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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정치에 휘둘리는 교육 이제 벗어나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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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수정 단국대 교직교육과 교수

이수정 단국대 교직교육과 교수

국가교육위원회가 지난 12월 사회적 관심과 논란이었던 ‘2022 개정 교육과정 심의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한 논란의 주요 쟁점은 역사 교과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살리는 문제, 그리고 사회 교과에 ‘성 소수자’와 ‘성평등’ 용어를 ‘성별·연령·인종·국적·장애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와 ‘성에 대한 편견’으로 수정하는 것이었다. 결국 국가교육위원회가 의결함에 따라 큰 틀에서 보면 교육부 안대로 수정하게 됐다.

그러나 국가교육위 의결 이후에도 5·18민주화운동 등 구체적 사건의 명칭이 빠졌다는 논란이 추가로 불거졌다. 이번 교육부 개정안에 대해 전교조는 보수세력의 주장만 반영한 교육과정의 퇴행이라고 비판한 반면, 보수적 교육단체는 문재인 정부가 야기한 기존 교육과정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해 왔다.

‘2022 교육과정 개정’ 논란 계속
교육보다 정치논리 따라 평가
미래 디지털 역량 증진이 핵심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국가교육위원회 역시 심의 과정에서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일부 위원이 표결을 거부하기도 했다. 일부 교원단체는 표결을 거부한 위원들의 자격 박탈을 요구하고 있고, 전교조 등은 교육과정 심의 과정이 위법했다며 교육부 차관을 고발했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의결에도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둘러싸고 교육계는 여전히 내홍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간에 쟁점이 된 이 문제들은 정치적으로 이슈화한 것일 뿐,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 깃든 핵심적 사항은 아니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그리고 교육단체 모두 이제 더는 정치적 논쟁에만 매몰되지 말고 이번 개정 교육과정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합당한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이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핵심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공감대에 근거한 것으로, 이번 개정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개편하고, 선택교과를 일반선택과 진로선택 등으로 재구성한 것 등은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의 큰 틀을 만든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개정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예컨대 선택교과가 기초 기본 교육과의 일관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추가적 논의와 준비가 필요하다. 정치적 논쟁을 뛰어넘어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이번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서 준수해야 할 몇 가지 원칙과 방향이 있다.

첫째, 교육과정에 관한 논의에 임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위원들은 자신을 추천한 단체의 정치적 이념이나 진영 논리가 아니라 오직 교육의 원리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교육과정은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규정된 교육 이념과 가치에 따라 전문적인 교육과정의 원리에 입각해 개정해야 한다. 현행 헌법에서 규정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둘째, 명확한 근거 없이 정치적 주장에 편향돼 기존 교육과정의 핵심적인 가치와 의미를 쉽게 부인해서는 안 된다. 교육과정은 오랜 학문적 논의를 거쳐 이뤄진 것이므로, 그 토대 위에서 점진적으로 개선해 갈 필요가 있다.

정권 교체기마다 단기간에 교육과정의 전면개정을 시도했던 악습을 청산해야 한다. 교육과정 개정은 건국 이후 우리 교육의 성공적 전통 위에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한걸음’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세계사에 드문 단기간의 문맹률 타파와 교육 기회의 확대, 세계 최고의 PISA 성적과 같은 교육 기적의 뒤에는 그 시대에 적합한 교육제도와 교육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교육과정은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디지털혁명 시대의 인재상에 적합한 역량 교육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디지털 역량을 포함해 역량 중심 교육과정으로 개편하고, 실천 과제를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데 교육과정 개편의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성취한 눈부신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는 교육에 크게 힘입었고, 이는 ‘교육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지금까지 쌓아온 성과를 발판으로 4차산업 혁명 시대에 제2의 교육 기적을 만들 수 있는 ‘백년대계’ 교육과정을 설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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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단국대 교직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