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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댄서, 태극마크 달았다…항저우 찍고 파리 간다는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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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23년은 흔히 ‘브레이크 댄스’나 ‘비보잉’으로 불리는 브레이킹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오는 9월 열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길거리 댄스를 벗어나 스포츠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받게 됐다

 브레이킹 23년차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윙’(Wing·김헌우)도 새해를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브레이킹 선수들에겐 꿈의 무대인 ‘레드불 비씨원’(Red Bull Bc One)에서 인정 받은 실력자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비보이로 수많은 세계 무대를 밟았지만, 정식으로 태극마크를 단 건 처음이다.

 윙은 지난해 11월 열린 ‘브레이킹 K파이널 무대’에서 우승하며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닉네임에 걸맞게 날개가 달린 듯 자유로우면서도 힘 있는 안무로 태극마크를 따냈다. 부상 등의 변수가 없다면, 윙은 함께 선발된 ‘킬’(Kill·박인수), ‘프레시벨라’(Freshbella·전지예), ‘스태리’(Starry·권성희)와 함께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 이번 대회에선 브레이킹과 함께 스케이트보드, E스포츠 등이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뉴욕 클럽에서 시작된 브레이킹, 반세기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

 브레이킹은 1970년대 초 미국 뉴욕 브롱스의 클럽에서 탄생했다. 디제잉 중 가사 없이 흘러나오는 간주(브레이크)에 맞춰 자유롭게 춤을 추던 것이 시작이었다. 오랫동안 힙합의 하위문화로만 취급됐지만 비보잉 월드컵으로 불리는 국제대회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가 1990년에 레드불 비씨원이 2004년 출범하면서 서로 경쟁하고 승부를 가리는 ‘배틀’의 성격이 강화됐다. 예술성과 스포츠성이 어우러진 영역이라는 점에서는 피겨 스케이팅과도 비견된다. 2020년 1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브레이킹을 2024년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여 개인전 두 종목에 메달이 걸려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파리 올림픽 출전권이 따라온다.

 대표팀 맏형인 윙은 지난달 2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과 국가대표 선발의 의미를 묻자, “인정”이라고 답했다. “처음 춤을 췄을 때부터 ‘인정받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생각했는데, 이제는 국가적으로 인정받는 스포츠 종목이자 춤이 됐어요.” 윙이 처음 춤을 춘 1999년만 하더라도 브레이킹은 비주류의 길거리 문화로 취급됐다.

비보이 ‘윙’(Wing·김헌우)이 지난달 23일 경기 부천시의 진조크루 연습실에서 비보잉을 선보이고 있다. 이세영PD

비보이 ‘윙’(Wing·김헌우)이 지난달 23일 경기 부천시의 진조크루 연습실에서 비보잉을 선보이고 있다. 이세영PD

金너머 브레이킹 매력 뽐내겠다는 대표팀  

 브레이킹 국가대표 선수들의 목표는 브레이킹의 ‘멋’을 선보이는 것이다. 메달 색깔도 물론 중요하지만, 브레이킹만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비걸 스태리는 “‘테크닉에 뛰어나다’는 말을 듣기 보다는, ‘멋있는 비걸’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된 스태리는 출전 선수 4명 중 비보잉 경력이 7년으로 가장 짧지만, 기량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춤에는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이 들어있다. 춤으로 사상과 문화까지 보여준다는 면에서 브레이킹은 인문학과 유사한 거 같다. 선수들의 개성을 보고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비걸 프레시벨라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은 물론, 비보이와의 경쟁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실제 프레시벨라는 지난해 JTBC 브레이킹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 ‘쇼다운’ 출연 당시 배틀에서 비보이들을 꺾으며 ‘걸크러쉬’를 뽐냈다. 그는 “외국 비걸들을 보면 비보이 못지않게 파워무브를 잘하고, 똑같은 수준의 기술을 소화한다”며 “나만의 것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비걸 ‘프레시벨라’(Freshbella·전지예)가 지난달 23일 경기 일산시의 한 연습실에서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비보잉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이세영PD

비걸 ‘프레시벨라’(Freshbella·전지예)가 지난달 23일 경기 일산시의 한 연습실에서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비보잉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이세영PD

 선수들은 오는 16일 충북 진천군의 국가대표선수촌에 입촌해 본격적인 대회 준비에 나선다. 국가별로 남·여 개인전에 2명이 함께 출전한다. 예선전과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8강 이후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평가 기준은 ▶예술성(창의성·개성) ▶신체적 능력(기술·다양성) ▶해석적 능력(수행력·음악성)이다. 결승전까지 가려면 7~8번의 경기를 치러야 한다. DJ가 무작위로 트는 음악에 맞춰 두 명의 선수가 1분 안에 번갈아 가며 춤을 선보이는 게 한 라운드며, 경기 당 기본 2라운드씩 진행된다. 결승전과 3·4위전은 3라운드씩 열린다. 박재민 브레이킹 국제심판은 “자신만의 동작, 즉 창의성이 중요한 평가 요소며 같은 경기 중, 혹은 전 라운드에서 보여줬던 동작을 반복하면 감점이 크다”고 설명했다. 자신만의 ‘시그니처 동작’을 곁들인 레퍼토리가 다양할 수록 유리하다.

일본·중국 10대 돌풍…“젊은 후배들이 많이 도전했으면”

 한국은 과거 종주국인 미국과 함께 브레이킹을 선도했다. 2000~2010년대에 윙ㆍ킬에 이어 ‘홍텐’(Hong10·김홍열) 등 걸출한 비보이들이 등장해 세계 대회를 주름잡았다. 진조크루·갬블러크루·퓨전MC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비보잉 크루들도 이 시기 탄생했다. 하지만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K팝과 랩으로 대중과 댄서들의 관심이 옮겨가며 2000년대생 이후로는 ‘월드클래스’ 춤꾼의 계보가 끊어졌다.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프레시벨라가 24세다.

 반면 지난해 브레이킹 세계대회 중 하나인 아웃브레이크 유럽에서 우승하며 아시안게임 출전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중국의 비걸 ‘671’(리우칭위·刘清漪)은 17세에 불과하다. 일본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불리는 비보이 ‘Tsukki’(이누마 츠키·飯沼月光)도 671과 동갑이다. 브레이킹 선수들이 아시안게임과 파리 올림픽 이후를 걱정하는 이유다. 게다가 국내 등록 선수 기준으로 비보이는 300여명, 비걸은 20여명에 불과해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선수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는 각오로 새해를 맞고 있다. 비보잉 18년 차로, 윙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비보이 킬은 “최근 K팝으로 관심이 쏠리면서 자연스럽게 브레이킹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며 “아시안게임에서 저희 무대를 보고 젊은 후배들이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윙은 “20년 넘게 춤을 쳐왔지만 항상 새롭다. 똑같은 두 다리, 두 팔로 표현하는데 매년 새로운 춤이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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