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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행복? 더는 외롭지 않았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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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새해 축하 인사의 단골 문구다. 건강과 행복. 그 이상 뭘 더 바랄 게 있을까.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저절로 굴러오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미국 하버드대의 연구에 주목하는 이유다. 건강과 행복,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비결은 바로 ‘관계(relationship)’에 있단다. 무려 85년째 진행 중인 연구이니 여러 세대를 거쳐 검증된 셈이다.

‘하버드대 성인발달 연구’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1938년 시작됐다. 두 모집단의 남성 724명을 설문 응답은 물론 혈액 검사, 뇌 스캔 등 건강검진을 하고,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도 관찰했다. 이들의 인간관계가 건강과 행복지수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다.

영국에서 2001년부터 매년 진행되는 ‘정신건강 인식 주간’의 한 포스터. 2022년의 주제는 ‘외로움’이었다. [사진 영국정신건강재단]

영국에서 2001년부터 매년 진행되는 ‘정신건강 인식 주간’의 한 포스터. 2022년의 주제는 ‘외로움’이었다. [사진 영국정신건강재단]

그중 한 모집단은 하버드대 2학년생 268명이었고, 또 다른 모집단은 온수는커녕 물도 잘 나오지 않는 보스턴 빈민가의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10대 남자아이 456명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예컨대 50대에 측정한 만성 콜레스테롤 수치보다 불만족스러운 부부관계가 80대에 훨씬 큰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십만 쪽에 이르는 방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구축한 남성들은 장수할 뿐 아니라 뇌 기능도 더 오래 유지됐다. 전반적으로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인간관계가 건강과 장수의 지름길이었다.

반면 외로움은 ‘조용한 살인자’로 지목됐다. 최근 지구촌 곳곳의 취약계층과 노년층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깊은 외로움에 신음하고 있다. 사회적·경제적 고립이 심화한 까닭이다. 코로나19가 극성이던 2021년, 일본은 가팔라진 자살률을 낮출 목적으로 일명 ‘외로움 장관’까지 임명했다. 외로움이 촉발한 우울증 확산을 자살률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보았다.

이에 앞서 영국도 2018년 ‘외로움 담당 장관직’을 신설했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대를 피우는 것과 동일한 파괴력을 가졌다’고 밝혔다. 당시 영국인 900만 명이 자주 또는 늘 외로움을 느낀다는 연구 자료도 인용했다. 정부가 직접 국민이 느끼는 고립감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책의 대전환이었다.

이후 국제 사회도 외로움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8년 연례포럼에서 외로움을 주제로 다뤘다. 그때 필자는 해당 특별세션의 사회를 맡았다. 주제가 생소했건만 당시 파리 본부 회의장에는 청중 수백 명이 몰려왔다. 회의장 복도까지 가득 채운 기억이 생생하다. 2023년 새해에 되돌아보니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