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김동원의 이코노믹스

각자도생의 지구촌, 부단한 혁신만이 살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전환점에 선 2023년 세계경제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인가

2023년을 시작하면서 바라본 세계 경제에는 세 가지 좋은 소식과 두 가지 나쁜 소식이 있다. 지난 3년 세계를 휩쓸었던 코로나 팬데믹과 지난해의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인플레이션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끝이 보인다는 점에서 2023년은 희망을 안고 있다. 반면에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는 점과 고금리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우울해진다.

2023년은 한마디로 최악의 악몽이 끝나가지만, 여전히 악몽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복잡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2023년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며, 2023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는 전략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전쟁·인플레 끝나가지만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

세계화  반세계화 중심축 이동
미국도 ‘국익의 포식자’로 변화

독일 ‘아젠다 2010’ 성공의 교훈
낡은 체제 허물고 역동성 키워야

좋은 소식 셋, 나쁜 소식 둘

가장 반가운 소식은 지난 3년간 세계 인구 12명 중 1명에 해당하는 6억5100만 명이 감염되어 670만 명이 사망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우리는 아직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끝은 보인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가 2023년 해제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두 번째 좋은 소식은 2022년 세계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의 실지 회복과 러시아의 전쟁 지속능력 약화, 유럽과 미국의 전쟁 지원 지속 애로 증대 등 복합적인 요인이 전쟁을 끝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 번째 좋은 소식은 2022년 세계 경제를 덮쳤던 인플레이션이 하락세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반면에 가장 나쁜 소식은 세계 경제가 2023년 침체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IMF 총재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발표한 2.7%에서 1월 1%대로 하향 수정할 것을 언급한 바 있으며, 신용평가사 S&P가 발표하는 세계구매자지수(PMI)는 지난해 7월에 꺾이기 시작하여 8월부터는 50 밑으로 떨어져 침체를 계속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세계 상품무역 성장률을 2022년 3.5%에서 2023년 1%로 전망했다. 특히 미국 GDP 성장률은 최소 2분기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인플레이션이 하향세로 전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노동시장이 여전히 과열 상태에 있어 연방준비제도(Fed)의 올해 금리 인하는 소폭에 그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연준의 정책보고서는 2023년 말 연준의 기준금리가 2022년 말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을 시사했다.

더욱 거세질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적 전환점(inflection point)은 조직이나 개인의 대응에 따라 악순환 흐름과 선순환 흐름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을 말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4월 의회 취임 연설에서 미국이 중요한 전략적 전환점에 놓여 있음을 언급했으며, 작년 11월 중국 시진핑 주석도 20차 당 대회 보고에서 같은 의미를 써서 장기집권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면 2023년이 전략적 전환점인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3년간 102년 만의 코로나 팬데믹, 83년 만의 우크라이나 침공, 42년 만의 세계적 인플레이션 등 역사적 충격의 중첩은 시대 흐름의 ‘분절’을 가져 왔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압박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경제의 협력과 공동 번영의 틀을 깨고 대신 지정학적 위험을 대두시켰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 결과 1990년대 이래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가 끝나고, ‘반세계화’(de-globalization) 내지는 재세계화(re-globalization)로 전환이 불가피해졌으며, 이미 세계 무역과 외국인 직접 투자의 구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체제의 관리자에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로 대변되는 국익의 포식자로 변화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은 세계가 ‘협력과 상생의 시대’에서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시대’로 변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경제는 세계 경제 판도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세계 공급사슬의 재편에 따른 생산의 효율성 저하, 기후변화의 충격으로 인한 식량위기의 위험 증대와 탄소 저감비용 부담 등으로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은 높아지고 있다.

깊어지는 장기침체의 늪

한마디로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는 국제 정치적으로는 ‘각자도생의 시대’이며, 경제적으로는 지난 30년에 비해 성장은 낮아지고 인플레이션 압력은 높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 또는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 대표적인 증거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국가 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66개국에서 현재 94개국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세계 부채의 대(對) GDP 비율은 2009년 215%에서 2021년 247%로 급증하여 재정위기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의 전략적 전환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가는 물론 기업과 개인 전체의 대응 여하가 미래의 흐름을 결정한다. 전략적 전환의 선택은 정부 정책, 기업 전략, 개인적 결단에 의해 결정된다. 그 선택이 선순환 또는 악순환의 어떤 흐름으로 흘러갈 것인가는 회복탄력성의 작용 여부에 달려있다.

회복탄력성은 낡은 기존의 틀을 허물고 새로운 역동성을 촉진하는 ‘체제 개혁’ 또는 ‘자기 혁신’에서 나온다. 2003년 당시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조롱받던 독일에 ‘어젠다(Agenda) 2010’으로 국정 개혁을 추진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사례는 전략적 전환점에서 경제를 선순환 구조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회복탄력성이 성공·실패 결정

반면 2012년 12월 취임했던 일본 아베 총리의 ‘아베노믹스’는 전략적 전환점에서 악순환 흐름을 가중한 실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2016년 국민투표로 브랙시트(Brexit)를 결정하고 2020년 1월 EU를 탈퇴한 이후 갈수록 휘청거리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G1’ 다툼의 승부도 결국 회복탄력성에 달려 있으며, 이 점에서 미국은 중국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

지난 3년간 코로나와 전쟁과 인플레이션의 상처로 세계 모든 국가가 증상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2023년 재기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1987)에서 ‘시대의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국가의 흥망을 결정한다고 결론지었다. 2023년이 바로 그런 결정적인 해이며, 2023년 국가·기업·개인 모두 회복탄력성을 강화하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고 할 것이다.

한국의 선택, 연금개혁에 진력해야

2022년 한국의 정권교체는 나라가 직면한 국정 혼란과 시대적 과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국민의 절박감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2023년 상황도 절대 밝지 않다. 국내적으로는 지난 20년간 누적돼 온 고령화, 양극화, 성장 잠재력 저하 등이 한계점에 이른 데다가 대외적으로는 국제 정치·경제의 축이 흔들리는 급변기에 접어들었다. 한마디로 올해 우리나라는 국내외 총체적으로 시대의 전략적 전환점에 진입한 형국이다.

한국 경제의 동력이 한계점에 이르렀고, 과감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만약 올해 개혁조치를 단행하지 못한다면 2024년 총선, 2027년 대선 등 향후 정치 일정과 장기 침체로 인해 갈수록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고령화율이 현 정부 집권 기간에 5.2%포인트 상승하여 역대 정권 중에서 고령화가 가장 가파르게 진행된다. 따라서 현 정부에서 연금개혁 등 고령화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게 더욱 힘들어질 것이며, 양극화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셋째,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어 개혁에 대한 갈등구조는 더욱 복잡하고도 심각해지고 있다.

만약 정부가 당면한 시대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현 정권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실패로 직결될 수 있다. 개혁에 성공해야 할 이유로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