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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북 무인기, 대통령실 촬영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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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26일 다섯 시간 넘게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 중 1대가 대통령 경호를 위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P-73)에 진입해 용산 대통령실을 촬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국가정보원이 5일 밝혔다. 그동안 비행금지구역 진입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강하게 부인해 오던 군 당국도 이날 진입 사실을 뒤늦게 시인했다.

국회 정보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이날 정보위 전체회의 후 기자들에게 북한 무인기와 관련해 “(국가정보원이) 용산 대통령실 촬영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가능성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저녁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고 “국민이 아는 것과 다르니 공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사건 발생 이틀 뒤인 지난달 28일 군 전비태세 검열이 시작됐다. 군 검열단은 지난 1일 북한 무인기가 P-73 안쪽을 스친 항적을 처음 발견했고 3일 최종 판단을 내렸다. 이 고위 관계자는 “4일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말했다. P-73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반경 약 3.7㎞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이다. 국가 중요 행사나 군사작전 등을 제외하고 이 구역에서는 비행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에선 군 당국에 대한 대대적인 문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고위 관계자는 후속 조치와 관련, “밟아야 할 절차는 밟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안보라인의 한 참모는 “전임 정부 시절 군의 경쟁력이 약화됐고, 확실히 강한 군으로 체질 개선을 해야 하는 목표가 생겼다”며 “윤 대통령이 이번 일을 계기로 군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전했다. 군 수뇌부 교체 가능성에 대해선 “그건 대통령의 전권 사안이다. 생각하고 계시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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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이와 함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4성 장군)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합참에서 보고받은 비행 궤적을 토대로 북한 무인기가 남산 일대까지 침범했을 가능성을 대통령 보고 이전에 제기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야당 의원이 언론에 주장한 내용은 당시 합참도, 국방부도 모르는 내용이었다”며 “자료 출처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방부와 합참은 지난달 26일 우리 영공을 침범한 북한 소형 무인기 1대가 한 시간 정도 서울 상공을 비행하면서 P-73의 북쪽 끝단까지 들어왔다고 밝혔다.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이 북한 소형 무인기의 항적을 초 단위로 정밀 분석해 확인했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용산 상공은 아니며 대통령실 안전을 위한 거리의 밖”이라며 구체적인 증거 제시 없이 “북한 소형 무인기가 촬영했다고 하더라도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군 당국의 설명은 북한 무인기가 서울 북부 지역만 날아다녔다는 기존 주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윤 대통령 “국민이 아는 것과 다르니 공개하라” 지시

“북한 무인기의 목표는 용산, 대통령실 부근까지 왔었다”고 1면에 특종 보도한 중앙SUNDAY의 지난 12월 31일자.

“북한 무인기의 목표는 용산, 대통령실 부근까지 왔었다”고 1면에 특종 보도한 중앙SUNDAY의 지난 12월 31일자.

중앙SUNDAY가 지난달 31일 ‘북한 소형 무인기가 대통령실 부근에 왔었다’고 보도하자 국방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병주 의원이 “비행금지구역 안을 통과했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자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이적 행위”(국방부), “사실이 아닌 근거 없는 이야기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합참)고 반박했다.

군 당국은 사건 발생 열흘 만에 북한 무인기의 P-73 진입을 뒤늦게 시인한 것에 대해 “지난달 26일 당시 작전 요원들이 항적을 봤지만 무인기라고 평가하지 않았고, 그 이유는 조사 중”이라고만 설명했다. 권명국 전 방공포병사령관은 “이번 사태는 의지·시스템·훈련 3무(無)가 낳은 참사”라며 “북한 무인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자마자 격추시킨다는 의지, 각종 방공자산을 통합 운영하는 시스템, 적 항적을 식별하고 이를 요격하는 훈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합참은 이날 예정에 없던 합동방공훈련을 실시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특히 군 내부에선 9·19 군사합의 이후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강원도 고성의 육군 마차진대공사격장을 폐쇄한 게 영향이 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공무기인 벌컨·비호 등은 보통 훈련 표적으로 무인기를 띄우는데, 마차진이 9·19 군사합의상 무인기 비행금지구역(MDL 15㎞ 이내)에 있어 폐쇄한 것이다.

야당은 군 당국의 북한 무인기 대응 실패를 성토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군 통수권자라면 유례없는 안보 참사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책임자의 무능과 기망을 문책해야 한다”고 적었다. 김병주 의원은 “비행금지구역이 뚫렸다는 건 대통령실이 뚫렸다는 것”이라며 “청문회 개최와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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