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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사상 공부하느라? 中 영어 능력, 전 세계 62위 기록했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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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금지 구역에 ‘연기를 끌어당기지 마시오’라고 적혀있다. [사진 Gengo]

금연 금지 구역에 ‘연기를 끌어당기지 마시오’라고 적혀있다. [사진 Gengo]

중국의 영어 실력이 후퇴하고 있다. 일본보다는 낫지만, 러시아보다 못하다. 카타르보단 잘하지만 한국보단 아니다.

스위스 유학전문 기업 EF에듀케이션퍼스트는 매년 영어 능력 지수(English Proficiency Index)를 발표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를 제외하고 공용어 또는 외국어로 사용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영어 구사 능력을 평가한다. 2022년은 111개국 21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됐다.

1위는 네덜란드, 2위는 싱가포르로 꼽혔다. 싱가포르는 2020년 10위에서 지난해 2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며 24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중국은 62위를 기록하며 ‘영어 구사 능력이 낮은 국가’(Low proficiency)로 분류됐다.

한국은 36위로 중간(Moderate proficiency) 정도 수준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를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 중 필리핀은 22위, 말레이시아 24위, 홍콩은 31위로 나타났다.

111개국을 대상으로 한 영어 능력 지수. 한국(36위), 중국(62위), 일본(80위)다. [EF 공식 홈페이지]

111개국을 대상으로 한 영어 능력 지수. 한국(36위), 중국(62위), 일본(80위)다. [EF 공식 홈페이지]

중국은 왜 영어를 못할까?

중국이 지난해 기록한 62위는 2021년 49위, 2020년 38위에서 크게 하락한 결과다. 조사를 주관한 EF 관계자는 “중국의 점수 하락은 전적으로 중국의 최연소 집단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말한다. SCMP는 2020년부터 당국이 주창한 공동부유(다 같이 잘 사는 사회) 정책이 영어 실력을 낮춘 주된 이유라고 분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공평한 교육 기회’ 제공을 공동부유의 핵심 어젠다로 삼고 영어 사교육과 외국어 교재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중국 교육부는 2020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수입 교과서 사용을 금지했다. 영어 교육 대신 시진핑 사상을 필수적으로 학습하라는 지침도 내려졌다. 2021년 중국 당국은 2학기부터 시진핑 사상과 공산당의 내용을 담은 교과서를 중국 전역 초중고와 대학교에 배포하고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외국의 사상이나 이념과의 접촉을 줄이려는 애국주의 주입에 속한다. 특히 미·중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중국 내 국수주의 감성이 부상하며 해당 정책에 더욱 힘이 실렸다.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외국어 교육 비중을 줄이자’는 제안을 통해 영어 교육 시간 단축을 주장했다. 현재 외국어 교육이 중국 초등학교와 중학교 커리큘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8%로, 중국어에 할애된 20~22%보다 훨씬 낮다. 언어와 수학은 각각 13~15%를, 예체능은 10~11%의 비중을 차지한다.

SCMP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의 한 중국 대학교수는 “대학, 특히 저널리즘과 헌법 연구와 같은 보다 민감한 분야에서도 영어 원본과 번역본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하이는 지난해부터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덜기 위한다는 이유로 영어 능력 시험을 치르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적인 영어교육 업체인 ‘월스트리트 잉글리시(Wall Street English)’ 중국지사는 이미 폐쇄된 지 오래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교과서.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고 우리 각자는 조국을 깊이 사랑한다. 시진핑 할아버지가 말했듯 애국심은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오래 지속되는 감정이며 각 사람의 미덕의 원천이다”라고 쓰여 있다. [바이두 갈무리]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교과서.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고 우리 각자는 조국을 깊이 사랑한다. 시진핑 할아버지가 말했듯 애국심은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오래 지속되는 감정이며 각 사람의 미덕의 원천이다”라고 쓰여 있다. [바이두 갈무리]

중국의 반응은 어떨까. 영어 교육에 대한 갑론을박은 지난 몇 년간 이어지고 있다. 다수의 중국인은 영어가 별로 필요하지 않으며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는 상황이다.

광둥성의 한 중국 칩 생산업체의 임원인 량(Liang)씨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자국산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외국어에 대한 수요도 함께 감소했다”고 말했다. 량씨는 “최근 몇 년간 외국 기술이 중국에 대체되면서 많은 국내 바이어가 중국어로 된 문서 출력을 요구하고 있어 엔지니어들이 좋은 영어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 조건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인공지능(AI) 발달과 함께 영어에 대한 절박함도 줄었다. 광둥의 한 디지털 인쇄 공장의 류(Liu)씨는 “회사의 일부 영업사원은 고객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온라인 번역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그들이 주문을 잘 받기만 한다면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국적 기업의 현지화 추진도 업무 중 외국어 사용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일부 글로벌 브랜드는 중국에서 예산을 삭감하고 임원을 중국 본토 사람으로 고용하여 일상적 업무에 영어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영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관점도 존재한다. 추자오후이(儲朝暉)이 중국교육과학원 연구위원은 “영어는 (미국의 언어인 동시에) 세계 공용어”라면서 “중국이 발전하려면 중국인들은 영어에 더 능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부모들은 영어가 여전히 자녀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며 외국어는 세계를 배우는 도구로서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간판. 적절한 번역: 물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사진 셔터스톡]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간판. 적절한 번역: 물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사진 셔터스톡]

중국 본토의 영어 능력이 하락하는 동안 홍콩은 지난 3년간 높은 수준의 영어 능력과 경제 수준을 유지 중이다. 글로벌 인재 채용 전문 기업 로버트 월터스(Robert Walters)의 디렉터 티파니웡(Tiffany Wong)은 홍콩의 대다수 고용주가 영어, 광둥어, 북경어 등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지원자를 찾는다고 말했다. 특히 영미권 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을 위주로 채용한다고 전했다. 홍콩 월스트리트 잉글리시는 은행, 관광, 식품 및 음료 업계의 전문가로부터 세계 비즈니스 언어 학습에 대한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영어 능력 세계 순위가 꾸준히 하락하며 국제 경쟁력 위험에 대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중국의 제 1 유학국이다. 미·중 갈등 긴장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중국은 12년 연속 미국 내 유학생 수 1위 국가의 지위를 유지했다. 2020~2021학년도에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중국 유학생이 32만 명 아래로 떨어졌지만, 이 역시도 당시 미국에 유학한 외국인 학생의 34.7%를 차지했다.

당국의 지나친 영어 교육 제재에도 세계 대학 순위의 영향을 크게 받는 중국 학생들의 미국 대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인 사이에서 영어는 돈을 벌어주는 언어로 뿌리 깊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은수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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