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 김동옥씨 '동옥서재전' 열어
전북 전주에 사는 가정주부 김동옥(54)씨는 해마다 책 100권 이상 읽는 '다독왕'이다. 김씨는 지난 1일부터 이달 말까지 전주시 인후동 동네책방 '잘 익은 언어들'에서 특별한 전시를 연다.
지난해 그가 읽은 책 209권 중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제외하고 직접 산 142권과 독서 노트 2권을 전시하는 '동옥서재전'이다. 김씨는 모든 책 첫 장에 책을 읽은 기록과 감상을 적고, 책을 일일이 꾸몄다.
2020년부터 그해 읽은 책을 이듬해 1월 한 달간 '잘 익은 언어들'에서 전시하고 있다. 올해로 3회째다.
책 전시는 '잘 익은 언어들' 이지선(48·여) 대표 제안으로 시작했다. 카피라이터인 이 대표가 책방 단골손님인 김씨와 대화를 나누다가 김씨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고 "1월에 별로 손님도 없는데 전시나 한번 해보자"고 말한 게 계기가 됐다.
김씨는 "다른 사람이 읽은 책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 아니냐"며 "첫해 전시를 보고 많은 사람이 좋아해서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00권 구매…1년 책값만 500만원
김씨가 독서 노트를 쓴 건 대학교 4학년 때부터다. 그는 "인상 깊었던 책 내용만 노트에 간간이 적다가 약 10년 전부터 한 권도 빠짐없이 적게 됐다"고 했다. "1년에 읽는 책이 100권이 넘어가니 도대체 읽은 책인지, 안 읽은 책인지 몰라 일단 적어놔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김씨가 책을 사는 곳은 '잘 익은 언어들' 같은 동네책방이다. 현재 전주에는 물결서사(서노송동)·서점 카프카(중앙동), 책방 토닥토닥(전동) 등 10여 곳이 있다. 그는 "동네책방이 유지되려면 책을 계속 사줘야 한다"며 "예전엔 인터넷이나 대형서점에서 책을 샀는데 요즘엔 10권 살 걸 9권 사자는 생각으로 동네책방을 이용한다"고 했다.
책값도 만만치 않다. 김씨는 "지난해만 400권가량 구매했다"며 "400만~500만원을 책값으로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데 돈을 쓰지 않고 모든 소비를 책 사는 데 집중한다"며 "일과가 책 읽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좋아하는 작가들이 신간을 내면 사서 보고, 책에서 언급한 책 중 관심 가는 것을 다시 찾아 읽는다"며 "독서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같이 읽으면서 (독서 목록을) 넓혀가고 있다"고 했다.
이지선 책방 대표 "독서 노트만 봐도 감동"
김씨는 지난해 읽은 책 중 '올해의 책'으로 일기와 에세이·소설 등 세 권을 꼽았다.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마이아 에켈뢰브),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이명희),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다.
김씨는 독서 노트에 책마다 제일 인상적인 한 문장과 함께 본인이 느낀 점을 적었다. 그는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에선 "삶의 작은 순간에 왜 상냥할 수 없는 것일까"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지극히 작고 하찮은 개인의 하루를 적어나가면서 그 안에 나를 담고, 이웃을 담고, 사회를 담고 있는 일기"라며 "내 일기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고, 2023년부터 내 일기가 나아가야 할 곳을 어렴풋이 안, 그러면서도 상냥함을 잃지는 말자"고 썼다.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에선 "결국 언젠가는 내가 마주해야 할 어지러운 세계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게 될 그때까지 시간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선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를 발췌했다.
김씨는 두 책을 읽은 뒤 각각 "고통 앞에 '왜'라고 묻지 않기", "'오죽하면'(을) 잊지 않는다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지 않을까"라는 감상을 남겼다.
이 대표는 "김씨는 모든 책 앞 장에 책 기록을 정성껏 정리하고, 독서 노트엔 감상을 성실하게 적었다"며 "노트만 봐도 감동"이라고 했다. 이어 "책을 멀리하는 시대에 이런 분이 계시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