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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지난 교육감 선거비 660억…시·도지사보다 더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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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지난해 6월1일 오전 충남 논산시 연산초등학교에 마련된 제1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지난해 6월1일 오전 충남 논산시 연산초등학교에 마련된 제1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660억원. 지난해 6·1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들이 쓴 선거비용이다.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중앙일보가 확보한 교육감 후보자 선거비용 집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로 등록한 61명이 총 660억7229만원을 사용했다. 교육감 후보 한 사람당 평균 10억8315만원을 선거자금으로 쓴 것이다. 이는 같은 기간 시·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55명의 선거비용(약 491억원, 지난해 7월 기준)을 상회한다. 시·도지사 후보 1인당 평균 지출액(약 8억9000만원)도 교육감 후보들의 씀씀이가 약 1억9000만원 정도 컸다. 교육감 직선제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온 ‘고비용 선거’의 폐단이 지난해에도 반복된 셈이다.

교육감 선거비용 660억…시·도지사 비용보다 많아

이는 최근 정치권에서 직선제 개편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교육감은 시도지사와 러닝메이트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앙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후보별 선거비용은 경기도의 성기선 후보와 임태희 교육감이 가장 많이 지출했다. 성 후보와 임 교육감은 각각 46억5967만원, 40억6000만원을 지출해 1·2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서울의 조희연 교육감(35억2560만원)과 조전혁(34억2501만원)·박선영(20억6312만원) 후보, 경남의 김상권 후보(18억5842만원)와 박종훈 교육감(18억4379만원), 경북의 마숙자 후보(16억9145만원) 순이었다.

이들이 쓴 돈은 대부분 세금으로 보전됐다. 선거공영제의 원칙에 따라 공직선거법은 득표율 15%를 넘기면 선거비용 100%를 보전해주도록 정하고 있다. 앞선 8명의 후보에 이어 많은 돈을 쓴 조영달 서울교육감 후보(15억8917만원)는 6.6%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쳐 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다. 10~15%의 득표율을 얻으면 선거비용의 절반이 보전되지만, 득표율이 10% 미만이면 보전액이 없다. 조 후보는 선거캠프 관계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560억원 세금으로 보전

선관위는 고비용 선거를 막기 위해 선거 때마다 인구수 등에 비례하는 선거비용 제한액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과열되다 보면 이를 어기는 사례도 등장한다. 지난해 선거에서 선거비용 제한액 대비 지출이 가장 컸던 후보는 충남에 출마한 조영종 후보였다. 조 후보는 제한액(15억1290만원)보다 많은 15억2997만원(101.13%)을 지출했다. 선관위는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 후보를 고발했고 이후 조 후보는 재판에 넘겨졌다. 현직 중에서는 인천의 도성훈 교육감이 제한액의 99.3%인 14억3797만원을 지출해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고 강은희 대구교육감은 제한액의 77.8%인 9억7539만원을 지출하고 당선됐다.

지난해 교육감 선거에서 중도 포기한 교육감 후보 4명을 제외한 57명 중 선거비용 일부 혹은 전액을 보전받지 못한 후보는 7명(12.3%)이었다. 선관위에 따르면 후보들이 보전받은 선거비용은 560억3859만원이었다.

교육계 “직선제, 범죄자 양산하는 제도”

40억을 지출하고 낙마하거나 15억원을 쓰고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등 과도한 선거비용과 복잡한 ‘셈법’이 교육감 선거를 왜곡해 왔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교육감 선거비용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헌법에 의해 정당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정당 지원이 없으니 후보 개인이 돈을 많이 지출하게 되면서 각종 비리에 연루될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선거에 쓴 수억 원을 메우기 위해 뒷돈을 받았다가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교육감은 2007년 이후 11명(징역형 6명)이나 된다. 교육계 일각에서 교육감 직선제를 “범죄자를 양산하는 제도”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고비용 선거 구조는 선거 과정에서 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어렵게 하기도 한다. 선거 비용 전액을 보전받기 위해 당선 가능성이 없더라도 완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선거 과정에서 쓴 비용이 적지 않은데 아무 소득 없이 물러나기가 쉽지 않다. 최소 10%라도 득표해 절반이라도 보전받거나 15%를 넘겨 전액 보전을 목표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교육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시·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제(동반 출마)를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이를 언급하면서 “지방시대 지방균형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힘을 실었다.

교육계에서도 과도한 선거 비용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비용 일부를 국가가 부담하는 선거 공영제, 미국의 대통령-부통령처럼 시·도지사와 교육감 후보가 함께 출마하는 러닝메이트제가 대표적이다. 두 제도 모두 교육감이 혼자 선거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행정 효율 높이는 러닝메이트제…야당·교육감은 반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국민의힘 정우택·김선교 의원은 지난 7월 대표 발의한 교육감 선거 관련 법안(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개정안)에서 러닝메이트제 도입에 초점을 맞췄다. 교육부는 교육감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정치개혁 특위에 러닝메이트 도입 찬성 의견을 전달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유권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영끌’로 돈을 모아서 ‘그들만의 선거’를 치르는 현재의 직선제보다는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함께 출마하는 것이 행정 효율성과 자치분권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야당과 교육감들은 러닝메이트제가 교육자치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하면 정당 소속이거나 오랫동안 정당에서 역할을 했던 사람이 교육감 후보로 나올 것”이라며 “결국 교육이 지자체나 정당에 종속되며 지역 갈등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교육자치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교육위원회 간사인 이태규 의원은 “다수당이 반대하면 실현이 안 될 것”이라면서도 “지금의 직선제는 깜깜이 선거로 실제 주민교육자치를 대표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현 제도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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