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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원 실내 23~25도…에너지 과소비 ‘난방 카스트’ 비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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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호 02면

‘실내 온도 17도.’ 공공부문 에너지 절감 조치 시행 첫날인 지난해 10월 18일 한 공무원이 정부세종청사 사무실에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실내 온도 17도.’ 공공부문 에너지 절감 조치 시행 첫날인 지난해 10월 18일 한 공무원이 정부세종청사 사무실에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신정동 남부지법 7층. 온도계의 온도가 빠르게 올라 25.3도를 가리켰다. 복도를 오가는 직원들은 대부분 얇은 니트나 가벼운 패딩 조끼를 입고 있었다. 같은 시각 법원청사 밖 온도는 2~3도를 오갔다. 6층의 한 사무실 안에 설치된 난방 조절기 온도는 24도로 설정돼 있었다.

이런 법원의 모습은 ‘에너지 다이어트’ 정책에 따라 실내 온도가 17도로 제한된 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타 공공기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0월 ‘공공기관 에너지사용의 제한에 관한 공고’를 발표하며 공공기관의 실내 평균 온도를 17도 이하로 유지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실내 평균 온도를 18도로 제한한 예년보다 1도 낮아졌다.

이에 따라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학교·공기업 등이 올겨울 한파 속에서도 민원인 창구와 의료·보육 시설 등 예외 공간을 제외하고 실내 온도 17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법부와 입법부는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의 적용을 받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법원의 한 직원은 “실내 온도 관련해 따로 공지나 지침을 받은 것은 없다”며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에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예년과 비교해 실내 온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 적용 기관에 포함되지 않은 국회의 상황도 법원과 비슷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머무는 국회 의원회관의 온도는 23도 안팎이었다. 의원회관 9층의 한 의원 사무실은 이날 23.1도였다. 5층의 다른 의원 사무실 역시 23.7도였다. 의원회관 복도를 오가는 보좌진들은 대부분 가벼운 차림이었다. 한 보좌관은 “의원회관은 중앙난방식이라 따로 온도를 관리하지 않아도 따뜻하다”며 “건조할 때가 많아 사람에 따라 탁상용 가습기를 틀어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실내 온도가 17도로 제한된 행정부와 공공기관 직원들은 담요와 핫팩으로 무장한 채 근무를 이어갔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1층 로비의 온도는 16.6도였다. 건물 안에 들어와도 워낙 쌀쌀해 사람들은 계속 두꺼운 외투를 여몄다. 비슷한 시간 정부서울청사 본관 6층과 별관 5층 사무실의 실내온도는 각각 21도와 17.3도를 기록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중 상당수는 두꺼운 조끼 등을 착용하고 있었다.

별관에서 만난 공무원 A씨는 핫팩을 보여주며 “요새 날씨가 조금 풀렸지만 한파가 닥쳤을 때는 냉장고 속에서 근무하는 것 같다고 보면 된다”며 “손이 얼어서 컴퓨터 자판이 안 쳐질 정도”라고 말했다. 실내 온도가 정부가 제시한 17도를 넘는다고 말해주자 “하필 오늘 날씨가 조금 풀렸을 때 온도를 측정한 건 좀 억울하다”라고도 했다.

본관에서 근무하는 B씨는 “17도 상한선 자체도 굉장히 낮다고 생각하지만, 실내온도 평균을 내서 관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창이 많거나 북향인 사무실은 다른 곳보다 더 추울 수밖에 없다”며 “한파가 기승을 부렸을 때는 실내 온도가 10도까지도 내려갔다”고 말했다.

에너지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C씨는 최근 부서 운영비로 핫팩을 구매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수면 양말과 내복, 목을 따뜻하게 하는 넥워머, 담요 등 각종 방한용품으로 무장해도 시린 손끝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 전열 기구는 임산부와 장애인 등 예외적인 경우만 사용할 수 있다. C씨는 “오죽하면 사무실을 방문하는 외부인들도 ‘추워서 일에 집중할 수 있느냐’고 걱정을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강도 높은 에너지 다이어트 정책에도 불구하고 입법부와 사법부가 법령상 한계로 대상 기관에서 빠지자 관가에서는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난방 카스트(caste·계급제)’가 만들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국회와 법원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각각 2만989t, 7만1052t으로 공공기관 평균의 4배와 15배를 기록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따뜻한 국회를 방문하고 돌아온 직원들이 ‘우리만 봉이다’라고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라며 “에너지 다이어트에 입법부와 사법부가 함께 하는 것이 취지에 맞는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국회와 법원에도 실내 난방 온도 제한에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실에도 관련 규정을 공문으로 보냈고 정기적으로 현장 점검도 나가며 공공기관의 실내 온도 제한 준수를 독려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실내 온도를 1도 낮추면 난방 에너지의 6%를 저감할 수 있다”라며 “법령상 한계로 참여를 강제할 수 없지만 국회와 법원에는 지난해 10월 에너지사용 제한 공고 발표 뒤 관련 공문을 보내 최대한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대신 산업부는 ‘난방 카스트’라는 비판을 받아들여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 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 기관에 국회와 법원 등을 추가해 에너지 효율화 정책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어린이와 연세 드신 분들,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이 이용하는 시설 등은 적용 제외라 해도 현장에서 경직적으로 운용돼 불편이 크다”며 실내 난방 온도 지침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께서 추운 날씨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시설 관리자 재량으로 (난방을) 운용하고 철저한 현장 지도에 나설 것을 산업부 장관에게 특별 지시했다”고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명주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무원의 솔선수범도 필요하지만 17도는 오히려 근무 의욕을 떨어뜨리는 비현실적인 온도”라며 “과거 유행했던 투명 유리 공공청사 등 에너지 효율화를 고려하지 않은 건축물이 비효율의 대명사가 됐다. ‘그린 리모델링’이나 에너지 효율이 나쁜 건물을 없애거나 새로 짓는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인간답게 살면서 에너지 소비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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