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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표가 아쉽다고…'인생이 가짜' 美의원, 버젓이 의회 입성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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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샌토스(34·뉴욕·공화당) 미국 하원의원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19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유대인연합의 연례 지도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그의 당선은 공화당이 '종이 한장 차이(razor-thin)'로 민주당을 누르고 다수당이 되는 데 기여했지만, 학력·경력은 물론 종교까지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AP=연합뉴스]

조지 샌토스(34·뉴욕·공화당) 미국 하원의원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19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유대인연합의 연례 지도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그의 당선은 공화당이 '종이 한장 차이(razor-thin)'로 민주당을 누르고 다수당이 되는 데 기여했지만, 학력·경력은 물론 종교까지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의 텃밭에서 붉은 깃발(공화당을 상징)을 꽂은 젊은 정치인…알고 보니 역대급 거짓말쟁이.’
지난해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학력ㆍ경력 등 이력 대부분을 속인 것으로 드러난 조지 샌토스(34ㆍ공화당) 하원의원 당선인에 대한 현지 언론들의 묘사다. 숱한 거짓말 논란 끝에 검찰 수사까지 받는 처지에 놓인 샌토스이지만, 그가 결국 사퇴 없이 3일(현지시간) 의회에 무혈 입성할 예정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의회 개원에 맞춰 선출하는 하원의장 선거에서 공화당이 어려움을 겪으며 의원 개인의 도덕성 시비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샌토스는 선거 기간 ‘히스패닉 이민자 출신, 유대인이자 성소수자 공화당원’이라는 흔치 않은 타이틀로 뉴욕 제3선거구(롱아일랜드 북부·퀸스 북동부)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켰다. 샌토스 스스로 자신을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뉴욕의 버루크대 경제·금융학과를 졸업, 골드만삭스ㆍ시티그룹 등 월가에서 몸 담은 인물”로 홍보했다. 현직 동성애자 공화당 의원은 그가 처음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으로 소개된 그의 인생 역정은 진보 성향이 우세한 뉴욕의 유권자들을 움직였고, 하원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에 근소한 우위(222석 대 213석)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거짓으로 드러난 아메리칸 드림 신화

상황은 지난달 중순 NYT의 폭로 보도로 반전을 맞았다. 샌토스의 학력 등을 검증한 결과 많은 부분이 조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의 버루크대는 그가 졸업했다고 밝힌 2010년 샌토스와 일치하는 생년월일, 이름을 가진 학생은 없었다고 확인했다. 골드만삭스ㆍ시티그룹에서 근무했던 적도 없었다. 샌토스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천주교 신자라고 주장하는 과거 트윗 글이 밝혀지는 등 오락가락한 사실도 새롭게 조명됐다. 성소수자 타이틀 역시 사실과 달랐다. 과거 한 여성과 수년간 결혼 생활을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그는 “사생활 문제며, 성적 취향은 변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가짜 경력’과는 별도로 뉴욕 연방검찰은 샌토스 캠프의 선거자금 일부의 출처가 불분명한 것으로 파악돼 수사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브라질에서 살던 2008년(당시 19살) 수표 두 장을 위조한 혐의로 리우데자네이루 법원에 기소된 사실도 밝혀졌다. 이 건은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기소 중지된 상태다.

“이 정도면 인생이 가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방위로 이력을 부풀린 셈이다. 샌토스는 보도 이후 일부 경력이 허위라는 점을 시인하면서도 “(이력서가) 과장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선거기간 샌토스 당선인의 홍보 영상.[로이터=연합뉴스]

선거기간 샌토스 당선인의 홍보 영상.[로이터=연합뉴스]

그의 거짓말 논란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샌토스가 의회에서 선서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닉 랄로타(44·뉴욕·공화당) 하원의원 당선인은 “뉴욕 시민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며 “하원 윤리위원회의 내부 조사와 함께 필요하다면 법 집행도 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미국에서 선거 관련 범죄 등으로 기소되거나 유죄를 받더라도 의원직 상실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원의원 3분의 2 이상이 의원직 제명에 동의하거나 스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 CNN에 따르면 미 역사상 의회에서 제명된 의원은 20명(상원 15명, 하원 5명)이며, 이들 대부분은 남북전쟁(1861~65년) 관련 제명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때 크리스 콜린스 하원의원과 던칸 헌터 하원의원은 각각 개인 비리, 선거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자 유죄가 나오기 전 사임했다.

한 표 아쉬운 공화당, ‘샌토스 리스크’ 침묵

케빈 매카시(57ㆍ캘리포니아) 원내대표를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는 샌토스에 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당 지도부로선 아슬아슬하게 다수당을 유지하고 있어 한 석이 아쉬운 상황이라서다. 지난달 말 ‘샌토스에게 사퇴를 요구할 것이냐’는 NYT의 질의에 매카시는 답변하지 않았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공화당 의원들은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일단 의회 원 구성을 마친 뒤 (윤리위원회 회부 등) 문제를 처리하는 것으로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야당 간사 시절인 지난해 4월 케빈 매카시 하원의원(공화·캘리포니아). 제118회 의회에서 공화당은 다수당이 됐지만, 하원의장 선출에 잡음이 일고 있다. [AP=연합뉴스]

야당 간사 시절인 지난해 4월 케빈 매카시 하원의원(공화·캘리포니아). 제118회 의회에서 공화당은 다수당이 됐지만, 하원의장 선출에 잡음이 일고 있다. [AP=연합뉴스]

공화당 지도부는 당장 개원 첫날 하원의장 선출이라는 고비부터 넘겨야 한다. 새 의회 개시를 하루 앞둔 2일까지 하원의장 후보인 매카시는 의장 선출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의원들의 구두 투표로 진행되는 하원의장 선거에서 매카시가 의장으로 선출되려면 과반(218표)이 필요하다. 민주당(213명)을 제외하면 공화당 하원의원(222명) 대부분이 그를 지지해야 가능한 셈이다. 공화당 하원의원 중 만약 5명이 매카시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하면 과반 득표에 실패하게 된다. 현재 공화당 내 ‘매카시 반대파’는 4~5명인 것으로 추정돼 매카시 하원의장 선출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매카시 하원의장 선출에 반대하는 이들은 공화당 내 강경파 의원들이 주축이다. 이들은 매카시 하원의장 후보가 바이든 정부를 상대로 지나치게 온건 노선을 펴고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공화당 하원, 초장부터 삐걱

하원의장 선출 투표에서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재투표에 들어가게 된다. 마지막 재투표는 100년 전인 1923년으로, 폴리티코는 “매카시가 재투표에 들어가게 되면 19세기 이후 두 번째 사례”라고 보도했다. 매카시로서는 이 같은 ‘굴욕’을 피하기 위해 자당 의원을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다. 자당 의원의 사퇴로 한 석이 날아가는 사태는 피해야 하는 것이다. 샌토스 역시 이를 잘 알기에 매카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미국 제118회 의회의 회기는 1월 3일 하원의장을 선출하며 개시된다. [AP=연합뉴스]

미국 제118회 의회의 회기는 1월 3일 하원의장을 선출하며 개시된다. [AP=연합뉴스]

불안정한 출발을 알린 공화당 주도의 하원은 그만큼 봉합이 쉽지 않은 야당의 분열상을 반영한다. 하원의장 대안으로는 스티브 스칼리스(57·루이지애나), 짐 조던(58·오하이오) 하원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하원의장을 선출하더라도, 샌토스 처리 문제 등을 놓고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까지 샌토스는 사퇴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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