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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미소가 최고의 수행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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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

새해 인사차 절 집안 가까이 사는 사형 스님을 찾아갔다. 인사동의 한 찻집 주인이 보내온 ‘노군미(老君眉)’라는 차를 선물로 챙겼다. 늙은 임금의 눈썹 같은 맛이 나는 차라는 이름이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노승에게 딱 어울리는 선물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사형 스님이 선의 지혜가 물씬 깃든 ‘눈썹 법문’을 들려준다.

“얼굴에 눈썹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얼굴에서 눈썹은 아무 역할을 못 하지만 없으면 꼴이 우습지. 모름지기 스님들은 눈썹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네.”

수행자의 마음은 평등심과 평정심으로 늘 그 자리에서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눈썹은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치켜올리면 화난 것이고, 아래로 내려가면 너그럽게 웃는 것이다. 눈 주위에는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네 개의 근육신경이 있다고 한다. 눈썹과 눈 주위의 근육은 불수근(不隨筋)이라고 하는데, 심장처럼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근육이다. 이 근육은 희로애락에 따라 움직인다. 성질이 나면 눈꼬리가 올라가고 기분이 좋으면 아래로 쳐진다. 그러고 보면 하회탈이야말로 멋진 발명품이 아닐 수 없다. 눈꼬리와 입을 연결하여 함께 움직이게 한 것은 기발하기까지 하다.

스님의 역할은 마치 눈썹 같은 것
서로 마음 통하는 염화미소의 힘
이웃에게 웃는 얼굴이 바로 보시

오늘날 명상 기법에도 미소가 적용된다. 미소 짓기나 상상기법으로 입과 눈꼬리를 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나도 참선 자세를 설명할 때 미소를 지으라고 권한다. 가벼운 미소도 이렇게 좋은 데, 좋고 나쁨의 분별을 떠나 저절로 표현되는 염화미소의 경지는 어떻겠는가!

초탈한 미소를 짓는 노승은 삼광사에 주석 중인 현명 스님이다. 삼광사는 한라산 중턱에 깃들어 있으면서 한라산을 편안한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절이다. 오래도록 김장 김치며 된장·간장을 담아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는 절로 유명하다. 천막교회는 익숙하지만 천막법당은 생소할 것이다. 천막법당으로 시작한 삼광사는 이제 전각 여러 채를 갖춘 절이 되었다.

“제주도에 살려면 신뢰를 얻어야 하네. 역사 속에서 제주는 왜구의 끝없는 침노가 있었고, 육지에서 온 조선 관리들의 수탈에 이어, 해방 이후에는 무자비한 4·3 학살의 상처가 드리워져 있다네. 예전에는 부처님오신날 등불도 대낮에 켰지.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지. 육지 사람들을 신뢰하기까지는 오랜 노력이 필요한 이유일세. 그런데 일단 그 믿음이 깊어지면 무한신뢰를 보내준다네.”

지난해 봄, 해남을 떠나 제주살이를 시작한 어설픈 사제에게 조언을 아낌없이 하시더니, 이번에는 새해 덕담으로 눈썹 법문을 들려주신다.

우리 세시풍습에도 눈썹에 얽힌 교훈이 있다.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함께 모여 밤을 지새우며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이 그것이다. 『동국세시기』에 “섣달 그믐날 밤 인가에서는 방·마루·다락·곳간·문간·뒷간에 모두 등잔을 켜놓는다. 흰 사기 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불을 켜놓아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를 수세(守歲)라고 한다”는 내용이 있다.

암자에 미소굴이라 현판을 내걸고 사셨던 통도사 극락암 경봉 스님은 “마음공부 하는 사람은 말 없는 묵묵함에도 법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장사 잘하는 상인은 수백 명이 있더라도 서로 통하기 때문에 눈썹만 끔적해도 알고, 손만 들어도 거기에 통하는 점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서로 마주 보는데 눈썹 말이 건넌다. 묵묵히 있다가 눈으로써 미소 짓는다. 서로 웃지 않고 입만 벙긋 웃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미소이다”라고 하셨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뇌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12쌍의 신경근육과 3차신경절인 안면신경이 모두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이심전심의 염화미소가 최고의 경지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소를 나누며 얼굴을 맞대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그뿐인가. 친구와 한 공간에 있어도 휴대폰 문자대화가 편하고, 어른에게도 문자인사가 일상이 되었다. 이심전심은 고사하고 얼굴의 표정조차 없어지니 뇌는 점점 퇴화할 수밖에 없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새해에는 가까운 인연들과 자주 마주 보고, 자주 미소 짓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자신에게는 뇌를 발달시켜 지혜로워지는 공덕이 되고, 이웃에게는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큰 보시, 즉 화안시(和顔施)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베풂을 새해 벽두에만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옛 도인들은 묵은해, 새해를 나눠 말하지 말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는가. 미소가 최고의 수행인 이유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