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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국방부·합참에 실망 크다” 인적 쇄신론 부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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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호 03면

북한 무인기 침범 후폭풍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오른쪽)과 김영배 의원이 6일 국회에서 북한 무인기의 비행금지구역 침범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오른쪽)과 김영배 의원이 6일 국회에서 북한 무인기의 비행금지구역 침범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의 행태에 대한 대통령의 실망감이 아주 크다. 특히 합참은 말할 것도 없다.”

북한 무인기 사태와 관련해 6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관계자가 전한 윤석열 대통령의 실망감은 무엇보다 무인기 비행경로에 대한 국방부의 설명 번복 때문이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반응에 비춰볼 때 이번 사태의 파장이 군 당국에 대한 인적 쇄신으로 번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이날 “최근 낙탄과 실사격 오류, 전투기 추락 등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 사고가 단지 무인기뿐만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지난달 26일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 다섯 대의 행적과 관련해 “대통령 경호 구역을 위해 설정된 비행금지구역(P-73)을 침범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관련 의혹을 제기한 4성 장군 출신의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서는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며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군비 태세 점검 결과 북한 무인기 한 대가 P-73 북쪽을 스쳐 지나간 사실이 지난 3일 확인됐고, “전 국민에게 알리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4일)에 따라 지난 5일 무인기의 P-73 침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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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인적 쇄신’ 가능성에 대해 “오로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그렇다고 강하게 부인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이는 지난 3일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괜한 소문(개각설)에 흔들리지 마라. 그런 일은 없으니까 새해 업무 준비에 집중하라”며 개각설을 일축했을 때의 상황과도 크게 대비된다. 당시 복수의 대통령실 참모는 “정치권에서 개각설을 흘리며 정부를 흔들려는 행위에 대해 윤 대통령이 굉장히 불쾌해 한다”며 “개각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한 인적 쇄신 가능성에는 “정말 물음표에 가까운 상황”이라며 말을 흐리는 모습이다.

“북한 무인기의 목표는 용산, 대통령실 부근까지 왔었다”고 특종 보도한 중앙SUNDAY의 지난달 31일자 1면.

“북한 무인기의 목표는 용산, 대통령실 부근까지 왔었다”고 특종 보도한 중앙SUNDAY의 지난달 31일자 1면.

이와 관련, 안보 라인에서는 “이번 사태로 군 수뇌부가 교체되는 건 북한이 바라는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이 감지된다. 외교안보 부처의 고위 당국자는 “문재인 정부 5년간 북한과의 대화 지상주의에 매몰돼 군이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며 “훈련의 정상화를 시작으로 이미 군의 인적·구조 개편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책 마련이 우선이고 인적 쇄신은 그 후의 문제 아니겠느냐”며 “북한이 두려워하는 다양한 도발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은 무인기의 P-73 침범을 주장했던 김병주 의원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거두지 않고 있다. 군 당국의 레이더 정밀 검증을 거쳐 나온 항적을 김 의원이 먼저 파악했다는 점에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지난 5일 브리핑에서 “국방부도, 합참도 모르는 그런 정보를 어디에서 입수했는지 자료 출처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이날 북한 무인기가 P-73을 통과한 것을 두고 거친 설전까지 벌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북한 무인기가 대통령실이 있는 P-73까지 휘젓고 다닌 것은 초대형 안보 참사”라며 “정부는 P-73 침투를 극구 부인하며 야당의 문제 제기를 이적 행위라고 매도했는데 이거야말로 이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 대해서도 “정권 무능을 감추려고 더욱 센 말폭탄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안보 포퓰리즘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정권 치부를 가리려고 내던지는 강경 발언이 안보 리스크의 진앙”이라고 공격했다. 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최근 9·19 남북 군사 합의 효력 정지를 언급하거나 ‘확전·응징·보복’ 같은 거친 표현을 쓴 걸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경호처장 등의 문책이 불가피하다”고 날을 세웠다. 국회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 9명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강력히 요구한다”며 “국방부와 합참에 대한 국회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추진해 책임을 따지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총공세에 국민의힘은 2017년 북한 무인기 침투 사례를 들며 반격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북한 무인기가 이번에 처음 넘어온 게 아니라 2017년 6월에도 우리나라를 휘젓고 다녔다”며 “경북 성주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기지를 정찰했는데도 문재인 정권은 침투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김 의원을 향해서도 “P-73 침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며 “(김 의원은) 30분만 연구하면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군 당국도 확인하지 못한 비밀 정보를 어디에서 입수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전날 대통령실의 의혹 제기에 여당 원내대표도 가세한 것이다.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레이더 등 수십 대의 군사 장비가 필요 없는 김 의원의 신통력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전날 “북한과 내통한다고 자백하는 것이냐”며 날을 세웠던 신원식 의원은 이날도 “경호처장을 문책하라는 김 의원 주장은 안보 자해쇼이자 저질 정치쇼”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성주 무인기 침투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인 2017년 5월 2일 발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북한 무인기는 5월 2일 우리 영공을 침범해 성주 등을 지나 북상하다가 5시간30분 뒤 인제군 야산에 추락했다”며 “문재인 정부 때인 6월 9일은 추락한 무인기를 발견한 날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도 이날 “지도를 볼 줄 아는 서울시민이라면 국회 국방위에 보고된 궤적 자료를 보고 침투 가능성을 알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박 원내대표는 “내통설을 제기한 신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9·19 남북 군사 합의 효력이 정지될 경우 접경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가 가능할지 법적 검토에 착수한 것과 관련해 군 안팎에선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여겨온 비군사적 조치인 ‘대북 심리전’ 카드를 의도적으로 꺼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대북 심리전이 재개될 경우 사소한 마찰이 군사적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운용의 묘’를 잘 살려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10월 북한이 탈북민단체가 띄운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포를 발사하자 우리 군이 대응 사격에 나서면서 긴장이 고조됐던 게 대표적 사례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9·19 남북 군사 합의 효력 정지나 대북 전단, 확성기 재개 등을 한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는 메시지만으로도 대북 압박 효과가 꽤 있을 것”이라며 “다만 대북 압박 수단을 하나씩 꺼내며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하되 위기가 한번에 증폭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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