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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불 5년’ 정치방정식 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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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정치에디터

정효식 정치에디터

지난해 한국 대선은 권력 10년 주기설이 깨진 해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5년 만에 보수·진보가 번갈아 10년씩 집권하던 경험칙이 무너지고 5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다. 2020년 미국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28년 만에 재선에 실패하며 4년 단임 대통령에 그쳤다. 권력 주기가 짧아진 건 무엇보다 기존 양당 정치 세력은 물론 정치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크고 그만큼 심판의 주기도 짧아졌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권불 5년’의 충격은 미국에 비해 훨씬 크다. 미국은 행정부 못지않게 강력한 의회가 2년마다 중간선거를 치르며 완충 역할을 한다. 반면 한국에선 대선이 끝난 지 300일이 지났지만 1년 이내 대선을 앞둔 것처럼 양 진영과 지지층의 대립이 나라를 반쪽으로 갈라 놓고 있다. 정치가 빈부·세대·젠더 간 양극화의 해결책을 제시해 공동체를 통합하긴커녕 갈등의 진앙이자 증폭제가 된 것이다.

새해 중대선거구제 개혁을 제안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2일 신년 인사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 중대선거구제 개혁을 제안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2일 신년 인사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계에선 이미 대결과 반목을 완화하고 협치와 통합을 유도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 개혁의 대안을 내놓은 바 있다. 승자독식의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 소선거구(상대적 다수)제의 개혁이다. 소선거구제란 선거구당 한 명을 뽑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후보가 10명 이상 출마할 경우 득표율이 10%에 불과할지라도 1등이 당선하고 나머지 후보를 지지한 90% 유권자의 투표는 사표(死票)가 되는 제도다. 당선한 1등이 나머지 대다수인 90%의 민의를 수용하지 않고 10% 열성 지지층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게 용인된다. 다음 선거에서 또 당선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도권과 여타 지역의 인구비례마저 무너뜨린 불평등한 선거구 획정까지 결합해 ‘1인 1표’ 투표가치평등(등가성)의 원칙은 완전히 사라진다.

2020년 4월 15일 치른 21대 총선 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비례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은 지역구 득표율 49.9%(비례 33.4%)로 의석은 60%인 180석을 얻었다. 2당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은 41.5%(33.8%) 득표율로 103석(34.3%)을 얻었다. 정의당·국민의당·열린민주당은 대부분 비례로 각각 6석(2%), 3석(1%), 3석(1%)씩 얻는 데 그쳤다. 1당이 득표율 보다 과다 대표되고, 민의가 왜곡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신년사로 중대선거구제 개혁을 정치개혁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야는 영호남 텃밭만 쳐다보다가 수도권 과반 유권자의 개혁 의지를 외면해선 안 된다. 소선거구제의 개혁은 공천에 목매게 하는 양당 정치의 폐해를 바로잡는, 이른바 정당 민주화를 위한 개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