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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세계서 안 밀린다…한국은 노벨상 콤플렉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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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29일 국립한국문학관 부지(은평구)에서 포즈를 취 한 문정희 관장. 문 관장은 “한국 문학을 홍보하게 된 것은 축복”이라고 했다. 김경록 기자

지난달 29일 국립한국문학관 부지(은평구)에서 포즈를 취 한 문정희 관장. 문 관장은 “한국 문학을 홍보하게 된 것은 축복”이라고 했다. 김경록 기자

“김소월, 이상, 서정주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는다. 한국 문학을 한국에 가둔 것은 노벨상 콤플렉스다.”

지난해 10월 국립한국문학관장에 취임한 문정희 관장은 “해외에서 유명한 상을 받아야만 그 작가를 달리 보는 세태가 아쉽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있는 보석은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남이 봐주기만을 기다린다”는 게 한국 문학계를 보는 그의 시각이다. 국립한국문학관이 들어설 서울 은평구 기자촌 터에서 지난달 29일 문 관장을 만났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해 54년째 시를 쓰고 있는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문학관장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최초의 국립 문학관, 2025년 개관

2025년 개관하는 국립한국문학관은 국내·외 한국문학 관련 자료를 전시·연구하는 최초의 국립 문학관이다. 흩어진 문인들의 작품을 집대성해 세상에 선보이기까지의 개관 준비 과정 전체가 3년 임기인 그의 손에 달려있다.

문 관장은 중책을 맡게 된 때를 회상하며 “문학적 허영심이 후끈했다”고 했다. 시인 출신인 문 관장은 스스로를 “문학주의자”라고 부른다. “사랑하는 한국 문학을 수집해서 전시하고 존귀하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문 관장은 자료 기증자를 찾고 작품을 복원하는 작업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세종시 수장고에 확보된 작품은 약 8만점. 백석 시인이 100부만 발행해 주변 문인들에게 나눠줬다는 전설의 시집, 손에 넣지 못한 윤동주가 필사해 간직했다는 그 유명한 『사슴』 초판도 그중 하나다.

최다 기증자는 서지학 전문가인 고 하동호 공주사대 교수다. 하 교수는 백석 시인의 시집 『사슴』과 김소월의 시집『진달래꽃』 초판 등 근·현대 한국 문학 자료 5만점을 기증했다. 남편인 고 김윤식 서울대 교수의 유산 30억원을 쾌척한 가정혜씨, 생전 수집한 모든 한국 문학 자료를 사후 기증하겠다고 약속한 오무라 마쓰오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한국 문학 연구가)도 주요 기증자다.

문 관장은 “모두의 삶에 문학이 녹아들게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관의 롤모델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를 기리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제임스조이스 센터다. 문 관장은 “아일랜드는 나라 전체가 문학관”이라며 “한 명의 위대한 작가는 하나의 세계”라고 했다. 조이스는 20세기 초 식민지 아일랜드의 사회상을 담아낸 소설 『더블린 사람들』로 조국에 ‘문학의 나라’라는 명성을 선물했다.

문학관을 통해 특별히 조명하고 싶은 문인이 있냐는 질문에 문 관장은 “역사를 골라서 가질 순 없다. 친일, 월북, 독재 옹호 등 논란이 있는 작가라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솔리니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에즈라 파운드의 작품을 내다 버릴 순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에즈라 파운드는 T.S. 엘리엇과 함께 1900년대 모더니즘을 주도한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미국 출신인 파운드는 1924년 39세의 나이로 이탈리아에 정착해 무솔리니를 만났고 이후 수십 년 동안 파시즘 옹호 활동을 했다. “문학은 포용해야 한다”, “문학사의 상처는 상처대로 안고 가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친일·월북 논란 있는 작가도 배제 않겠다”

여성 문학의 진면목을 드러내겠다는 포부도 내놨다. 문 관장은 “고려가요 ‘가시리’도 작자 미상으로 알려졌지만 여성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며 “가시리, 조선 시대 황진이부터 근대 작가인 나혜석, 김명순까지 한국 여성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꾸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라 전체가 문학관이 되길 바란다”는 그의 다음 목표는 단순한 전시 공간으로서의 문학관이 아닌 연구소를 만드는 일이다. 일단은 “문학 작품을 모으고 복원해 일반인들에게 선보이는 작업이 먼저”지만 궁극적으로는 “문학관이 한국문학과 한국학 연구자들의 구심점이자 연구 허브가 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가 관람객에게 바라는 것은 “번갯불이 치는 경험”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문학을 읽으며 소설 속 주인공의 일이 내 일인 양 느끼고 위로를 받는다. 그 순간이 바로 “마음 속에 번갯불이 치는 순간”이란다. “한국 문학이 시대의 파도를 넘어 이렇게 건재하게 살아남았음에 전율을 느낀다”는 그는 “결국 모든 문인의 꿈은 희망을 주는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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