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끝난 오피스텔 접었다"...쇠락한 책방골목 살릴 이 건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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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문을 여는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세워진 아테네 학당 건물 전경. 송봉근 기자

지난 5일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헌책방거리 인근 도로변에 높이 16m의 책 5권이 책장에 꽂힌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관광객들은 책 모양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내부를 기웃거리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모(46·여)씨는 “이곳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헌책방 골목인데 어느 날부터 가게도 하나둘 문을 닫고 쇠락해 가는 느낌이어서 안타까웠다”며 “다행히 최근에 이 골목을 상징하는 것 같은 건물이 들어서니 잘 어울리고 다시 사람들로 북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거리에 책 5권 서있어
부산 국제시장 맞은편에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이 곧 문을 열 한 건물 때문에 활력을 되찾고 있다. 다음 달 문을 열 ‘아테네 학당’이 그곳이다.

이 건물에는 보수동 골목에서도 규모가 큰 책방 3곳(우리글방·국제서적·충남서점)이 있었다. 하지만 2021년 11월 책방 3곳이 입주해 있던 건물이 한 건설업체에 팔렸다. 이어 이 건물이 고층 오피스텔로 바뀐다는 소문이 돌면서 소동이 일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책방이 추가로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책방골목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건설업체 대표가 보수동 책방골목 살리기에 힘을 보태기로 하고 지난해 5월 아테네 학당을 짓기 시작했다. 이 업체 김대권 대표는 “사실 처음에는 이곳 가치 등을 잘 몰라 건물을 매입한 뒤 오피스텔을 짓기 위해 설계까지 마쳤다”라며 “하지만 이후 지역사회가 책방골목 쇠락을 걱정하고 이를 되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알게 됐고, 2~3개월 정도 고민하다 아테네학당으로 리모델링하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아테네 학당 1층에 들어설 우리글방 모습. 송봉근 기자

카페 아테네 학당 건물 내부 천정에 재연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송봉근 기자

실제 보수동 책방 골목은 부산시가 2012년 ‘부산 슬로시티 관광명소’, 2019년 ‘부산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피란수도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중 한 곳이다.

서점 100개→30개 명맥만 유지
책방골목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이나 미군 부대 등에서 내놓은 서적이 보수동 거리 난전에서 거래되며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부산이 1970년대 이후 산업화로 성장하며 교육 열기도 뜨거워졌다. 이에 덩달아 서점도 100여개가 들어서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원도심이 낙후한 데다 영상문화 발달 등으로 책 수요가 줄면서 이 골목도 급격히 쇠락했다. 지금은 30여개 서점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김 대표가 책방골목 살리기에 힘을 보태면서 생기가 돌 가능성이 생겼다.

아테네 학당이 모티브
김 대표는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한 뒤 책방골목에 잘 어울리는 건물을 고민하다 건물 외관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림에 등장한 책 두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책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등이다. 건물 내부 천장은 김 대표가 화가를 섭외해 아테네 학당 벽화로 재현했다. 건물 1층은 기존 서점 3곳과 금은방 1곳이 들어서고, 1층 로비부터 2~4층은 카페와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민다. 현재 내부 공사 마무리 단계로 2월 중순 문을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