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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한국ㆍ미국의 ‘정치퇴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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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3일(미국시간) 공화당내 강경파의 반란으로 하원의장에 뽑히지 못한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로이터=뉴스1

3일(미국시간) 공화당내 강경파의 반란으로 하원의장에 뽑히지 못한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로이터=뉴스1

1. 한국과 미국의 나쁜 뉴스가 일맥상통합니다.
조선일보가 4일 보도한 여론조사결과, 민주당 지지자 69.6%가 아직도 ‘청담동 술자리’를 사실로 믿는답니다.
미국 하원에서 3일(현지시간) 의장을 뽑지 못했습니다. 1923년 이후 100년만의 돌발참사. 공화당내 소수 강경파의 반란입니다.

2. ‘청담동 술자리’조사결과는 예상했던 이상입니다.
이미 당사자(첼리스트)와 제보자(남자친구)까지 모두 ‘허위’라 인정했습니다. 처음 터트렸던 김의겸 민주당 의원도 ‘심심한 유감 표명’이란 말로 사실상 사과했습니다.
물론 ‘더탐사’라는 유튜브매체는 오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첼리스트의 ‘허위’자백이 마치 압력ㆍ회유에 따른 거짓자백인듯 주장합니다. 청담동이 아니라 논현동에서 술집을 찾았다고 주장합니다.

3. ‘청담동 술자리’의혹을 보는 시각이 지지정당에 따라 극적으로 갈립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77.9%가 ‘거짓일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과 정반대입니다.

4. 전형적인 에코챔버(Echo Chamber) 효과입니다.
에코챔버는 메아리를 만들어내는 녹음실입니다. 같은 소리를 반복해 듣게됩니다. 다른 소리를 못듣습니다. 인터넷에서 한쪽편만 접촉하다보면 에코챔버처럼 반복되는 같은 주장에 빠져들게 됩니다. 잘못된 주장을 사실인양 믿게됩니다. 상대편 주장을 듣지 않기에 당연히 믿지도 않습니다.

5. 에코챔버 현상이 정치적인 악영향을 미친 결과가 미국 하원의 마비입니다.
공화당은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공화당 대표가 하원의장이 됩니다. 공화당 하원대표 케빈 매카시는 온건파입니다. 강경파 20명이 반대표를 던지는 바람에 3차례 표결이 무산됐습니다.
이들은 매카시 대신 짐 조던 의원을 추천했습니다. 그런데 짐 조던은 ‘매카시를 지지해달라’며 실제로 메카시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그런데도 강경파들은 조던을 지지했습니다.

6. 반대표를 던진 강경파는 트럼프 지지자들입니다.
20명중 12명이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라며 ‘트럼프가 진짜 당선자’라고 주장합니다. 20명중 17명이 유세중 트럼프의 지지와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4일(미국시간) 트럼프가 '매카시 뽑아달라'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20명은 3차례 투표에서 모두 응하지 않았습니다.
‘찐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은 ‘매카시를 못믿겠다’며 ‘의장 불신임권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트럼프식 편가르기 SNS정치가 강한 에코챔버로 작용, 공화당내 강온대립이 격화돼 결국 공화당의 발목을 잡은 꼴입니다.

7. 개원부터 마비된 하원사태는 간단치 않습니다.
매카시는 물론 강경파 의원들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언젠가 하원의장을 뽑기는 하겠지만 이런 당내 강온대립은 개원 이후에도 계속될 겁니다. 하원은 예산과 법안을 모두 장악하고 있습니다. 야당(공화당) 강경세력의 비토에 휘둘릴 경우 행정부 역시 반신마비됩니다.

8. 미국 정치의 퇴행적 행태가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디지털 선진국 한국에서도 SNS정치 에코챔버 현상이 심각합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과 지지자들이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민주당내 친문ㆍ친명의 분열, 국민의힘 친윤ㆍ비윤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IT시대에 걸맞는 정치를 고민할 때입니다.
〈칼럼니스트〉
2023.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