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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용산 코앞 휘저은 북한 무인기, 더 참담한 군의 말 뒤집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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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무인기 P-73 진입 안 했다”던 군, 9일 만에 번복

식별 실패인지, 알고도 거짓말했는지 진실 밝혀야

지난달 26일 서울 북부 영공을 다섯 시간이나 휘젓고 다닌 북한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 일대에 설정된 ‘P-73 비행금지구역’ 일부까지 침범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P-73 침범을 부인하던 국방부 합동참모본부는 사후 검열을 통해 뒤늦게 이를 확인, 사건 발생 아흐레 만인 지난 4일에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P-73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과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에 걸친 대한민국의 최고 보안 영공이다. 군은 북한 무인기가 P-73 북쪽 끝 일부를 ‘스치듯’ 비행한 뒤 물러갔다고 발표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국민의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무인기가 대통령실로부터 3~3.7㎞ 지점 상공까지 일사천리로 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서울 소공동과 남대문시장 일대, 장충동, 충무로 일부에 해당한다. 서울의 최고 중심가가 북한 무인기에 유린당한 것이다. 게다가 무인기의 고도는 3㎞에 불과해 카메라라도 장착했다면 대통령실과 관저 일대가 원격 촬영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무인기 5대가 우리 영공을 침투한 당일 군은 무인기 1대가 서울 북부 지역을 한 시간가량 비행한 사실을 실시간으로 잡아냈다. 그런데 군이 보유한 방공 자산 중 가장 고성능 장비들이 배치된 P-73 구역에선 무인기 침투를 감지하지 못하고 9일 뒤에야 발견, 대통령에게 뒷북 보고를 했다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방부는 중앙SUNDAY가 지난달 31일 북한 무인기가 P-73 근처까지 진입했을 가능성을 처음 보도하자 “무인기가 P-73 구역에 진입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4성 장군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무인기가 P-73을 통과했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공개 반박하며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그랬던 국방부가 사건 발생 근 열흘 만에 북한 무인기의 P-73 진입을 인정하며 입장을 뒤집었으니 ‘거짓말쟁이’란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과연 식별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사건 당일 진입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정치적 파장을 의식해 거짓말하다 뒤늦게 진실을 고백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군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5600억원을 투입해 무인기 대응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다목적 드론부대 창설과 연내 스텔스 무인기 생산을 지시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군의 정직과 투명성이다. “덮고 보자”는 고질적 악습을 고치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아무리 첨단 무기를 가진 군이라도 국민의 믿음과 지지를 얻지 못하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무인기 침투 방지와 비행 궤적 식별에 실패한 군 관계자들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안보 구멍의 재발을 막을 결연한 조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