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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무슨 정치" 조롱받던 美의원, 대통령 승계 서열 3위로 우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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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패티 머레이(72)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3일(현지시간) 여성 최초로 상원 임시의장으로 선출됐다. 로이터=연합뉴스

패티 머레이(72)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3일(현지시간) 여성 최초로 상원 임시의장으로 선출됐다. 로이터=연합뉴스

“테니스화나 신은 엄마가 뭘 할 수 있겠어.” 

패티 머레이(72) 미 민주당 상원의원이 1988년 의회에 입성하면서 들었던 야유다. 머레이 의원은 그러나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에 보기 좋게 복수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 상원 임시의장(Senate president pro tempore)으로 선출되면서다. 여성이 이 자리에 오른 건 미 의회 역사상 처음이다. 그는 이제 대통령 승계 서열 3위 직위에 올랐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매체들은 이날 일제히 “머레이가 여성으로서 첫 역사를 썼다”고 평했다. 머레이는 “미 의회가 느리더라도 확실히 더 미국다워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소감을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우리는 모두 국회에서 새 역사를 목격했다”고 축하 인사를 전했다.

카멀라 해리스(오른쪽) 미 부통령이 패티 머레이를 안아주고 있다. AP=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오른쪽) 미 부통령이 패티 머레이를 안아주고 있다. AP=연합뉴스

‘임시’란 표현이 붙었지만 머레이는 상원과 관련된 실질적인 업무를 총괄한다. 미 헌법상 부통령이 상원의장을 맡지만, 명목상 직위에 그치기 때문이다. 임시의장은 상원을 주재할 수 있고, 상원 법안 대부분에 서명한다. 하원의장과 함께 미 의회 예산처장을 지명하는 권한도 있다.

상원 임시의장은 대통령 승계 서열 3위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임기 중 면직·사임·사망할 경우, 부통령-하원 의장-상원 임시의장 순으로 직을 승계한다. 미 정치 전문매체 더 힐은 “공화당 내분으로 하원의장 선출이 지연되면서 대통령 승계 서열 첫 두 자리 모두 여성이 차지하게 됐다”고 전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여성이기 때문이다.

패티 머레이(맨 왼쪽)가 처음 상원의원이 된 1992년은 여성이 대거 당선돼 '여성의 해'로 불렸다. [패티 머레이 페이스북]

패티 머레이(맨 왼쪽)가 처음 상원의원이 된 1992년은 여성이 대거 당선돼 '여성의 해'로 불렸다. [패티 머레이 페이스북]

보통 다수당에서 가장 오래되거나 고위급인 상원의원이 맡는다. WP에 따르면, 미 역사상 최장수 여성 상원의원인 다이앤 파인스타인(90)이 당초 새 임시의장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가 고령 등을 이유로 거절했고, 그다음 순서인 머레이에게 행운이 돌아갔다. 두 사람은 1992년 상원의원 동기다.

워싱턴에서 태어난 머레이는 6명의 형제·자매가 있는 다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가 10대 때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유공자였던 아버지가 다발성 경화증을 앓으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워싱턴주립대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그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패티 머레이는 정치에 입문했을 때 "테니스화나 신은 엄마가 무슨 변화를 만들 수 있겠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테니스화는 그의 상징이 됐다. [패티 머레이 페이스북]

패티 머레이는 정치에 입문했을 때 "테니스화나 신은 엄마가 무슨 변화를 만들 수 있겠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테니스화는 그의 상징이 됐다. [패티 머레이 페이스북]

두 아이를 기르는 워킹맘이었던 머레이가 정치에 입문한 건 88년 워싱턴주의회 상원의원이 되면서다. 그는 자신의 전기에서 “주 정부 예산이 삭감돼 자녀의 유치원이 폐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군가 문제를 해결하기만을 기다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는 1만3000명의 부모를 모아 단체를 만들고 주 하원의원들에게 항의했다. 이후 92년 상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가 처음 정치인이 됐을 때 한 남성 의원으로부터 “테니스화나 신은 엄마일 뿐”이란 말을 들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머레이는 훗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력 전체를 사람들을 돕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던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첫 여성 상원 재향군인위원회 위원장이 됐을 때, 재향군인뿐 아니라 재향군인 간병인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데 몰두했다고 한다. 당시 간병은 주로 여성이 맡았다. 임신 20주 이후 낙태를 범죄화하는 법안에 반대하기도 했다. 머레이는 NBC에 “상원 임시의장이 돼서도 여성과 육아, 교육 등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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