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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커피' 지키려 사투…러 1만㎞밖 덮친 또다른 전쟁 [세계 한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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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진짜 전쟁은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데 우리도 전쟁을 하는 기분입니다.”

해발 1600m의 과테말라 서부 아카테낭고 화산 지대에서 커피농장을 운영하는 아나벨라(45)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의 가업이자 120여년 전통의 커피농장 ‘산타 펠리사’는 우울한 새해를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비용 상승이 중남미 커피농장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15일 과테말라 한 커피농장의 커피나무.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비용 상승이 중남미 커피농장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15일 과테말라 한 커피농장의 커피나무. AP=연합뉴스

하루에 20억 잔 이상, 전 세계에서 물과 차(茶) 다음으로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게 커피다. 그런 만큼 커피는 세계 경제의 바로미터로도 여겨진다.

커피 한 잔 값에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팬데믹(pandemicㆍ범지구적 감염병 대유행) 여파, 천정부지로 오른 금리와 이에 따른 경기 침체 등 요동치는 글로벌 경제 흐름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는 얘기다.

비료값과 사투하는 커피농장

실제로 1만㎞ 정도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후폭풍이 아나벨라의 농장을 덮치고 있다. 그는 “가파르게 오른 비료값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이번 침공에 동조한 벨라루스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가 그 배경으로 지목된다.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전 세계 비료값이 폭등했다. 설상가상 최근 들어 물가 상승 등에 따른 인건비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16일 과테말라의 한 커피농장에서 수확한 커피콩을 말리는 작업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전 세계 비료값이 폭등했다. 설상가상 최근 들어 물가 상승 등에 따른 인건비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16일 과테말라의 한 커피농장에서 수확한 커피콩을 말리는 작업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는 비료의 주원료인 질소의 세계 최대 수출국이고, 또 다른 원료인 인산염 수출은 세계 3위권이다. 또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함께 전쟁 전까지 비료를 만드는 탄산칼륨의 전 세계 유통량 42%를 책임져왔다.

세계은행(WB)이 지난달 발표한 비료가격지수(2010년이 기준점인 100)는 양국의 비료 원료 금수 조치가 본격화한 지난해 4~5월(232.8)보다는 다소 낮아졌으나, 여전히 평년의 두 배(201.8)가 넘는다.

체감 지수는 더 높다. 과테말라 커피농장이 치르는 비료값은 3년 전보다 4배나 올랐다. 커피 재배업자들은 막상 비료를 줄이고 싶어도 커피 품질을 해칠까 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버티고 있다. 아나벨라는 “‘최고 품질의 커피’란 농장의 전통과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토로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걱정은 또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ㆍ식량 등 물가 상승과 경제난으로 최근 인건비 압박이 심해졌다. 아나벨라는 “지방정부가 월급을 3배나 올리라고 한다”고 걱정했다.

먹고 살기 위해 쓰나미처럼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이주 행렬을 막기 위해 중남미 각지에서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파로 브라질 재배지 20% 타격

경제 위기만 문제가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도 커피 작황 예측을 어렵게 한다.

지난 2021년 7월, 세계 최대 커피 원두 생산국인 브라질을 덮친 한파가 대표적이다. 당시 냉해를 입은 커피콩 재배 면적이 브라질 전체의 20%에 이를 정도로 타격이 컸다.

국제커피기구(ICO)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브라질의 커피 생산량은 6340만 포대(1포대 당 60㎏)로 세계 2위인 베트남 생산량(2900만 포대)의 두 배가 넘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각종 비용이 오른 상황에서 브라질의 커피 생산량마저 크게 줄자 전 세계 커피 가격도 일제히 오름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례로 일본의 세븐일레븐은 편의점 내 즉석 원두커피 ‘세븐 카페’의 가격을 최대 20%나 올렸다. 이는 지난 2013년 세븐 카페를 시작한 이후 첫 인상이었다.

미국의 식품 관련 매체인 이터(Eater) 등에 따르면 스타벅스도 미국 내 커피 가격을 오는 7월 12일부터 최대 30센트(약 380원) 인상할 계획이다. 이는 통상적인 인상률(5~20센트)보다 높은 수준이다.

커피 재고 쌓이는 '이중고' 예상

커피값 등락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커피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미국커피협회(NCA)는 커피산업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약 2252억 달러(약 255조원, 2015년 기준)로 추산한 바 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6%를 차지하고, 관련 일자리가 169만여명에 달한다. 미 정부가 거둬들이는 커피산업 관련 세금만 280억 달러(약 31조 7000억원)에 이를 정도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커피산업은 1990년대 이후 60% 이상 꾸준히 성장하면서 몸통을 계속 키워왔다. 그런데 올해는 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이 주도하는 고금리 기조 속에 전 세계 경기 침체가 속도를 내면서 커피 수요가 예년만 못할 것이란 예측이다. 게다가 올해부터 브라질을 비롯한 세계 주요 산지의 커피 생산이 회복세로 돌아선다. 창고에 커피 재고가 쌓이게 된다는 신호다.

각종 비용 상승에 시달리는 커피 재배업자 입장에선 커피 가격마저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아나벨라의 ‘전쟁’도 더 험난하고 장기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화' 기수였던 커피…북유럽은 '커피홀릭'

커피는 지난 600년 동안 ‘세계화(Globalization)’를 대표하는 상품 중 하나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자생하던 커피가 본격적으로 외국에 전파된 것은 15세기 경이다. 예멘의 모카항(港)에서 커피콩을 실은 배가 이슬람권으로 퍼져나갔다.

1475년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 세계 최초의 카페인 ‘키바 한(Kiva Han)’이 문을 열었다. 이후 17세기에 영국ㆍ프랑스ㆍ네덜란드 등 유럽 각지에서 커피가 대유행을 일으켰다.

특히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인도네시아 자바 섬 등지에 커피 플렌테이션 농장을 만들고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커피의 환전 가치가 커지자 1882년 미국 뉴욕코코아거래소에서 브라질산 커피콩 선물이 처음 거래되기 시작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현재는 뉴욕선물거래소에서 주로 원두 커피에 쓰이는 ‘아라비카종’ 원두 경매를, 런던선물거래소에선 인스턴트 커피 재료로 사용되는 ‘로부스타종’ 원두를 취급한다.

커피는 20세기 미국 ‘금주법’(1920~33년)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했다. 커피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 시장이 됐다. 현재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1인당 하루 2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ㆍ핀란드ㆍ스웨덴ㆍ노르웨이 등 북유럽은 전통적으로 ‘커피 중독자’가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온라인 데이터 업체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네덜란드인은 연간 8.3㎏(2020년 기준)의 커피를 소비해 1인당 소비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커피는 이른바 '커피 벨트(coffee belt)'로 불리는 지역(북위 25도, 남위 25도 사이)에서 대부분 생산된다. 브라질ㆍ베트남ㆍ콜롬비아ㆍ인도네시아ㆍ에티오피아 등 5개국이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7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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