956억 달러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칩스법으로 지원하는 보조금(520억 달러)의 3.7배에 이르는 규모다. 법안이 지난해 하반기에 발효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미국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SIA는 “미국 16개 주에서 4만여 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국·대만 기업을 불러들이면서 미국 남부를 반도체 벨트로 바꿔놓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눈여겨볼 대목은 일본의 움직임이다.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으로 일본 기업에도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칩이 주도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도화선이 되면서 온갖 시스템 반도체를 유연하게 생산하는 위탁생산 방식의 파운드리가 반도체 시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자율주행차, 스마트폰용 이미지 센서, 인공지능·수퍼컴퓨터 등 다양한 용도의 시스템 반도체가 필요해졌다.

기회가 오자 일본은 과거 한때 반도체의 지존이었다는 자존심을 다 내려놓았다. 일본은 반도체 영토 회복을 위해 1980~90년대 반도체 기술을 가르쳐줬던 대만에서 훨씬 업그레이드된 반도체 생산기술을 역수입하고 있다. 일본은 구마모토현 기쿠요(菊陽)초에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TSMC 유치를 위해 이 공장 건설에 필요한 투자금 1조2000억 엔 가운데 40%인 4760억 엔을 보조금으로 지원한다. 공사는 군사작전 하듯 속도전이다. 통상 5년 걸리는 반도체 공장 신설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한다. 밤에도 조명을 밝혀 사실상 24시간 공사를 진행한다. 기쿠요초는 반도체산업지원실을 통해 공사 진행을 돕고 있다. 공사 개시 2년 만인 내년 말부터 10~20㎚(나노미터, 1억분의 1m) 반도체가 월 5만5000장(300㎜ 웨이퍼 기준) 쏟아진다.

대만, 논물까지 반도체공장 용수로 돌려

대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물이 부족하자 논물을 반도체 공장 용수로 돌리는 바람에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 장면이 뉴욕타임스(NYT)의 1면을 장식했다. 그렇게 사활을 건 결과 대만은 중국에서 벗어나 미국·일본에도 차례로 반도체 공장을 갖게 됐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이 나오고 있지만, 대만의 반도체 생산 능력이 곧 ‘아이언돔(철의 방패)’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TSMC는 올해 유럽에도 진출해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시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을 넘어 없어선 안 될 ‘산업의 불’로 격상되고 있다.

한국에는 설상가상으로 불황까지 겹치면서 반도체 업황이 나빠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4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9% 감소했다. 한국도 K칩스법을 내놓았지만, ‘대기업 특혜’라는 고질적 반기업 논리에 기획재정부까지 동조하면서 기존 6%에서 올해부터 25%까지 올리려던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이 8%에 멈춰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뒤늦게 지원 확대를 독려해 기재부가 25% 방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1년 한시적 지원책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래서는 전통적인 제조 강국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든 칩4 내부 경쟁에서 한국의 설 자리가 위태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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