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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15' 몰고 와 김일성 사진 찢은 北공군…케네스 로우 별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MIG-15' 제트기를 타고 북한에서 망명했던 케네스 로우(본명 노금석)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사진 NYT 캡처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MIG-15' 제트기를 타고 북한에서 망명했던 케네스 로우(본명 노금석)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사진 NYT 캡처

한국전쟁 뒤 제트기를 몰고 월남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북한 공군 출신 케네스 로우(본명 노금석)가 별세했다. 향년 90세.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딸 보니 로우를 인용해 “그가 미 플로리다주 자택에서 지난달 26일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그가 북한을 탈출해 김포로 날아왔던 날을 자세히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로우는 1953년 9월 21일 비행 연습을 하겠다며 소련제 제트기 ‘MIG-15’를 탄 뒤 13분 만에 남한의 김포 비행장으로 넘어왔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두 달이 채 안 됐을 때였다.

그가 활주로에 바퀴를 내렸을 때, 반대편에 막 착륙한 F-86 전투기 한 대가 다가와 서로 충돌할 뻔했다고 한다. 가까스로 피한 로우는 계기판에 있던 김일성 액자 사진을 찢고 조종석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훗날 J. 로저 오스터홀름과 함께 쓴 책 『자유를 향한 MIG-15』에서 “생애 처음으로 자유로운 공기를 마신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1953년 케네스 로우(본명 노금석)가 월남했을 당시의 모습. 사진 미 공군국립박물관

1953년 케네스 로우(본명 노금석)가 월남했을 당시의 모습. 사진 미 공군국립박물관

무사히 착륙은 했지만, 험로는 계속됐다. 수십명의 미 공군이 그를 둘러쌌다. 그는 과거 NYT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며 “나를 본부까지 태워다줄 자동차를 가져와 주길 바라며 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 단어 ‘카(car)’만 외쳤다”고 말했다. 두 명의 조종사가 그를 차에 태웠고, 곧바로 심문을 받았다. 이날 NYT 1면 헤드라인은 “붉은 땅(공산주의 국가)의 MIG가 서울 근처에서 연합국에 항복했다”였다.

그가 몰고 온 MIG-15는 미국엔 큰 선물이었다. MIG-15는 구소련에서 만든 제트 전투기로,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P-51 머스탱 전투기를 격추하는 등 큰 타격을 준 전력이었다. NYT는 “미 공군 손으로 처음으로 넘어갔던, 아주 훌륭한 선물이었다”고 전했다.

케네스 로우(노금석)는 미국 델라웨어주립대에서 공부한 뒤 방산업체에서 일했다. 사진 델라웨어대 홈페이지

케네스 로우(노금석)는 미국 델라웨어주립대에서 공부한 뒤 방산업체에서 일했다. 사진 델라웨어대 홈페이지

1년 뒤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을 받아 망명했고 케네스 로우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이후 델라웨어주립대에서 항공공학을 공부했고, 듀폰·보잉 등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했다. 60년엔 재미교포를 만나 2남 1녀를 낳고 가정을 꾸렸다.

로우는 회고록에서 반공주의자이자 천주교도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민주주의 삶을 갈망했다고 고백했다. 32년 북한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 기업의 중역을 맡았던 아버지 덕에 풍족하게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지병으로 사망하고 일본이 패망하자, 그는 어머니와 살아남기 위해 공산주의자로 위장해야 했다. 북 공군이 돼 훈련을 받던 중, 어머니가 월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월남을 결심했다고 한다.

케네스 로우가 2018년 1월 18일 미 공군국립박물관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 미 공군국립박물관

케네스 로우가 2018년 1월 18일 미 공군국립박물관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 미 공군국립박물관

그가 타고 온 MIG-15는 현재 미 공군국립박물관에 전시돼있다. NYT는 “한국 전쟁 당시 공중에서 격전을 벌였던 미 F-86 전투기 곁에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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