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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도 못 말린다...美하원 164년 기록 다시 쓰는 ‘프리덤코커스’

중앙일보

입력

미국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원내대표가 5일(현지시간) 사흘째 진행된 하원의장 선출 투표에서 11번째 시도에도 과반(218표) 득표에 실패했다. 10차례 이상 하원의장 선출 투표가 진행된 건 164년 만에 처음이다.  

매카시는 이날 7~8차 투표에서 각각 201표, 9~11차 투표에서 각각 200표를 얻는 데 그쳤다. 1~6차 때보다 더 줄었다. 상대 민주당(212석)의 하킴 제프리스 원내대표가 일관되게 212표를 받는 걸 감안하면 총 222명인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중에 최대 22명까지 이탈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개 지지와 매카시의 추가 양보안도 통하지 않았다.

공화당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가 5일(현지시간) 하원의장 선출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한 뒤 취재진과 이야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공화당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가 5일(현지시간) 하원의장 선출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한 뒤 취재진과 이야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은 공화당 초강경파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가 이같은 반란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목했다. 프리덤 코커스 소속의 일부 의원들은 다른 후보를 내세워 투표하거나 기권하는 방식으로 매카시의 하원의장 선출을 저지하고 있다. 이들은 조 바이든 정부 견제를 목적으로 하원 의사규칙 변경을 요구하고 있으며, 매카시가 민주당에 협력적이란 이유로 그의 하원의장 선출을 반대한다. 

프리덤 코커스는 공화당의 풀뿌리 보수주의 운동인 티파티에 뿌리를 두고 2015년 결성됐다. 정책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공화당 내 분위기와 달리 보호무역 성향이 강하고, 강력한 불법이민 단속과 감세를 주장해왔다. 

현재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은 44명이며 친트럼프 인사들이 주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조차 이들을 말리지 못하는 형편이다. 트럼프는 4일 공화당 의원들에게 매카시에 대한 지지와 단합을 호소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극단주의 전문가인 에릭 워드 웨스턴스테이트스센터 선임 고문은 이런 상황에 대해 "대중은 트럼프가 없는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대중이 열광하는 현상)을 목격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프리덤 코커스는 '절대 안 돼 코커스(hell no caucus)'란 악명이 따라다닐 만큼 비타협적이다. 공화·민주 양당이 거의 반반씩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미 의회에서 똘똘 뭉쳐 캐스팅보트를 행사해왔다. 이런 영향력 때문에 트럼프는 재임 시절 프리덤 코커스 창립 멤버인 믹 멀베이니를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에 임명해 협력을 모색할 정도였다.

5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 모니터에 하원의장 투표 결과가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 모니터에 하원의장 투표 결과가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리덤 코커스의 공격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2015년 3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이민개혁법에 반발해 국토안보부 예산안을 끝까지 승인하지 않아 정부를 폐쇄 위기로 몰고 갔다.

2015년 7월엔 공화당을 이끌었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오바마 정부에 협력한다는 이유로 해임 건의안을 발의해 같은 해 9월 결국 베이너를 물러나게 했다. 매카시는 이때 하원의장 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의 반대로 중도 사퇴한 악연이 있다. 프리덤 코커스는 2017년엔 '오바마 케어'의 완전 폐기를 요구하면서 '트럼프 케어'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미 정계에선 이들이 이번 하원의장 선출 반대로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 안팎에 존재감을 각인시켰으며, 매카시는 이들에게 양보안을 재차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매카시는 당초 지도부만 제출할 수 있는 하원의장 해임 결의안의 제출 기준을 의원 5명으로 낮춘 데 이어 개별 의원도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또 하원 운영위에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을 더 많이 배치하겠다는 안도 제시했다고 알려졌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 로이터=연합뉴스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이들의 행동에 대해 공화당 내에서도 "매카시를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너무 사소하다"(댄 크렌쇼), "정치적 현실을 바로 보고 진짜 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마저리 테일러 그린) 등의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공화당의 카오스(chaos·혼돈) 코커스가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요식 절차로 여겨지던 미 하원의장 선출 투표가 10차례 넘게 진행된 건 1859년 이래 처음이다. 남북전쟁(1861~1865년) 직전이었던 당시 총 44번의 투표가 진행됐다. 

10차례가 넘는 투표에도 공화당 내 분열이 계속되면서 미 하원 마비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하원의장이 선출이 돼야 하원이 가동되고 입법 절차 등도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매카시를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가 추가 양보안을 제시하며 막판 물밑 설득 작업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선출 투표는 6일 속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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