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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개혁]전엔 카메라 꺼지면 협상했는데...반대만 하는 '비토크라시 악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회동을 마친 후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간을 1월 17일까지 연장합의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회동을 마친 후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간을 1월 17일까지 연장합의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정부가 출범 8개월을 맞고 있지만 민생 법안은 쌓여만 가고 있다. 169석의 거대야당은 사사건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고 있고, 소수여당 역시 국회 법사위나 대통령 거부권을 활용해 야당 비토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런 구한말식 대결정치가 반복되면 나라가 결딴날지 모른다”(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우려가 나온다.

[2023 선거개혁, 올해가 적기]

대표적인 사례는 추가연장근로제(근로기준법 개정안)다. 2018년 주 52시간제 도입 당시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는 추가 8시간을 근무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있었는데, 지난해 말 연장 여부를 놓고 여야가 충돌한 탓에 처리되지 못했다.

피해는 영세 자영업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경기 고양 일산동구의 A마트는 임직원이 28명이다. 지난해까지 주 60시간을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달 말 주 52시간에 맞춘 새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근로시간이 줄면 임금도 줄어들기에 직원 불만도 크다고 한다. 이 업체 사업주는 통화에서 “임금을 줄이면 직원 다수가 퇴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윤 대통령, 추경호 경제부총리.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윤 대통령, 추경호 경제부총리. 뉴시스

2020년 3월 도입됐다가 지난해 일몰된 안전운임제(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도 비슷한 상황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운전자에게 일종의 최저임금이다. 화물업계 관계자는 “제도가 갑자기 일몰되면서 그간 제도안착의 효과도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발의한 법률안 110개 중 95개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할 때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조이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를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박대출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은 여야 대치상황 탓에 국회 기획재정위에 계류돼 있다.

이봉주 민주노총 화물연대 위원장이 지난달 8일 대전 대덕구 민주노총 대전지부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마치고 회의결과를 밝히고 있다. 뉴스1

이봉주 민주노총 화물연대 위원장이 지난달 8일 대전 대덕구 민주노총 대전지부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마치고 회의결과를 밝히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이달 25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아동수당 확대안(0세 아동 부모에 월 70만원, 1세 아동 부모에 월 35만원 부모급여)의 근거법인 아동수당법 개정안(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도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 회부만 됐을 뿐 아직 제안설명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의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 특별법은 국회 행안위에 배정됐지만 회의는 한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반대로 거대야당이 법안 처리에 성과를 낸 것도 아니다. 민주당이 지난해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꼽았던 22대 민생입법과제 가운데 납품단가연동제(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개정안)만이 국회에서 처리됐다. 그나마 민주당이 1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벼르는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현재로선 대통령 거부권 가능성이 높다. 양곡관리법은 쌀 생산량이 예상 수요량의 3% 이상이거나 쌀 가격이 전년보다 5%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의무매입하는 내용인데 윤 대통령은 "무제한 수매는 결코 우리 농업에 바람직하지 않다"(4일 업무보고)고 지적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납품단가연동제 촉구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납품단가연동제 촉구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익명을 원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과거엔 여야가 서로 다투다가도 카메라가 꺼지면 협상이 임하는 분위기였지만, 현재는 지지층 눈치를 보느라 막후 협상 자체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한표라도 이기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는 반대편을 악마화하려는 요소가 잠재돼 있다”며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만 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 민주주의)’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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