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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등하게” 말로는 이러면서 차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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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호 21면

미세공격

미세공격

미세공격
데럴드 윙 수·리사 베스 스패니어만 지음
김보영 옮김
다봄교육

책의 제목이자 주제인 미세공격(microaggression)은 다문화·다양성·소수자·젠더·공존·인권 등의 분야에서 새롭게 떠오른 어휘다. 상담·임상심리 전문가로 관련 연구를 선도해온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데럴드 윙 수와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리사 베스 스패니어만이 지은이다. 미세공격의 피해를 주로 다룬 1판에 이어 가해자와 방관자의 심리, 이를 줄이는 방안까지 다방면의 연구 성과를 새롭게 담은 2판을 내놨다.

미세공격이란 대놓고 노골적·모욕적 언사로 차별하고 모욕하진 않아도, 피해자에겐 지속적 상처를 줄 수 있는 은근한 편견·멸시·차별·무시·비난 등을 가리킨다. 예로 축구경기 중 일부 관중이 흑인 선수에게 대놓고 인종 차별성 구호를 외친다면 이는 비열하고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거대공격’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시아계가 멋지게 발표를 마치자 누군가 칭찬이랍시고 “영어 참 잘 하네” 한다면 이는 미세공격의 전형. 상대가 아시아계란 것만 보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닐 것이라 여기는 편견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때 ‘No discrimination(차별 반대)’ 완장을 찬 해리 케인. [AP=연합뉴스]

2022 카타르 월드컵 때 ‘No discrimination(차별 반대)’ 완장을 찬 해리 케인. [AP=연합뉴스]

더 미묘한 것은 입으로는 ‘정치적 올바름(PC)’을 되뇌면서 실제로는 은근히 차별하며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경영학석사(MBA) 학위에 직무 연수까지 거친 자신만만한 여성 지원자를 면접 본 대형 증권사 간부는 “우리는 모든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대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왜 일자리를 원하느냐”며 사실상 젠더 차별을 일삼는다.

이런 말과 행동은 듣는 이에게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고 타자로서 배척당하는 고통과 슬픔을 안길 수 있다. 미세공격은 가해자가 의식하지 못해도 피해자에겐 큰 상처가 된다. 지은이들은 미국의 아프리카계 시인 마야 안젤루의 표현을 빌려 ‘작은 살인’ ‘천 번의 베임에 의한 죽음’으로 표현한다.

미세공격이란 용어의 기원은 19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신과 의사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체스터 미들브룩 피어스가 미국 흑인을 다룬 연구에서 제안했다. 처음에는 비흑인 미국인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일상적으로 가하는 모욕과 배제에 국한됐다.

지은이들은 이제 미세공격이 학교·직장 등 다양한 상황에서 여성·성소수자(LGBTQ)·장애인·종교적소수자·빈곤층 등 여러 소외집단에 가해지는 미묘한 차별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단어는 2015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2017년 메리엄 웹스터 영어사전에 등재됐다. 이젠 심리·교육·법·의료·공공정책 등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미세공격 이론을 다룬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소외집단 구성원에 대한 일상적인 편견·편향·차별이 미치는 유해한 영향은 정신과 육체 모두에 미친다. 중국계인 수 교수는 아시아계 동료와 비행기를 탔다가, 승무원들이 늦게 탑승한 백인들을 제치고 자신들에게 자리를 뒤로 옮겨달라고 요청하자 혈압이 오르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피부색은 보지 않는다”는 승무원의 해명이 오히려 더 불쾌했다. 오랜 민권운동과 PC운동으로 대놓고 하는 차별은 줄었을지 몰라도,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은밀한 야수의 발톱이 새롭게 자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은이들은 미세공격 대응책으로 미세개입을 제안한다. 대인관계에서 모욕을 가하는 가해자나, 편향된 정책·관행을 구현하는 정부·조직의 행위자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미세공격과 거대공격의 무력화를 노린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는 물론 방관자까지 미세공격 교육, 상담과 심리치료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관련자 모두 미세공격에 대한 인식과 저항력·회복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지은이들의 주장이다. 원제 Microaggressions in Everyda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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