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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제2의 무역상사 부흥’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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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용민 WTC 서울 대표·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 서울 대표·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워런 버핏은 글로벌 투자에서 방향타 역할을 하는 투자의 귀재다. 버핏은 2022년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 등 일본 종합상사에 대한 지분율을 각각 6%대 후반으로 높였고 두 자릿수 수익률을 거뒀다. ‘이쑤시개에서 인공위성까지’라는 수식어가 상징하듯 버핏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선도하는 일본 기업들에 투자한 이유가 무엇일까. 경제안보의 핵심인 원유·석탄·소맥·니켈 등에 대한 글로벌 거래를 선도해 일본의 공급망을 책임지는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미국의 경제력이 세계 최고라고 인정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의심할 필요 없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민간 기업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에너지 확보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면서 미국 대통령의 입을 주목하지만, 전문가들의 눈은 다른 곳에 가 있다.

미국의 글로벌 석유 재벌인 엑손모빌·텍사코 등의 움직임을 통해 국제 유가 향방을 가늠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으로 곡물 확보를 위해 모든 나라가 동분서주했지만 핵심 키는 글로벌 곡물 메이저인 카길(Cargill)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카길은 글로벌 곡물 시장을 지배하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다. 1865년에 설립돼 매출 규모가 ‘포춘 500’에서 10위권을 맴돈다.

세계 수출 6위 일군 종합상사들
무역전쟁·경제안보 최전선 지켜
원자재 확보 위험요인 줄여줘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거의 모든 나라가 경쟁적으로 원유·광물·곡물 등 원자재 확보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거의 모든 원자재를 대외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정부는 기본적으로 시장 플레이어가 아니다. 정부의 주된 역할은 시장의 애로를 해결해주고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한국은 공급망 경보시스템을 통해 관리되는 품목이 약 4000여 개나 되기에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주체는 민간 기업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무역 흑자의 보고였던 대중국 무역이 2023년에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사상 처음 적자로 돌아설 우려가 있어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국은 2022년 기준 세계 6위의 수출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삼성물산·LG상사, ㈜대우·현대종합상사·SK상사·효성물산·㈜쌍용(1990년 전후 기준 기업명) 등 7대 종합상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 수출의 절반을 이들 7대 기업이 차지할 정도로 무역 보국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때론 금융을 결합한 복합 프로젝트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삼국 간 거래도 마다치 않았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처럼 경제 독립을 위해 뛰었다는 무역 베테랑들의 고백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글로벌 네트워크와 최고의 인재를 갖춘 무역상사들이 필수 광물 확보에 나서야 한다. 특히 무역 전사들이 경제안보의 최전선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정부는 거래 위험을 줄여줘야 한다. 산업용 요소수 사태가 터졌을 때 실질적인 해결수단을 제공한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종합상사였다. 하지만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다시는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 요소수를 확보했지만, 곧바로 물량 과다로 가격이 급락하는 어려움을 맛봤기 때문이다.

현행 환율보험처럼 불확실한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한 경우 이윤은 아니더라도 원가 보전에 문제가 없도록 안전판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수입 증가로 어려움이 초래되면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무역조정지원’이나 농수산물의 수급 안정을 위한 ‘농수산물 가격안정기금’을 벤치마킹해 금융지원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핵심 원자재에 대한 공급망 관리를 위해 가장 확실한 것은 해외투자다. 공기업을 통해 직접 확보하는 것과는 별개로 민간 기업이 더 능동적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원자재 투자용 전용상품을 설계해야 한다. 지금도 무역보험공사가 기업의 투자 위험을 커버하는 상품을 운용 중인데, 안정적인 자원조달을 사회적 인프라로 간주하고 보상과 세제 등 혜택을 더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들이 많으면 그 나라의 경제안보는 자연스럽게 튼튼해지고 국익도 증가한다. 수출 위기도 넘고 공급망도 안정시키기 위해 새해에는 ‘제2의 무역상사 부흥 시대’가 다시 오길 간절히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용민 WTC Seoul 대표·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