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지방의 한 의대에 입학한 A씨(62)는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학비를 마련하느라 휴학과 복학을 거듭했다. 10년 만인 1993년 2월에야 졸업장을 받았지만, 의사국가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의사 면허를 갖지 못했다.

의사 면허 없이 정형외과 전문의 행세하다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남성이 위조한 의사면허증
A씨는 2년여간 별다른 직업 없이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함께 졸업한 의대 동문에게 의사 면허증을 빌렸다. A씨는 이를 복사한 뒤 본인의 증명사진을 오려 붙이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써 넣어 위조했다. 1995년부터 위조한 의사 면허증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 종합병원과 정형외과 의원에 취업해 ‘정형외과 전문의’로 살기 시작했다.
위조 면허증으로 27년 간 ‘정형외과 전문의’로 살아온 A씨가 옮겨다닌 병원은 60여 곳에 달했다.
2006년 결혼해 자녀를 둔 그는 아내는 물론 자식들에게도 의사 면허 위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의 모친도 아들이 의사라고 굳게 믿었다. A씨 스스로도 자기가 의사라고 믿는 ‘리플리 증후군’에 빠진 것 같다는 게 그를 지켜본 이들의 설명이다.
A씨는 정형외과 의사 경력을 기반으로 정관계·법조계 고위직 인사들과도 두루 인맥을 쌓으며 점점 더 대담해졌다. 출신 학교와 해외 의대 연수 경력까지 거짓으로 기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 면허 없이 정형외과 전문의 행세하다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남성이 위조한 의사면허증과 위촉장. [사진 수원지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1/06/d748cfd4-3020-44ec-9b74-93d0a1ee9138.jpg)
의사 면허 없이 정형외과 전문의 행세하다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남성이 위조한 의사면허증과 위촉장. [사진 수원지검]
수사 초기 A씨는 “의사 면허증 갱신을 하지 않아 한시적으로 무자격 의료행위를 한 꼴이 됐다”며 발뺌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해 12월 중순에도 그는 의료 행위를 이어갔다. 하지만 검찰이 주거지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다수의 위조 면허증을 확보해 압박하자 결국 스스로 의사 가운을 벗었다.
A씨는 지난달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내가 잘못했다. 27년 간 임상 경험을 쌓은 만큼 이제라도 의사 면허증을 따려고 준비 중이니 선처를 바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수원지검 형사2부(부장 양선순)는 A씨를 공문서위조와 위조공문서행사,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부정의료업자), 사기 등 혐의로 지난 2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A씨를 고용한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 의료재단 법인과 개인병원 원장 8명에 대해서도 의사면허 취득 여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고용한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2014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수도권 일대 종합병원과 정형외과 9곳에서 위조 면허증을 행사해 A씨가 받은 급여는 5억 여원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의사 면허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며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에 실태 전수조사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