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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면에 투자 ‘슬리포노믹스’ 급성장] “잠 못자면 치매·우울증 위험…선진국 밤은 쥐죽은 듯 고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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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호 13면

SPECIAL REPORT  

이헌정 한국수면의학회 이사장

이헌정 한국수면의학회 이사장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는 교대 근무자의 수면 부족으로 인한 연이은 판단 착오와 기계 조작 실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공중 폭발도 관제팀의 수면 부족이 상당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면 부족이 가져오는 사회적 영향은 이렇게 절대적이다. 그런데 자고 싶다고 다 잘 수 있는 건 아니다.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생활패턴은 성인 열 명 중 한 명이 불면증을 겪게 만들었다. 하지만 불면증 극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매일 아침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생체시계만 알면 누구나 푹 잘 수 있다』의 저자 이헌정(사진) 고려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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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잠이 부족해진 이유가 뭘까.
“불면증의 시작은 인공조명의 등장 때문이다. 전구가 개발되면서 낮에만 일하고 활동하는 게 아니라 밤에도 활동할 수 있게 된 게 문제의 시작이다. 현재 전체 근로자의 26%가 야간 또는 교대 근무자이고, 조명을 넘어 게임이나 스마트폰의 빛 공해가 정상적인 수면각성 리듬을 깨트린다. 흔히들 스트레스가 불면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스트레스가 많아도 생체리듬을 잘 지키면 잠은 잘 오게 돼 있다. 생체리듬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니 잠을 못 자게 된다.”
아침 햇빛과 수면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간헐적 단식을 해도 저녁을 굶어야 효과를 보는 것처럼, 생명체에게는 언제 뭘 하는지 리듬이 중요하다. 아침에 활동을 시작하면 16시간 지나 졸려오는 게 일주기 생체시계인데, 아침에 햇빛을 많이 보면 생체시계가 앞당겨지고, 밤에 빛을 보면 뒤로 밀린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등장할 때부터 지구 자전으로 인한 낮밤의 변화가 있었다. 모든 생명체가 그 환경에서 진화되어 왔고, 지금도 인간 외에는 모두 거기에 순응해 살고 있다. 인간은 원래 주행성인데, 24시간 움직이는 산업 때문에 리듬이 깨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겨울철엔 아침 햇빛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라이트박스라는 게 필요하다. 겨울에 해가 거의 없는 북유럽에선 이미 몇십 년 전부터 빛을 충분히 내는 조명기구를 수면 목적으로 쓴다. 아침마다 조명기구가 달린 수면안경을 쓰기도 한다. 라이트박스는 효과적인 불면증 치료 장비인데, 한 번 팔면 끝이니 사업화 되기 어렵다. 싸구려 중국산은 많이 팔리지만, 국내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이 약하니 아무도 거액의 임상실험에 투자하지 않는다.”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 사용은 숙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게 제일 문제다. 밤에 눈앞에서 빛을 보니 생체시계가 점점 뒤로 밀린다. 인류 역사상 빛을 내뿜는 물체를 계속 쳐다보는 상황이 있었을까. 빛의 도움을 얻어서 책을 보는 정도였지, 몇 시간 동안 발광체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건 스마트폰 등장 이후 생긴 일이다. 밤에는 빛이 없어야 한다. 선진국에서 간접조명을 하는 이유다. 한국인이 불면증과 우울증, 자살율이 높은 것도 밤이 너무 밝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올빼미형 수면 패턴은 무조건 나쁜가.
“사람에 따라 낮밤이 바뀌는 생활 자체가 우울증에 빠지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내 연구 중 발견한 현상들인데, 우울증 환자의 생체리듬은 5시간 정도 뒤로 밀려 있더라. 정상인은 새벽 4시경이 최저점인데 우울증 환자는 오전 9시가 제일 안 좋고 오후에 좀 나아진다. 이러면 생활 자체가 잘 안 된다. 우울증이란 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우울감과 다르지 않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멈춰 있는 게 문제인데, 리듬이 밀려서 멈추게 되는 것이다.”
노화로 인한 불면증은 어쩔수 없을까.
“노화는 신경통 등 잠을 못 자게 만드는 각종 신체적 문제를 동반한다. 그럼에도 생체리듬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불면증을 가진 어르신들의 특징이 낮에 자꾸 누워있으려 하는 건데, 그러면 밤에 더 잠이 안 온다. 아침과 낮에 햇빛을 많이 보고 활동하는 게 잠의 질을 좋아지게 한다.”
불면증이 치매 위험도 높인다던데.
“뇌는 몸 전체 대사 에너지의 20%를 쓰는 장기다. 작지만 에너지 대사가 많은데, 노폐물을 배출하는 림프계가 없다. 많은 에너지를 쓰니 노폐물도 많이 나오는데, 노폐물 배출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었다. 최근 한 연구에서 자는 동안 뇌 전체의 세포 간격이 벌어지면서 그 사이로 뇌척수액이 능동적으로 노폐물을 씻어내 빠져나오게 만드는 시스템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잠을 못 자면 배출이 안 되니 뇌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도 잠을 안 자면 침착이 되고 잘 자면 빠져나간다.”
숙면은 온전히 개인의 몫일까.
“최근 들어 개인이 잠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아직 사회적인 고려가 없는 상태다. 낮에 근무환경은 어둡고 밤에는 빛 공해에 노출된다면 생체시계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없다. 환경적으로 밤에는 지나친 조명을 제한하는 제도적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뻔한 얘기지만 ‘저녁이 있는 삶’의 기조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선진국의 밤은 쥐죽은 듯 고요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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