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는 교대 근무자의 수면 부족으로 인한 연이은 판단 착오와 기계 조작 실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공중 폭발도 관제팀의 수면 부족이 상당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면 부족이 가져오는 사회적 영향은 이렇게 절대적이다. 그런데 자고 싶다고 다 잘 수 있는 건 아니다.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생활패턴은 성인 열 명 중 한 명이 불면증을 겪게 만들었다. 하지만 불면증 극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매일 아침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생체시계만 알면 누구나 푹 잘 수 있다』의 저자 이헌정(사진) 고려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주장이다.
- 현대인이 잠이 부족해진 이유가 뭘까.
- “불면증의 시작은 인공조명의 등장 때문이다. 전구가 개발되면서 낮에만 일하고 활동하는 게 아니라 밤에도 활동할 수 있게 된 게 문제의 시작이다. 현재 전체 근로자의 26%가 야간 또는 교대 근무자이고, 조명을 넘어 게임이나 스마트폰의 빛 공해가 정상적인 수면각성 리듬을 깨트린다. 흔히들 스트레스가 불면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스트레스가 많아도 생체리듬을 잘 지키면 잠은 잘 오게 돼 있다. 생체리듬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니 잠을 못 자게 된다.”
- 아침 햇빛과 수면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 “간헐적 단식을 해도 저녁을 굶어야 효과를 보는 것처럼, 생명체에게는 언제 뭘 하는지 리듬이 중요하다. 아침에 활동을 시작하면 16시간 지나 졸려오는 게 일주기 생체시계인데, 아침에 햇빛을 많이 보면 생체시계가 앞당겨지고, 밤에 빛을 보면 뒤로 밀린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등장할 때부터 지구 자전으로 인한 낮밤의 변화가 있었다. 모든 생명체가 그 환경에서 진화되어 왔고, 지금도 인간 외에는 모두 거기에 순응해 살고 있다. 인간은 원래 주행성인데, 24시간 움직이는 산업 때문에 리듬이 깨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 겨울철엔 아침 햇빛 보기가 쉽지 않다.
- “그래서 라이트박스라는 게 필요하다. 겨울에 해가 거의 없는 북유럽에선 이미 몇십 년 전부터 빛을 충분히 내는 조명기구를 수면 목적으로 쓴다. 아침마다 조명기구가 달린 수면안경을 쓰기도 한다. 라이트박스는 효과적인 불면증 치료 장비인데, 한 번 팔면 끝이니 사업화 되기 어렵다. 싸구려 중국산은 많이 팔리지만, 국내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이 약하니 아무도 거액의 임상실험에 투자하지 않는다.”
-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 사용은 숙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그게 제일 문제다. 밤에 눈앞에서 빛을 보니 생체시계가 점점 뒤로 밀린다. 인류 역사상 빛을 내뿜는 물체를 계속 쳐다보는 상황이 있었을까. 빛의 도움을 얻어서 책을 보는 정도였지, 몇 시간 동안 발광체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건 스마트폰 등장 이후 생긴 일이다. 밤에는 빛이 없어야 한다. 선진국에서 간접조명을 하는 이유다. 한국인이 불면증과 우울증, 자살율이 높은 것도 밤이 너무 밝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 올빼미형 수면 패턴은 무조건 나쁜가.
- “사람에 따라 낮밤이 바뀌는 생활 자체가 우울증에 빠지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내 연구 중 발견한 현상들인데, 우울증 환자의 생체리듬은 5시간 정도 뒤로 밀려 있더라. 정상인은 새벽 4시경이 최저점인데 우울증 환자는 오전 9시가 제일 안 좋고 오후에 좀 나아진다. 이러면 생활 자체가 잘 안 된다. 우울증이란 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우울감과 다르지 않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멈춰 있는 게 문제인데, 리듬이 밀려서 멈추게 되는 것이다.”
- 노화로 인한 불면증은 어쩔수 없을까.
- “노화는 신경통 등 잠을 못 자게 만드는 각종 신체적 문제를 동반한다. 그럼에도 생체리듬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불면증을 가진 어르신들의 특징이 낮에 자꾸 누워있으려 하는 건데, 그러면 밤에 더 잠이 안 온다. 아침과 낮에 햇빛을 많이 보고 활동하는 게 잠의 질을 좋아지게 한다.”
- 불면증이 치매 위험도 높인다던데.
- “뇌는 몸 전체 대사 에너지의 20%를 쓰는 장기다. 작지만 에너지 대사가 많은데, 노폐물을 배출하는 림프계가 없다. 많은 에너지를 쓰니 노폐물도 많이 나오는데, 노폐물 배출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었다. 최근 한 연구에서 자는 동안 뇌 전체의 세포 간격이 벌어지면서 그 사이로 뇌척수액이 능동적으로 노폐물을 씻어내 빠져나오게 만드는 시스템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잠을 못 자면 배출이 안 되니 뇌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도 잠을 안 자면 침착이 되고 잘 자면 빠져나간다.”
- 숙면은 온전히 개인의 몫일까.
- “최근 들어 개인이 잠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아직 사회적인 고려가 없는 상태다. 낮에 근무환경은 어둡고 밤에는 빛 공해에 노출된다면 생체시계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없다. 환경적으로 밤에는 지나친 조명을 제한하는 제도적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뻔한 얘기지만 ‘저녁이 있는 삶’의 기조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선진국의 밤은 쥐죽은 듯 고요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