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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치킨게임 걱정 없지만, 반도체 업계 재편 가능성 커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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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호 05면

반도체 업황 부진 비상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반도체 업체들은 재고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을 맞이하며 빠르게 공급을 늘렸던 반도체 업체들의 창고엔 재고가 눈덩이처럼 쌓인 상황이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쌓아놓은 재고는 최근 10년래 최대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기준 13주간 판매할 물량을 재고로 보유하고 있고,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각각 40주와 30주 물량이 쌓인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3분기까진 추가 생산 없이 재고만 팔아도 되는 수준이란 얘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올해 3분기 이후에나 반도체 업황이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아직 바닥이 멀었다는 위기감 때문일까.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선 잇따라 감산 결정을 내리며 생산량 조절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3회계년도 1분기(2022년 9월~11월) 실적에서 2억900만 달러(약 27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마이크론은 20% 감산 계획과 인력 10% 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진행한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자진 퇴사와 정리해고를 동시에 진행해 인력의 10%를 감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SK하이닉스도 비슷한 처지다. 아직 잠정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시장에선 적자를 점치고 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서 집계한 전망치(컨센서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SK하이닉스의 영업적자는 7663억원에 이른다. 올해도 3분기까지 매 분기당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를 전년 대비 50% 이상 줄이고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감산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해 SK하이닉스 생산의 약 80%를 판매하고 나머지는 재고가 될 것”이라며 “재고 소진은 2024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발빠른 감산에 나선 이유는 뭘까. 2008년을 전후로 반도체 업계에서 벌어졌던 치킨게임은 시장 점유율 후위 업체들에 더 가혹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치킨게임 당시엔 시장 점유율이 낮았던 대만 업체들을 중심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생산량을 늘렸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선두인 삼성의 영토를 빼앗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2008년말 반도체 현물 가격(DDR2 1Gb 기준)은 1달러 밑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판매 가격에 적자를 견디지 못한 대만의 난야, 파워칩, 프로모스 등은 줄줄이 사업을 접었다. 당시 메모리반도체 업계 시장 점유율 2위 업체였던 독일 키몬다가 2009년 1월 23일 파산했고,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던 일본 기업 엘피다마저 2013년 미국 마이크론에 경영권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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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제2차 치킨 게임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 업체인 삼성전자의 입지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라 무리한 경쟁을 벌일 업체가 없다는 얘기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업황이 개선되긴 어렵지만 치킨 게임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과도한 부분이 있다”며 “반도체 업체들이 수익성을 포기해가면서 치킨 게임을 벌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기준 128조원에 달하는 현금(단기금융상품+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반도체 부문에서 적자가 나더라도 차입금에 의존하지 않고 견뎌낼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노근창 현대차 증권 센터장은 “메모리반도체만 놓고 보면,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치킨게임이 아니라 재고 정리에 가깝다”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이미 손해를 보며 팔고 있을 것이라 삼성전자만 무리하지 않는다면 출혈 경쟁이 벌어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반도체 업황 부진에 삼성전자가 시장 점유율을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딜런 파텔 세미애널리시스 수석분석가는 최근 칼럼을 통해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반도체 업계는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며 “업계 선두인 삼성전자는 경쟁자들의 등을 찌르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 없이 중장기 설비투자 기조는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가격이 회복되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SK하이닉스가 이번 반도체 침체기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3위인 마이크론은 감산과 인력 감축 계획을 내놓은 가운데, 미국 정부의 지원 속에 1000억 달러를 들여 뉴욕 북부 공장 신설하기로 한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당장은 고육책을 동원해 손실을 최소화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살아날 시기를 대비하겠다는 복안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간 생산력 차이는 크게 벌어졌지만, 기술 격차는 과거 어느 때보다 좁혀진 상황이라 정부 지원이 결합되면 언제든 시장 점유율 순위가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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