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건의 살인을 저지른 이기영(31)이 기존에 지목한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 전 동거녀의 시신을 매장했다고 진술을 번복해 경찰이 수색에 나섰다. 앞서 이씨는 지난해 8월 초 전 동거녀 50대 여성을 살해하고 파주시 공릉천변에 유기했다고 했지만, 경찰은 해당 장소에선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택시기사를 살해하고 아파트 옷장에 시신을 숨긴 이기영이 전 동거인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고 지목한 파주시 공릉천변에서 지난달 27일 경찰이 수색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이씨 “수색 장소 아닌 다른 곳에 시신 묻었다” 진술 번복
3일 일산동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씨는 이날 조사 과정에서 시신 유기 장소가 앞서 지목한 지점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다리 근처라고 진술했다. 또 이씨는 차량용 루프백에 담은 시신을 단순 유기한 게 아니라, 땅을 파서 매장했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지난달 27일 공릉천변에 직접 이씨를 대동해 시신 유기 장소를 확인하고 수색을 벌여왔다. 그러나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태풍·폭우로 인한 유실 가능성도 제기됐다. 자칫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이 될 뻔했지만, 이씨의 새로운 진술이 나오면서 수사 상황도 달라진 것이다. 이씨가 앞서 거짓 진술을 한 경위와 진술을 번복한 구체적인 이유 등은 아직 조사 중이다.
한편 실물과 너무 다른 ‘증명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는 이씨의 실물은 오는 4일 오전 9시 공개될 예정이다. 이씨는 넉 달 남짓한 기간에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잇달아 살해한 후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은닉 등)로 구속돼 최근 신상공개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증명사진과 이름, 나이가 공개된 바 있다.
경찰이 공개한 이기영의 운전면허증 사진.
경찰은 4일 이씨를 검찰에 송치하면서 이씨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식적인 포토라인은 만들지 않겠지만, 검찰로 이송하기 전 경찰서 현관 앞에 잠시 세워 자연스럽게 취재진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개된 이씨의 사진이 실물과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이같이 결정한 것이다. 해당 증명사진은 이씨가 지난해 발급받은 운전면허증 사진이다.
그러나 이씨가 마스크나 손이나 옷,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면 이를 제재할 방법은 없다. 게다가 이씨는 자신의 범행을 가족이 알게 되는 것을 꺼렸고, 앞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출석할 때도 취재진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게 가렸기 때문에 스스로 얼굴을 드러낼지는 미지수다.
이씨와 연락한 380명 전수조사… 추가 범행은 아직 없어
경찰 수사 결과 현재까지 이씨의 추가 범행은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1년간 이씨와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전화를 한 380여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는데, 추가 피해자로 의심될 만한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기영이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은 이씨의 두건 범행이 모두 일반적인 살인이 아닌 금품을 노려 의도적으로 벌인 강도살인으로 보고 살인 대신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형법상 살인죄는 법정형이 ‘5년 이상 징역∼사형’이지만 강도살인은 최하 형량이 무기징역, 최고 사형으로 훨씬 무거운 벌을 받게 돼 있다.
경찰은 숨진 택시기사 A씨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 이씨가 범행 직후 600만 원짜리 커플링을 구매하고 고급 술집·호텔 등에서도 사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이씨가 A씨의 스마트폰 잠금 패턴을 풀어 비대면 방식을 통해 수천만 원의 대출을 받은 것도 확인됐다. 신용카드 사용액과 대출금을 합하면 5400만원을 가로챈 것이다. 잠금 패턴은 A씨가 소지하고 있던 수첩에 그려진 것을 보고 푼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전 동거녀이자 집주인 B씨에게 ‘3억 5000만원을 나중에 갚겠다’고 약속한 내용의 계약서도 발견됐다. 경찰은 채무 회피를 위한 계획범죄인지도 수사 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피해자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돈을 쓴 사실은 인정하지만, 돈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살인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주말 프로파일러 2명을 투입해 이씨의 사이코패스 검사도 진행했다. 검사 자료를 바탕으로 과거 범죄 이력과 유년기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 중이라 결과는 송치 이후에 나올 예정이다.
집 안 혈흔 분석, 남자 1명·여자 3명 유전자 확인
이씨의 집 안 소파, 신발, 캠핑용 수레, 벽면 등에서 발견된 혈흔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성분분석에서 3일 현재까지 남자 1명, 여자 3명의 혈흔 유전자가 확인됐다. 남자는 숨진 택시기사, 여자 1명은 전 여자친구이자 동거녀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나머지 여성 2명 유전자의 경우 이씨의 집에 있었던 이씨의 어머니와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돕던 여성, 현 여자친구 등의 유전자와 대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유전자를 대조할 예정인 여성 3명은 모두 안위가 확인된 사람들이다. 경찰은 나머지 여성 2명의 유전자가 만일의 경우 사건에 연루된 제 3의 피해자 것일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이씨 거주지에서 확인된 나머지 혈흔에 대한 분석도 국과수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